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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밑바닥/ 이선희

에세이향기 2023. 2. 19. 07:38

소금의 밑바닥/ 이선희

소금을 녹이니

바닥에 가라앉은 뻘이 보인다

순백색 소금의 몸에 뻘이 들어있었다니

짜디짠 정신으로

까칠하게 각을 세우고

세상의 간을 맞추던

그 정신의 기둥이 뻘이었을까

뻘을 품고

더 단단한 결정이 되어갔을 소금은

한번도 뻘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뻘과의 관계를 조금은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뻘처럼

어느날 치매 병동에서 본 얌전하고 곱던 할머니

세상의 온갖 욕을 종일 읊조리고 있었는데

내가 녹아버렸을 때

나를 지탱하던 그 무엇의 모습이

문득 궁금하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출처 - 사상의 꽃들 9 -중에서 (반경환의 명시감상)

해설/ 반경환

소금은 염화나트륨이며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무기물 중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다. 소금은 위액의 구성성분인 염산을 만들고 근육과 신경등의 작용을 조절해 준다. 소금은 인류가 이용해 온 조미료 중 가장 오래되었고, 단맛과 신맛을 내는 감미료와 신미료와는 달리 음식의 기본적인 맛을 내는데 대체 불가능한 물질이라고 할 수 가 있다.

소금은 식품산업에서는 향미증진제와 방부제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화학공업에서는 베이킹소다와 가성소다를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소금은 유리와 가죽과 도자기등을 만들고 눈과 얼음을 녹이는 데 사용되기도 하며, 이러한 소금의 중요성 때문에 상호간의 계약이나 충성을 맹세하는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기도 한다.

빛과 소금이 하나의 짝패가 되어 우리 인간들에게 수많은 옛이야기와 그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도 전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선희 시인은 상징주의자며, 은유적인 기법을 매우 아름답고 탁월하게 사용하는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기호는 사물을 지시하고 , 상징은 인간의 정신을 지시한다. 은유는 할머니 (어머니)를 뻘로 표현하는 것처럼 유사성 법칙에 의한 최고급의 수사법이며, 이 은유적인 기법을 통해서 아주 일상적인 것이 낯선 것으로 변용되며, 그 결과, 전인미답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도 한다. "소금을 녹이니/ 바닥에 가라앉은 뻘이" 보이고 이 순백의 소금에 뻘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이선희 시인의 마비된 의식에 충격을 가한다.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의 토대가 마사분과 점토가 혼합된 뻘밭이었던 것이고, 따라서 소금의 결정체에는 어느 정도의 불순물(뻘) 섞여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자그마한 놀라움과 충격은 "짜디단 정신으로 /까칠하게 각을 세우고/ 세상의 간을 맞추던/ 그 정신의 기둥이 뻘이었을까" 라는 역사 철학적인 인식으로 발전을 하게된다. 그렇다. 짜디짠 정신으로 까칠하게 각을 세우고 세상의 간을 맞추던 그 정신의 기둥이 뻘이었던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한평생을 살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좀 더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자기 자신의 부모님과 집안의 형편을 숨긴 채 소위'성공 신화'를 연출해낸 어느 유명 인사처럼 "어쩌면 뻘과의 관계를 조금은 부끄러워"했고, 또, 그것을 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금에서 뻘을 발견하고 그 충격으로 뻘과 나와의 관계를 밝힌 첫 번째 반전이후, 제3연과 제 4연에서는 두번째의 반전이 일어난다,

(........)중략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뻘밭에서 태어나 뻘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금은 어머니의 초상(상징)이며 딸의 초상이고, 우리 모두의 초상인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주고 더러는 아들과 딸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어대며, 또다시 뻘밭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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