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한 보고서
장미숙
그들은 푸른색 두꺼운 천으로 그녀를 덮어버렸다. 그녀는 순식간에 어둠 속에 갇혔다. 죽음 같은 고요가 흘렀다. 두려움을 거느린 외로움이 엄습했다. 외로움은 삽시간에 온몸을 꽁꽁 묶어버렸다. 외로움은 두려움을 더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마음속에 소름이 돋아났다.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평온하게 일상을 즐기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들에 속하지 못한 그녀는 비참했다. 눈을 감아도 영상은 쉬 지워지지 않았다.
머릿속 액정화면 정지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고통이라는 메뉴를 골랐다.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 삶의 고뇌에 맞선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그녀는 그 속에 자신을 끼워 넣었다. 화면은 우울한 푸른빛이 되었다. 무거운 푸른빛이 그녀 주위를 감쌌다. 그녀를 덮고 있는 푸른색 수술 천과 같았다. 외로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혼자 견디는 게 아니라는 건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철컥!”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현실을 일깨웠다. 분주한 발걸음이 오갔다. 간호사들의 말소리는 차분했다.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와 다르게 한없이 평온한 그들은 자신들만의 용어를 주고받으며 가볍게 웃기도 했다. 그들 속에서 그녀는 이방인처럼 외로웠다.
곧이어 가슴께가 묵직해졌다. 수술기구들을 올려놓는지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진정되어가던 가슴이 날카로운 쇳소리에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빨라진 호흡은 곧이어 벌어질 일을 상상하게 했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사이 특정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간호사들과 확연히 다른 그 소리는 견딤의 시간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발걸음 소리가 뚝! 멈췄다. 살을 찢고 뼈를 깎아낼 손이 그녀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자, 시작합니다. 입을 크게 벌리세요.” 그녀는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곧이어 눈 부신 불빛이 푸른 천을 뚫고 눈꺼풀 위로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불안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걸음 소리는 다른 곳에서도 들려왔다. 놀란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깊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공간이 좁은 곳도 아니건만 몸을 펼 수 없었다. 움직이면 두려움이 자신을 삼켜버릴 것 같아서였다. 무릎을 세우고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두려움은 몸과 마음을 결박해 버렸다. 아니, 그녀 스스로 두려움에 갇혀버렸다. 늘 그랬듯이 그녀에게는 콩알만 한 용기도 남아있지 않았다.
민감해진 귀는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반응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곧 닥칠 장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술 냄새, 광기 어린 눈빛, 거친 고함, 거대한 몸. 그 앞에 파랗게 질려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고함이 귀를 때렸다. 귀를 막아도 소리는 안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곳이라도 좋았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몸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공포는 이성까지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상상은 걷잡을 수 없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불안과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찰칵!”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안절부절못한 채 문 앞에 서자 술 냄새가 먼저 달려들었다. 거대한 공포 속에 그녀는 내던져졌다. 이가 달달 떨려 맞부딪히는 소리가 폭포처럼 크게 들렸다. 어떻게든 견뎌내야 한다는 강한 본능이 꿈틀거렸다. 광기 어린 눈빛이 그녀를 쏘아봤다. 그녀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불안은 그녀를 한없이 비굴하게 만들었다. 복종에 길든다는 건 생존에 대한 욕구만이 남아 있음을 의미했다. 폭력을 이겨내는 건 비폭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복종은 그녀를 지켜주는 유일한 도구였다.
그의 눈빛과 그의 고함과 욕설과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그를 자극하지 않는 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억울함에 대한 분노는 두려움 뒤로 밀려났다. 억울함은 미래의 일이고, 두려움은 눈앞의 일이었다. 그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바짝 엎드려 있어야 그나마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가 잠들고 나면 먼 훗날 갚아 주리라고 이를 앙다물었다. 그렇게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던 술은 그녀의 인간다운 삶을 앗아갔다. 맞설 기회를 놓쳐버린 후, 그녀는 거대한 힘에 지배당했다. 그녀 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불안은 가지를 키우고 잎을 달면서 점점 더 세력을 넓혀갔다. 불안은 정신에 숙주(宿主)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편안한 잠을 자 보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많은 날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핍박에 길들면서 두려움과 불안은 예감으로 먼저 찾아오곤 했다. 상황이 펼쳐지기도 전에 심장부터 요동쳤다.
그녀의 정신 속에는 두 개의 감정이 교차했다. 평온과 불안, 극도로 평온했다 극도로 불안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술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은 너무나 대립적이었다. 타인이 마시는 술은 천사의 미소였고, 그가 마시는 술은 악마의 눈빛이었다. 그녀 안에 있는 또 다른 그녀는 안으로 깃들지 못하고 마음의 문고리를 잡고 서성였다. 언제든 튀어나올 태세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프로이트는 어떤 위험에 대한 예상 속에서 생기는 불안을 ‘신호불안(signal anxiety)’이라 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경우 그에 대한 예감을 감지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안이다. 상처가 아물지 못하면 상황이 달라져도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마음속에 파랗게 돋아 온몸을 휘감아버린다. 그 제어할 수 없는 감정 속에서 그녀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안의 뿌리는 깊이 박혀있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불안의 개념』에서 꿈을 꾸는, 상상하는 힘이 불안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불안도 상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과거의 경험이 상상의 씨가 되었다. 상상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쓸수록 기억은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상황이 닥치면 맞서보려는 의지는 발바닥 밑으로 재빠르게 숨어버렸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가면서 술 냄새가 집안을 채우는 날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고함도 점점 잦아들었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안했다. 올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거나, 누군가 불러내면 기다렸다는 듯 불안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공포에 대한 예감이 큰 만큼, 평온함에 대한 고마움도 컸다. 예감했던 것에 비해 별일이 없었을 때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로 행복했다.
육체의 아픔과 고통은 순간을 참아내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가벼운 것인지도 모른다. 치과에 갈 때마다 극도의 공포를 느끼지만, 그 공포는 몇 시간에 불과하다. 치과를 나오면 불안은 씻은 듯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살을 찢고 뼈를 갈라도 그로 인해 불면증을 겪진 않는다. 서너 번의 치료가 끝난 후 치과에 대한 그녀의 불안도 더는 마음을 지배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밤낮으로 온몸을 꽁꽁 묶어버리는 거대한 정체는 뭘까. 덮쳐오는 검은 그림자 밑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매일 그 화두(話頭)를 붙들고 괴로워했다. 가해자는커녕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녀만의 불안 속에서 처절하게 외로웠다. 그러면서도 밥을 먹고, 일하고, 운동하고, 글 쓰고 웃기도 하면서 행복한 사람들처럼 살았다. 그녀에게 행복은 때로 가장(假裝)이었고, 때로는 감당하기도 벅찬 진실이었다. 순식간에 자신을 쓰러뜨려 버릴 수 있는 배후(背後)의 그림자임에도 불안과 그녀는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아니, 불안이 그녀 삶을 붙들고 휘둘렀다.
언제까지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불안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그녀는 답답했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검은 그림자 덩어리를 끄집어내 부숴버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평온함에 대한 간절함은 어느덧 그녀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런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녀는 불안에 지배당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꿈틀거리는 미세한 기운이 자아의 바닥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그건 분명 전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더 이상 엎드릴 수 없을 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녀는 받아들였다.
지극히 평온한 얼굴로 그녀는 오늘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스쳐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본다. 그러다가 지독하고 처절한 외로움과 맞닥뜨리면 우뚝 멈춰 선다. 아프고 아픈 누군가의 뒷모습을 다독다독 해주고 싶을 때 그녀 안의 그녀가 살며시 웃음을 짓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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