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바르다 / 설성제
가족에게 마음 전하고 싶은 날에는 생선을 굽고 싶어진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사과하기 쑥스러울 때, 미안한 줄 알면서도 그냥 덮어버리고 싶을 때, 유난히 사랑스러워 더욱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생선가게로 간다.
이런 날은 가시가 많은 생선을 고른다. 주로 갈치, 꽁치, 조기, 가자미다. 간이 알맞게 밴 생선이 속까지 잘 익도록 노릇노릇하게 구워 식탁에 올린다. 식구들이 수저질을 하는 동안 가시를 발라낸다. 생선의 참맛은 대가리에 있다고 했던가. 일단 대가리를 떼서 살을 살살 긁어낸다. 등뼈를 통째로 발라내며 갈비뼈도 걷어낸다. 지느러미 부분에 달린 참빗 같은 가시들도 순끝을 따라 쏙쏙 빠져나온다.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데는 이력이 났다. 살점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은 아까워서가 아니라 마음을 식구들에게 오롯이 보여주고 싶어서다. 정성들여 가시를 발라낸 후 살을 숟가락 위에 올려줄 때 식구들에게 쌓인 불편한 감정은 발라져나간다. 대신 고마움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금까지처럼 그대로라는 것을 전한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있다. 생선살이 오른 밥숟가락이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갈 때 나는 손가락 사이에 달라붙은 부스러기를 떼먹으며 식구들을 바라보는 것이 흐뭇하다. 밥숟가락 가득 생선살을 올려주면 내 마음도 모른 체 너무 많다고 소리치는 녀석도 사랑스럽거나 이제 엄마도 좀 드시라고 말하는 녀석도 대견하다.
이 버릇없는 아이들이 처음부터 재비새끼처럼 입을 쩍쩍 벌린 것은 아니다. 가시를 발라내느라 숟가락도 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저들끼리만 먹어치우는 것을 미안해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생선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엄마를 알고 난 후부터는 미안해하지 않는다.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행복하다고 하지만 생선 굽는 날에 보면 주는 것이나 받는 것의 행복이 똑같은 것 같다.
생선이 사랑과 감사의 언어라는 것을 초등학교 시절에 알았다. 나와 친구 몇 명은 주말이면 마흔이 엄은 노처녀 담임선생님의 집에 공부를 하러 다녔다. 선생님은 평소 사소한 것에도 자주 화를 내셨고 우리의 성적이 도금이라도 떨어지면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다. 우리 반은 늘 그런 선생님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선생님이 시집을 못 가서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라고 소문이 났다. 우리는 희생양이 된 듯 마지못해 선생님의 집에 다녀야 했다.
공부가 끝나면 선생님은 밥을 차려주기 위해 우리를 불렀던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책을 정리하는 동안 재빨리 부엌에 나가 상을 차리셨다. 동그란 상에 놓인 보리밥과 반찬 두세 가지. 유난히 눈에 띈 것은 둥근 접시에 놓인 노릇노릇한 가자미였다. 함께 사는 노모와 같이 상 앞에 둘러앉아 우리는 눈치를 살피며 숟가락을 들었다. 선생님이 가자미 가시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희디 흰 생선의 속살을 우리들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촉촉하면서도 약간 비린 맛, 생선은 고급 음식으로 자주 먹는 반찬이 아니었다.
역시 선생님은 음식도 좋은 것으로 드신다고 생각하며 입을 오물오물거리는 나에게 “맛있지? 많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해라” 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자미눈처럼 가느다란 선생님의 눈이 무섭기만 했다. 선생님의 기다란 손가락으로, 투명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속으로 하얀 생선살이 붙었다 떨어졌다 했다. 우리가 숟가락에 밥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생선살을 올려주시느라 선생님의 밥은 우리가 다 먹을 때까지 절반도 줄어들지 않았다.
선생님이 종종 밥상을 차려주실 때마다 생선이 올라왔고, 언제나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두 손으로 가시를 발라내 주셨다. 선생님이 원래 생선을 좋아하셨는지 아니면 우리를 먹이기 위해 그 귀한 것을 일부러 구웠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생선이 어떤 음식인지 알게 되었다. 무릇 생선은 맛으로 먹는 것도 아니고 영양가를 생각하며 먹는 것도 아닌, 뼈를 발라서 살점을 얹어주는 사람의 마음을 먹는 음식이었다.
아버지가 야간근무를 한 때였다. 우리는 일찍 저녁을 먹는 편이었는데, 아버지는 저녁 8시가 되면 집으로 오셔서 식사를 하고 다시 직장으로 나가셔야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 저녁상에만 울리는 반찬이 있었는데 그것은 수돗가 옆 서까래에 매달려 있는 과메기였다. 짚으로 엮어놓은 과메기를 연탄불에 구우면 아버지가 도착하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뜻이다. 북어도 그러했다. 물에 불렸다가 거기에 양념장을 발라 석쇠에 구운 것이 유독 아버지의 상에만 올랐다. 우리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만 드시는 음식이었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저녁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가느다란 생선 가시 하나까지 꼼꼼하게 발라내어 우리 입에 쏙쏙 넣어주셨다. 어머니가 “저리 비켜 앉아라”며 눈을 끔벅이면 우리는 엉덩이만 뒤로 빼며 머리는 더욱 상 앞으로 디밀곤 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우리에게 하셨듯 나는 생선이 마음으로 보여주는 음식으로 여긴다. 사람들이랑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가도 누군가 먼저 깨끗이 닦은 손으로 남이 먹기 좋게 생선살을 발라내놓는 모습을 보면 특별한 생각이 든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 없으면 자기의 밥그릇을 잠시 내려놓은 채 그 비릿하고 기름 묻은 생선에게 달려들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나는 식당에서 생선이 나오면 밥 대신 생선에 먼저 손을 댄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가깝고도 쉽게 온 것을 감사하면서.
인간의 실수와 횡포로 바다가 오염되었다며 생선을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왔을 때였다. 나도 생선가게에 가지 않았다. 생선 대신 육류를 올리고 채소로 밥상을 차렸을 때 생선 가시를 발라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가족이 밥을 다 목을 때까지 식탁 앞에 서거나 혹은 식구들을 행해 무릎을 꿇고 앉아 생선 가시를 발라내 밥그릇 위에 올리고 싶었다.
생선을 못 먹은 지 오래다. 식들을 향해 내 안에 버려야 할 가시가 아제는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말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가. 가족을 향한 내 미음이 혹시 식은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본다. 오늘 저녁에는 가시를 발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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