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해서 외롭지 않다
곽흥렬
산골의 겨울 해는 유난히 짧다. 동지 어름에는 오후 다섯 시만 되면 벌써 어둠살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장막을 둘러치듯 정적이 사방을 휘감는다. 가뭄에 콩 나듯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통행도, 사람들의 움직임도 끊기고 나면 다음 날 늦은 아침까지 긴 적요寂寥가 이어진다.
서둘러 저녁을 끝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갈무리한다. 모과차 한 잔을 받쳐 들고 거실 가장자리의 벽난로 앞에 앉는다.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사기잔의 따사한 감촉이 오달지다. 너울너울 타오르는 장작의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상념의 타래가 가닥가닥 풀려난다. 지나간 시간의 영상들이 일렁이는 불길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보랏빛 그리움이 물안개 번지듯 피어오른다.
이웃이 귀한 산골 생활에서는 적막이 둘도 없는 이웃이다. 하기에, 적막을 물리치려 애쓰는 것은 좋은 이웃을 내치려는 어리석은 짓이다. 적막을 벗으로 삼을 때 그는 오히려 살갑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밤마다 적막과 친해지는 법을 배운다.
산골에서는 시간도 적막과 동무하고 싶은지 느릿느릿 흐른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뀜을 물리적인 시간으로 알아차리기보다는 나날이 달라지는 풍경으로 깨닫는다. 도시 사람들이 노루처럼 분초를 다투며 출퇴근 시간에 쫓겨 허둥댈 때, 산골 사람들은 달팽이 걸음으로 앞마당을 어슬렁거리면서 그 시간의 한유閑裕를 즐긴다. 이것이야말로 산골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무가보無價寶의 호사다.
시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시간은 아니다. 어떤 시간은 의미가 있고 어떤 시간은 무의미하다. 그 의미 있는 시간이란 적요 가운데 침잠하여 고독을 씹으며 생의 가치를 궁굴려 보는 시간이다. 그에 반해, 개미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시간들은 무의미한 시간일 터이다.
혼자 지내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들은 고독을 모른다. 고독을 모르다 보니 자연 외로움을 탄다. 여럿 가운데 있어도 쓸쓸한 감정으로 마음의 빈곤을 느끼는 것이 외로움이라면, 혼자 있으면서도 흔흔한 기분으로 내면의 충일감에 젖어드는 것이 고독인가 한다. 외로움이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라면 고독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남들은 외로움을 애써 피하려 하지만, 나는 고독을 굳이 사서라도 간직하고 싶다.
고독은 사유의 집이다. 고독 속에서 사유의 타래가 누에 실처럼 풀려 나온다. 나는 내게 주어지는 이 사유의 시간을 숙성시켜 영혼을 살찌우는 자양분을 공급 받는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생의 본질에 대한 어쭙잖은 깨달음을 고독으로부터 얻는다.
"인류에게 유익한 그 무언가 경이로운 것은 모두 정금과도 같은 순도 높은 자기만의 시간에서 탄생한다."
장석주 시인의 산문집 『고독의 권유』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자기만의 시간' 이란,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 틀림없이 고독을 두고 일컫는 이야기일 게다. 시인은 고독에 대하여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 놓았다. 모르긴 모르겠으되, 미지의 독자들에게 굳이 고독을 권유까지 하고 있는 양으로 미루어 살피면 아마도 시인 또한 자기 스스로도 평소 고독을 먹고사는 분이리라.
대도시의 숨 막히는 팽팽함과 복닥거림에 넌덜머리가 나 도망치듯 산골로 자발적 소외를 결행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벌써 다섯 해째의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꽃과 나무, 바람과 새소리를 벗하며 지내는 지금의 내 생활이 딱 시인의 표현 그대로이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고독하다. 내일 역시도 당연히 고독할 것이다. 고독해서 하나도 외롭지 않다. 정말이지 병아리 눈물만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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