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기침 /김 만 년
밤이 이슥해지자 상을 차리고 제향을 사른다. 아버지 생전에 하신대로 열을 맞추어 음식을 진설하고 정성을 들여 잔을 올린다. 늘 아버지 옆 자리에서 지켜만 보다가 오늘은 내가 제주祭主가 되어 처음으로 아버지를 뵙는 것이다. 종헌終獻이 끝나고 긴 부복의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 생전의 나날들이 아리게 스쳐간다. 묵배 끝에 일어설 무렵 아이들이 뒤에서 '킥킥' 웃는다. 이유인즉 내가 할아버지 헛기침 흉내를 내더라는 것이다. 어색하다며 아내도 아이들을 거든다. 그런가 싶기도 해 뒷머리를 긁적인다.
지금은 멀어져간 풍습이지만 삼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집안에 대제大祭라는 것이 있었다. 조부님과 아랫대 24종반 제종당숙들, 그리고 조카항렬까지 한자리에 모이면 종갓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돼지를 잡고 떡메를 치고 아이들은 구운 가래떡을 들고 마당을 몰려다니던 시절이었다. 상이 진설되면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두루막 뒷자락에서 절을 했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종조부님의 헛기침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헛기침은 제일 연장자가 하며 그때까지 불문율로 내려오고 있었다.
엄격한 유가풍이 몸에 밴 아버지는 유난히 헛기침이 많았다. 어릴 적 아버지의 헛기침은 예령신호 구실을 했다. "어흠~"하며 마당을 들어서시는 아버지의 헛기침소리에 우리들은 후다닥 읽던 만화책을 숨기고 공부하는 척 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얘들아 아버지 들어가신다.'는 시간적 말미를 부러 주신 것이 아닌가도 싶다. 아버지의 헛기침은 기상나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식전 밭일을 마치고 마당에 푸성귀들을 부리며 "어흠"하시는 헛기침 소리에 남매들은 부리나케 일어나곤 했다. 어쩌다가 혼날 짓을 해도 밥상머리에서 "어흠~"한 번 하시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처럼 어릴 적 아버지의 헛기침은 자식들에게 말없는 규율이며 엄격한 훈시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헛기침은 난처한 자리를 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집안일로 어머니의 잔소리가 길어질 때 아버지는 말로 응수하는 법이 없었다. 흠흠, 하며 철저히 묵언으로 일관하시다가 점점 당신 자신이 궁지에 몰리시면 "어흠, 허어~"하시며 휑하니 자리를 뜨는 것이다. "저, 저 양반 좀 보소!" 하시며 어머니는 답답증으로 속이 뭉그래지곤 했다. 아버지의 헛기침은 싸움을 말리는 기능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집안대제가 끝나면 제종당숙들이 빙 둘러앉아 음복을 나누어 드신다. 몇 순배의 술잔에 얼큰한 취기가 오르면 으레 제법이나 이장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결국 도가 지나쳐 언성들이 높아진다. 그럴 때 조용히 묵관 하시던 아버지가 "어흠~, 고만들 하게" 라며 큰 기침 한 번이면 좌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서열이 높은 점도 작용했을 터이지만 아버지의 헛기침은 그처럼 백 마디 말보다 유효할 때도 있었다.
헛기침은 먼 옛날부터 사용되어 온 언어 이전의 소통수단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민족 만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음성학적 특질이 아닐까도 싶다. 목젖을 타고 발화되는 후두음이 선대先代에 남성중심의 양반유교문화와 어우러지면서 하나의 의사표현 양태로 정착되지 않았을까? 하회탈에 나오는 초랭이나 관아의 이방이 헛기침을 한다는 것은 선뜻 상상이 가지 않지만 양반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육간대청 앞에서 "이리오너라! 어흠 흠"하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처럼 말을 아끼고 은유의 덕목을 중시하는 유가적 전통이 이심전심의 언어로 체화된 것이 헛기침이 아닌가 싶다.
헛기침은 수많은 언어를 내포하고 있다. 그 숨은 뜻을 다 알아 챌 수 있는 사람은 가족들이다. 헛기침의 장단과 강약에 따라 하던 동작을 멈추거나 짐작되는 상황에 대처한다. "날이 꾸무리하다."는 말이 빨래 걷으라는 속뜻이 있는 것처럼 헛기침으로 아침밥을 재촉하기도 하고 밥상머리 언쟁을 중지시키기도 한다. 대문 앞 헛기침소리를 듣고 젖을 주던 며느리가 옷매무새를 고치기도 하고 식솔들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어른 맞을 채비를 한다. 이처럼 헛기침은 환기와 예령 기능 외에도 수없이 많은 지시와 생활규범을 함의하고 있다. 이 불립문자를 다 알아 챌 수 있는 사람은 오랜 유대로 맺어진 가족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실생활에서 헛기침만큼 경제적인 표현수단이 또 있을까?
차츰 헛기침이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급격한 핵가족화와 도시중심의 삶에 떠밀려 집안에 어른이 없다. 삼대가 함께 사는 예도 드물다. 어쩌다 함께 산다고 해도 그 옛날 호기스럽던 아버지상은 사라진 것 같다. 어쩌면 시대의 퇴물처럼 공명한 헛기침으로 잉여인생을 소일하는 것이 도시에서 노년老年을 보내는 이 시대의 아버지 상이 아닐까. 아버지 역시 적조한 노년을 보내셨다. 상처하시고 고향을 떠나 도시의 방 윗목을 지키다가 쓸쓸히 가셨다. 자식 따라 도회로 떠밀려서 온 삶이기에 어딘들 정 붙일 곳이 있었을까? 봄이면 신도시 철로 변을 개간해서 채마밭을 가꾸는 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었다. 이따금씩 기차가 지나가면 아버지는 구부정한 옹이 손을 흔들며 헛헛한 기침을 하시곤 했다. 손바닥만 한 된비알에 먼 기억의 실금을 촘촘히 그어놓고, 아버지는 어쩌면 긴 실향기失鄕記를 쓰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도시에 살면서부터 근엄하고 호기스럽던 아버지의 헛기침도 차츰 쇠잔해져 갔다. 때가 되었으니 밥을 재촉하는 신호와 밤새 안녕하시다는 아침기척 정도로 그 기능도 축소되었다. 낡은 명심보감을 읽거나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시며 방 윗목에서 간간히 내 뱉던 아버지의 헛기침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옛것들을 호명하는 외로운 독백이었는지도 모른다.
정갈하고 풍성한 제사상을 바라본다. 살아생전에 이처럼 풍성한 상을 차려 드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육포와 삼채를 오가며 살갑게 당신께 수저를 권해드린 적이 있었던가. 생전의 죄스러움이 촛불에 스치운다. 그래서 산 효자는 없고 죽은 효자는 있다고 했는가. 어리석은 게 자식인지라 이제는 죽은 효자가 되어 아버지를 뵙는다. 소지燒紙를 사르고 철상을 하자 막내가 윗옷을 훌러덩 벗는다. "음복도 제사다. 아직 제사 안 끝났다."는 나의 말에 "에이 아부지도 안계신데 뭐 어때요."라며 밉살스럽게 응수를 한다. 그런가보다. 나는 아직 신참 제주이기도 할 뿐 더러 아무려면 아버지의 헛기침 한 번의 무게만큼이나 할까. 헛기침은 그만한 성품과 연륜이 따라야 자연스러워지는 법이다. 세월의 더께가 더 쌓이면 언젠가 내 헛기침도 자연스러워지기도 할 것이다. 방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어험~"하며 나오실 것 같은 아버지의 헛기침, 그 말 없는 말씀이 더 없이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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