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 김은주
앞서 걷는 오빠의 손에 긴 장대가 들려져 있다. 장대 끝에는 낫이 묶여져 있고 장대를 움켜진 손등에 튀어나온 힘줄이 겨울하늘 아래 푸르다. 겨우살이를 꼭 구하고 말리라는 오빠의 의지가 힘줄 속에 숨어있는 듯하다. 쩡쩡한 겨울하늘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쩍하고 금이 갈 것 같다. 오빠는 낮은 구절초 두어개 꺾어 눕히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오르고 있다. 그 발자국에 도장이라도 찍듯 내가 따라 오르고 있다.
땅에 닿은 장대가 마른 겨울 산에 길게 홈을 판다. 생채기 같은 그 홈이 내 가슴으로 걸어 들어와 마른 먼지를 일으킨다. 이곳이 어디쯤인지 도통 가늠이 가질 않는다. 봉화 어느 산자락인 것 같은데 가도가도 참나무 군락지는 보이지 않는다. 두꺼비 등짝처럼 이마에 땀이 돋는다. 고개를 들고 갈색 천지인 산자락에서 나의 두 눈은 연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갈 길 잃은 어머니의 두 다리에 힘을 보내 주기위해 오빠와 나는 겨울바람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겨우살이는 쉽게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고 어머니 병간호에 지쳐있던 지난 그 여름처럼 나를 또 조급증에 시달리게 한다.
이태 전의 일이다. 칼로 도려낸 듯한 기억 한 자락이 그곳에 있다. 우환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드는지, 누구보다 건강하셨던 친정어머니께서 무통주사의 희한한 효능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은 봄이 막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주사 한방이면 요통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하니 그 신통함이 의심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식 된 도리로 우리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다음날로 용하다는 신경외과를 찾아 맞은 주사가 엄청난 의료사고로 이어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바늘의 깊이를 잘못 가늠한 탓에 척추에 신경을 손상시켜 멀쩡하던 두 다리에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식구 모두 생업을 작파하고 병원이랑 싸웠지만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병원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다리는 쓰다 남은 튜브 속의 물감처럼 굳어만 갔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시점에 가장 괴로운 것은 나였다. 그 많은 딸들을 두고 왜 하필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를 평안하게 해 드린다는 것이 종내에는 걷지도 못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나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분으로 그 여름을 견뎠다.
장맛비 속에서도 나는 단 연통 같이 조갈 난 마음으로 눈만 뜨면 화장실 길이라도 열리길 빌고 또 빌었다. 녹록한 듯 옹골찬 평소 성격 탓인지 의식은 멀쩡한데 움직일 수 없는 두 다리를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듯했다. 시도 때도 없이 새 나오는 오줌발을 바라보시더니 끝내 곡기를 끊으셨다. 식솔이 아닌 누군가에게 자신을 내 보이는 일이 더 할 수 없이 창피하셨던지 아무도 병실에 오지 못하게 했다. 심사가 여북하면 저럴까 싶어 식사도 사람도 들지 못하게 했다. 한동안은 어머니와 나 단 둘이 있으면서도 서로 눈을 맞추지 못했다. 서로의 근심이 얕은 물속 들여다보듯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나대로는 온몸이 땀벌창이 되도록 간호를 했지만 요령 없이 일으켜 세우는 바람에 어머니의 겨드랑이는 성할 날이 없었다. 환자복 사이로 내비치는 푸르게 멍이 오른 가슴팍을 보며 멍보다 더 큰 아픔이 내 가슴에 찍혔다. 약물 과다 투여로 생긴 일이니 해독요법과 세월이 흘러 자연치유 되는 길 이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밤마다 어머니의 두 다리가 빠져나가 버린 빈 바지를 껴안고 먹먹한 가슴을 혼자 달래곤 했다. 지루한 장마 비처럼 어머니 얼굴은 내내 어두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병원 생활에 어머니를 잠시라도 기쁘게 해드릴 요량으로 좁은 침대 옆에 나란히 누워보기도 하고 간간히 놓은 어깃장도 다 받아주고 나니 어둡던 얼굴이 차차 가시기 시작했다. 애쓴 나의 시간이 약이 되었던 모양이다.
