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질량/최민자
봄부터 가을까지, 내 아침은 새들이 몰고 온다. 새들은 참 따뜻한 악기다. 깃털 속에 보드라운 바람을 품고 차고 맑은 소리를 뱃구레에서 길어 올려 산 아랫마을로 증폭시켜 흩뿌린다. 어스름 허공에 씨앗을 파종하듯 짧은 스타카토로를 점점이 뿌리거나 강약 강약이나 강약 중강약 같은 리듬으로 다채로운 빛깔의 선율을 유포한다. 새가 길어내는 레몬 빛 모음과 청량한 새벽 공기와 핸드드립으로 내린 호세 바닐라 커피만으로도 뒤숭숭한 꿈자리가 기척 없이 휘발된다.
청회색 꽁지깃을 가진 새가 행길 위에 그림자를 떨구며 공원 쪽으로 날아 들어간다. 마른 씨앗을 삼키고 뼛속을 비우고 물똥까지 싸질러내는 것도 모자라 목구멍 안쪽의 속울음까지 끼룩끼룩 긁어 내뱉어버리고야 공중의 행보를 이어 붙이는 새들. 가슴 근육과 용골돌기만으로 그림자까지 들어올리기엔 힘이 부치는지 새는 그렇게 햇빛 창연한 길바닥에 먹빛 한 점을 투하시키며 솟구치듯 허공을 가로질러간다. 중력을 가진 물체가 양력을 얻기 위해서는 체세포 안 어둠의 입자들을 낱낱이 스캔해 지모신에게 반납해 이륙 허가를 득해야 하는 것인가.
빈 가지들이 바람에 윙윙댄다. 봄부터 가을까지 햇빛을 사냥해 내내 저를 먹여 살리던 이파리들을 나무들은 가을마다 야멸치게 떨쳐내 버린다. 나무도 가을엔 모둠발을 짚고 무한 허공 어디론가 솟구쳐 오르고 싶어지는가. 마지막 한 잎까지 훌훌 벗어던져도 발목에 밀착된 설피창이 얼룩 하나 떨쳐버릴 수 없어 봄마다 다시 옷을 주워 입고 발가락이나 꼼지락거리며 참고 또 참으며 한 세월을 견디는가.
내 발치에도 수상한 먹보자기 하나 엉겨 붙어 있다. 존재의 그늘인지, 영혼의 바닥짐인지, 느닷없는 돌개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밀착 방어하는 호위무사인지, 발치 아래 잘팍 엎질러진 채 해 아래선 도무지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새들은 떨쳐낼 수있어도 인간은 패대기치지 못하는 그것, 수묵 빛의 저 그늘 한 채를 중력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실존의 버거운 중량 같은. 육신의 저 후미진 안쪽, 컴컴한 지층 갈피갈피에 들어차 있을 온갖 욕망의 현현과도 같은.
멀건 암죽 몇 수저와 몇 모금 물로 연명하고 계시는 엄마는 무너진 고관절 아래 깔고 누운 그림자를 꺼내지 못해 요양병원 침상에 결박당해 계신다. 생의 하중과 맞먹는 막중한 질량의 그림자를 걸머메고 마지막 존엄까지 박탈당하고 계신 노모는 앙상한 등때기에 들러붙은 육중한 지구를 떨쳐버리고 어서어서 가벼이 날고 싶어 하신다. 별빛과 흙가루로 제조된 인간에게 그림자는 이 행성의 영주권 같은 것인가.
성긴 가을 숲으로 새가 날아든다. 그림자를 반납한 새 한 마리, 신갈나무 녹슨 가지에 앉아 운다. 슬픔도 고통도 없는 유리질 모음으로 높고 외롭고 쓸쓸하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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