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3/21 3

쌈 / 강여울

쌈 / 강여울 부모님은 친정에 있는 동안 잠시라도 좀 쉬라며 나를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는 점심상을 차리셨다. 양념불고기와 푸성귀들이 먹음직스럽다. 친정 부모님은 쌈을 좋아한다. 나도 쌈을 좋아한다. 나를 시집보내고 두 분이 쌈을 드실 때면 어김없이 내 생각에 목이 메었다고 했다. 나의 친정 부모님은 거의 반세기를 함께 살아오면서도 쌈(싸움)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귀찮고 힘든 것을 참았고, 좋은 것은 서로 권하고 양보했다. 어릴 적 나는 다른 모든 부모들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내가 결혼을 하면서 함께 살며 바라본 시부모님은 거의 날마다 쌈을 했다. 우리 부부는 친정 부모님처럼 정답지도 않았지만 보이게 쌈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끝도..

좋은 수필 2024.03.21

해우소(解憂所)에서 /이방주

해우소(解憂所)에서 /이방주 산에 가지 못하는 일요일이다. 이 나이에는 조금이라도 땀을 내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우암산에라도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시내버스를 타고 상당공원에서 내려 삼일공원에 올라가려니 진땀이 바작바작 났다. 동상은 넘어진 정춘수 목사의 좌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랫배가 쌀쌀 아파졌다. 어제저녁의 탐욕이 말썽을 부리는가 보다. 급히 공원 주차장 옆에 있는 간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타락의 오지奧地를 잘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내가 급하니까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여놓자니 플라스틱 상판이 '우지직' 죽는 소리를 내었다. 아랫배에서 꿈틀대는 그놈이 그새 몸무게를 늘렸나 보다. 갑자기 아프던 배가 사르르 정상으로 돌아..

좋은 수필 2024.03.21

하얀 민들레/강여울

하얀 민들레 강여울 “옥상에서 지심을 뽑았더니 몸이 고되구나.” 퇴근해서 현관을 들어서자 어머님이 오늘 한 일을 이야기하고는 엉금엉금 방으로 기어가신다. 지심 뽑을 땅이라고 해봐야 예전에 김장 배추를 절이던 커다란 고무통 하나와 화분 몇 개일 뿐이다. 흙 밟을 일이 거의 없는 도시에 살다 보면 늘 흙이 고프다. 그래서 흙을 옥상 화분에 담아놓고 그가 부리는 마술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흙은 얼마전부터 고추 모종 아래 민들레 몇 포기를 살려내 하얀꽃을 피우고는 바라보는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다. 지난해 봄, 먼 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갔었는데 도시에서 보기 힘든 하얀민들레 군락이 있어 씨앗 두어 대공을 뜯어 왔었다. 옥상 흙에 묻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흩어놓았는데 기특하게도 몇몇 씨앗을 품고는 싹을 틔우..

좋은 수필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