운명이 어머니의 고통 한가운데 나를 들게 한 것은 분명 어떤 연유가 있으리라. 그 연유의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어머니의 등걸에 가장 오래 동안 매달려 젖을 빨았던 것이 나 아니었나 싶다. 내 나이 서넛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막내였던 탓인지 그 나이가 되도록 빈 젖을 빨고 있었다. 해가 설핏 지고 나면 어둠은 또 왜 그리도 빨리 찾아오던지 눈이 감기도록 기다려도 오지 않던 엄마가 세찬 수돗물 소리와 함께 돌아와 씻고 계셨다. 마루 끝에 나 앉아 짧은 다리만 흔들고 있던 나는 배도 고프고 종일 못 본 탓에 달려가 안기기라도 하련만 눈만 껌뻑이며 마루 끝에 그냥 앉아 있었다. 일속에 다 녹아나 남아 있을 것도 없는 빈 젖을 물면 젖보다 엄마 품속에서 나던 그 시원한 냄새가 좋아 오래 동안 파고 들었던 생각이 난다. 자식 일곱을 키워낸 빈 등걸 같은 가슴에 붙어 면목없게도 참 오랫동안 엄마의 체온과 수액을 빨아먹었다. 그럴 때마다 다 큰 나의 엉덩이를 두드리시며 단 한번도 마다하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엉덩짝에 살이 오를 때마다 엄마의 가슴팍은 여위어 갔을 터인데 말이다. 생살 깊이 따뜻한 체온 하나 간직한 엄마는 가지마다 겨우살이 같은 자식들을 매달고 힘든 삶의 강을 건너오셨다. 자식들을 위해 추운 겨울날도 뿌리로부터 힘들게 물을 길어 올리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나이가 되도록 어머니의 노고를 자식들이 모르고 있으니 운명은 개중 빚이 많은 나를 고통의 중심에 서게 한 것 같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참나무 군락지에 닿았다. 말라 버린 참나무 등걸에 손을 올려놓으며 표피 깊숙이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어 본다. 참나무의 따뜻한 체온이 겨우살이를 이 추운 겨울에도 온전히 푸르게 하듯 오빠와 나의 이 더운 입김이 어머니의 다리에도 새로운 길을 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참나무 꼭대기 가지마다 연두 빛의 뭉치들이 어머니를 향한 우리들의 마음처럼 푸르게 달려 있다. 눈 속에 가득이 괴어 오는 연두는 나에게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아로새겨준다. 초록이 되기 이전의 저 미완의 연두는 영원히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 자식들의 미흡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참나무 아래 서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고는 낫으로 겨우살이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참나무에서 겨우살이를 완전히 분리해 내기 위해 오빠의 낫질은 가차없다. 가지를 버리고 땅으로 떨어져 내려온 겨우살이 모양은 까치집 같다. 어머니가 우리들을 품었던 그 둥지 마냥 둥글고 푸른 그 가지 끝에는 투명한 과육이 씨를 에워싸고 있다. 저 연두의 푸른 물줄기가 한 모금 약물이 도어 어머니 핏줄 속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새롭게 세포가 살아나고 또다시 그 기운으로 천근같은 저 다리를 옮겨 문지방 길이 훤히 열렸으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 한 자락만 가슴에 품고 있는 힘을 다해 겨우살이를 자루 속에 담는다. 깜깜한 자루 속이 비어버린 어머니 속 같다. 어둠도 한참을 들여다보면 그곳에 밝음이 있듯이 어둑한 자루 속이 겨우살이 때문인지 연두의 푸른 물이 출렁거린다. 나의 어머니는 겨울 하늘을 지키고 서 있는 참나무 등걸이셨고 우리는 그 등걸에 기대어 선 겨우살이 자식들이었으니 이제는 우리 속내 우려낸 푸른 물을 어머니께 되돌려드려야 할 차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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