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갈대 /김원순
순천만에서 비로소 갈대다운 갈대를 만났다. 살면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갈대다. 갈대도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일까. 바람의 등에 업혀서 내게로 쓰러져 눕는다.
을숙도 갈대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저무는 해무海霧 사이로 노을에 타는 금빛 울음을 순천만 가슴에 서리서리 풀어놓는다. 이 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온 갈대의 사연을 바람이 넌지시 전해 주고 간다. 뭍이 아닌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살아가는 갈대 줄기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절망 하나에 갈대 하나, 체념 둘에 갈대 둘, 그렇게 식구를 늘리며 휘파람 소리로 외로움을 달랬을 것 같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들은 어느새 바람이 되고, 갈대밭을 지나가는 바람도 모두 갈대가 된다. 늘 흔들리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의연하고도 비장한 갈대. 휘파람 소리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면, 나도 어느새 갈대가 되어서 속내 없는 여인처럼 흔들린다.
순천만을 끌어안은 갈대와 갈대를 품어안은 순천만이다. 그 옛날 삼베적삼을 입고 젖을 물리던 내 어머니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갈대밭보다 젖 냄새가 짙다. 갈대가 갈대를 업고, 바람은 그들을 무등 태워선 순천만 품 속에 드러눕힌다. 그럴 때마다 뿌리는 더욱 깊이 순천만 가슴을 파고든다. 갈대 줄기보다 깊은 뿌리를 만들어야지 흔들리지 않으니까. 흔들리지 않아야 뿌리니까.
하루 중 태어나는 시간에 따라 이름도 달라진다. 새벽 안개를 껴안은 채 아침을 열 때는 은갈대, 정오의 햇살이 머리 위를 지날 때는 재갈대, 저무는 노을에 붉게 물들 때는 금갈대라고 부른다. 해가 지어준 참하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갈대보다 더 질긴 내 삶의 마디마디엔 어떤 이름이 지어졌을까, 나를 비춰준 해에게 넌지시 물어보고 싶다.
새벽 안개를 토해낸 갈대들을 새벽 안개가 다시 삼켜버린다. 그러나 부지런한 어부는, 촘촘한 그물로 걷어낸 안개를 짊어지고 갈대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안개를 걷어내는 일이 새벽 일과가 되어버린 어부의 삶이 갈대 뿌리보다 질기다.
빛나고 찬란하진 않지만 절제된 자유로 서서 함께 흔들리는 순천만 갈대 사이로 평화로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자장가처럼, 때론 배경 음악처럼. 땅의 가장 순한 곳을 찾아서 길을 만들 듯, 물의 가장 순한 곳을 찾아 모여든 갈대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인하고 정직하며 겸손한 것이 길과 갈대가 아닐까. 그 길 끝에서 갈대를 만났으니 설령 갈대가 된다해도 무엇이 서러우랴. 여태 버리지 못하고 연연해 온 것들을 순천만 갈대밭에 미련없이 부려 놓는다.
태평양을 달려온 바람이 마지막 닻을 내리는 곳. 삶이 시큰둥해 질 때마다 갈대처럼 흔들리고 싶은 곳. 편리하지만 빠르고 거침없는 속도에 멀미를 느낄 때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는 곳. 그러나 달려가면 순천만은 갈대를 품은 채 여전히 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썰물 때마다 다 아득히 먼길이 되는 순천만을 바라보며, 내달리는 바람 편에 애틋한 마음을 띄워 보낸다.
땅 위로 3m, 땅 속으로 2m 뻗은 갈대는 물을 맑히는 청정기다. 순천만이 토해낸 온갖 오염들을 빨아들이고 행궈선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래서 갈대 뿌리는 함부로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건 오직 갈대밭을 지나가는 바람과 철새뿐이다. 늘 흔들리는 내 마음도 갈대밭에 뿌리를 묻으면 해무 같은 나날들이 청정해질까. 어느덧 달이 가고 갈대가 지혜롭게 여물면, 먼길을 떠난 철새들이 제 발자국을 따라 하나 둘 모여든다. 고향도 없고 타향도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은 철새들이다. 철새처럼 살아온 나도 지금 순천만 갈대밭을 찾아오지 않았는가. 갈대밭을 서성이다 갈대가 되어도 후회하지 않겠다. 갈대를 바라보면, 갈까 말까 망설이다 정처없이 떠나는 나그네의 뒷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갈대, 그 깊은 뿌리에 내 남은 생을 걸어본다.
물 속에 드리운 제 그림자를 내려다보는 갈대의 눈동자 속에 '히스'의 향내가 고여 있다. 모든 꽃들이 살지 못하는 황야에서 바람을 맞으며 피는 어기찬 꽃, 히스. 갈대에게 유독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것은 애련한 향내 때문일까. 무향무취인 내 삶 속에도 듬뿍 뿌려놓고 싶다.
순천만 갈대밭에 오니 닫혔던 눈과 귀가 활짝 열린다.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 '전부'가 아니고 '진실'이 아니란 것을 일렁이는 갈대 그림자가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진실'로 포장된 것들과 수없이 부딪히다보니 이처럼 남루해졌노라는 갈대들의 한숨과 체념이 순천만에 양수처럼 번진다. 그러나 세상 절반의 거짓들이 내 몸을 불리고 생각의 키를 키웠기에, 모랫속에서 사금파리를 찾아내듯이 '진실'을 가려내는 눈과 귀가 뚫리지 않았을까, 정말로 다행이다.
갈대밭에 서니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 꽃봉오리인 것을'이란 시가 문득 떠오른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마음과 행동이 딴 길을 걸을 때마다 이 시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매순간 열심을 다해 사랑하며 살았더라면, 지금쯤 저무는 황혼 속을 유유자적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살다가 이제와서 허둥대는 내 모습을 보고, 갈대 사이로 흐르는 시간들이 뒤돌아보며 자꾸만 깔깔댄다.
살면서 한 번도 화려해 보지 못한 갈대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월이란 기차의 묵직한 질주에 몸을 싣는다. 내년 이맘 때쯤 다시 오면, 낡은 갈대들은 순천만 품속에 미련없이 제 몸을 던졌을 것이다. 삶이란, 버리고 떠나는 것이라며 마지막 휘파람을 어기차게 불었을지도 모른다. 내 몸 어딘가에도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갈대는, 바람이고 빛이며 안개다. 순천만은, 바람의 집이고 빛의 궁전이며 안개의 요람이자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성스러운 자궁이다. 그래서 순천만 갈대밭에 서면, 나는 가장 정신이 맑아지는 또 하나의 갈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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