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순 씨/이복희
“꼬막무침 한 번 더 해 줘야 하는데….”
해순 씨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아무렴 나만큼 아쉬울까. 그녀와 헤어지는 것은 단순히 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와 다른 불편을 당분간 겪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주지 못하게 된 것만 안타까워했다.
해순 씨는 내가 일하던 일터에서 청소를 맡아 하는 용역회사 직원이었다. 그럭저럭 십여 년 넘게 한솥밥을 먹었다. 서로 소속이 달랐어도, 우린 그냥 한 식구였다. 함께 보낸 시간이 길다고 정이 드는 것은 아닐 터. 마음이 잘 통했고 나이도 비슷하다보니 어느새 서로 많이 의지하며 지냈다. 가족도 그렇지만 하물며 남이 아닌가. 언젠가는 헤어지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그녀는 다른 일자리로 옮겨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선뜻 정이 가지 않았다. 거무스레한 얼굴에 옴팡한 눈이 어쩐지 상대를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굵고 낮은 목소리도 낯설었다. 사무실 밖에서 말소리만 들리면 어떤 남자가 왔나 오해할 정도였다.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어 얼른 친해지기 어려웠다. 하지만 진심은 곧 통하게 되어 있는 것. 얼마 안가 은근히 배어 나오는 꾸밈없고 성실한 인품에 그녀가 점점 좋아졌다.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일했는데 건물 규모가 큰 편이어서 일이 고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중 한 명 쯤은 배겨내지 못하고 가버리는 경우도 자주 생겼다. 일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그럴 때마다 버팀목처럼 남아 중심을 잡아준 이가 해순 씨였다. 반장격인 해순 씨의 성실한 자세가 팀 분위기를 이끌어 자연히 일도 깔끔했다.
특히 화장실은 언제나 쾌적했으며 거울이나 유리창도 늘 반짝반짝 빛났다. 심지어 크고 작은 쓰레기통까지 말끔하게 닦아놓곤 했다. 일에 비해 보수도 적고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작업환경도 좋지 않았지만 불평 한 마디 없었다.
그녀의 인내심과 한결같은 마음이 고맙고 귀했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더러 어려운 일이 생길라 치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녀 편에 서주기도 했다.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이 고집도 있어서 더러 동료들과 작업 때문에 갈등도 빚는 눈치였다. 그럴 때는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 두곤 했다.
해순 씨가 집에서 내 이야기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김치가 맛있게 익었을 때나 색다른 반찬을 보면 남편이 먼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나를 챙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핑계는 해순 씨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주고 싶은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그녀만의 방법인 것만 같아서다.
그 중에서도 꼬막무침은 특별했다. 시장에 꼬막이 나오기 시작하면 철이 다 지나도록 몇 번씩 맛을 보여주었다. 남편이 산행할 때면 꼭 만든다며 조그만 밀폐용기에 가득 넣어오곤 했다. 보통은 삶은 꼬막 하나하나마다 양념장을 얌전하게 얹는다. 그런데 해순 씨는 통째로 양념을 듬뿍 버무렸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만큼 먹음직스러웠다. 남보다 출근 시간이 일러서 챙겨오는 일이 군일처럼 쉽지 않았을 텐데 모양새가 안 좋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다른 꼬막무침은 이제 사양, 난 자기가 만든 것만 먹을 거야”
호들갑스러운 나의 인사말, 그것은 물론 고마움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을 얹느라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사는 부메랑처럼 다른 반찬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녀는 종종 보는 사람의 허를 찌르는 놀라운 구석이 있었다.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조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천성이 지혜로운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는 수심 깊은 물처럼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가 많이 배운 사람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녀를 보면 그런 잣대가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끔 번득이는 그녀의 유머 감각은 언제나 신선했다. 어쩌다 툭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실없는 것 같아도 은근히 정곡을 찌를 때도 많았다. 내가 놀라거나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청소나 하는 사람인데….’ 하며 민망해 했다.
가을이 깊어져 가는 어느 날이었다. 일터 뜨락에 둘러 서있는 단풍나무, 은행나무가 저마다의 빛깔로 곱게 타올랐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던 시간도 잠깐, 날마다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일이 더 많아졌다. 끝도 없이 쌓이는 낙엽을 쓸던 그녀가 갑자기 긴 대빗자루를 세우더니 정색을 했다.
“저 나무 야단 좀 칩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낙엽 쓸기에 지쳐 짜증도 날 법 한데 그렇게 눙치며 싱긋 웃던 해순 씨. 그 순간엔 아마 단풍나무도, 라일락 나무도 움찔했을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쏟아지는 눈발이 하도 푸짐해서 현관 밖에 나가 눈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저 눈이 낭만이요? 애물단지요?"
어느 새 내 곁에 다가온 해순 씨가 농담처럼 던지는 말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낭만이지, 무슨 소리….”
그러다 얼른 말끝을 흐렸다. 이제부터 눈을 치워야 할 그녀의 고달픈 일이 뒤늦게 생각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눈이 온다고 투덜대는 대신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만이었다. 그 후로 겨울만 되면 눈이 암만 장하게 쏟아져도 내놓고 좋아할 수 없었다.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그 일은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을 조금쯤 깊어지게 해주었던 셈이다.
이제 그녀의 솜씨를 맛볼 기회는 없을 것이다. 꼬막무침만 아니라 혀에 착 감기는 총각김치와 갓김치, 물김치의 맛도 그저 입맛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삶의 진정성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그녀를 쉬이 잊을 것 같지 않다. 먹물 든 것을 자랑하고, 섣부른 신심을 내세우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그녀가 돋보였던 순간들도 간간이 생각날 것이다.
쉬는 시간이면 콧잔등에 안경을 걸친 채 신문을 열심히 읽다가도 누가 보면 얼른 치우던 그녀. 혹 잘난 체 하는 것으로 비칠까 싶어 심심풀이라며 애써 변명하던 해순씨의 시치미 뚝 뗀 얼굴도 가끔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 그곳을 떠나게 될지를 가늠하며 언젠가 닥칠 이별을 걱정하곤 했다. 그녀가 가고 얼마 후, 나도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처음 맞는 가을이었다. 시나브로 나뭇잎이 지기 시작했다. 해순 씨가 새로 일하게 된 그곳에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해순 씨, 올 가을엔 야단칠 나무가 없어서 좋겠네,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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