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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남두육성 / 조미정

에세이향기 2023. 8. 19. 12:21

남두육성 / 조미정

 

산방에 올라 별의 일주운동을 찍는다. 카메라 조리개를 활짝 열어 놓고 연달아 자동 셔터를 눌러댄다. 하늘 전체가 둥글게 펼쳐진 우산 속 같다. 지구 자전축이 회전하면 주변의 천체들도 덩달아 뱅그르르 동심원을 그린다. 북극성 가까이 머문 별들은 황소걸음으로 걷고, 멀리 떨어진 별들은 앙가발이 걸음으로 달려간다. 그 중에서 별자리 하나가 유난히 시선을 끈다.

남두육성은 은하수 남쪽 끝에 국자 모양으로 엎어져 있다. 북두칠성과는 모습이 비슷한 듯 사뭇 다르다. 별의 개수가 하나 모자란 여섯이고 국자 부분도 찌그러졌다. 크기가 작으며 더 어둡다. 짝퉁 별자리라서 구석으로 내몰렸을까? 행색이 남루하여 무대에 오를 만한 자신감이 부족했을까? 사시사철 하늘 높이 붙박인 북두칠성과 달리 남두육성은 한 철 바짝 울고 죽는 매미처럼 한여름 밤에만 잠시 모습을 보였다가 아스라이 사라지고 만다.

지천명이 넘도록 나는 이목을 끌어본 적이 없다. 눈길이 좀 쏠린다 싶으면 조명도 없는 무대 뒤편으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번번이 꽁무니를 감추다 보니 무슨 일이든 벌여만 놓고 용두사미로 끝내 버린다는 지청구를 듣고 살았다. 평생 산림처사를 자처하던 할아버지의 피가 내게로 흘러들었나 보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방구석에 처박혀 혼자 책 읽는 것이 더 좋았다.

생의 한가운데 서서 찬란해지고 싶은 욕심이야 나인들 없었을까. 한때는 나도 앞 다투어 전차에 탑승했다. 꼭대기에 올라서기 위해 서로 짓밟고 올라서는 줄무늬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렇게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업 실패로 낙오자가 되고 말았다. 무대 한가운데는커녕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몸과 마음에 우울증이라는 큰 병을 얻은 것이다.

팔월의 밤하늘은 화려하면서도 신비롭다.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신四神 중에서도 현무 별자리가 떡하니 하늘 복판을 점령하고 있다. 북방의 별 북두칠성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견우성과 직녀성, 하늘 나루터별*도 은하수 가운데에서 텀벙거린다.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일등성이다. 그렇다 보니 있는 둥 마는 둥 어깨를 움츠린 별에 관심두기란 쉽지 않다.

나는 사남매 중 둘째이다. 위로 치이고 아래로 받치는 바람에 매사에 소심하고 하는 일마다 덤벙거렸다. 다 큰 어른이 되고서도 항상 강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며 엄마의 얼굴이 자주 흐려지곤 했다. 착한 끝은 있다고 언젠가 큰 빛을 볼 거라던 다독임과 기대가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다른 형제들이 세상 중심에서 나날이 도드라지는 동안 나는 언제나 희미한 빛을 뿜으며 도린곁으로만 다녔다.

경제적인 궁핍은 나를 더욱 겉돌게 만들었다. 아이들 등록금조차 마련하지 못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야 했을 때는 눈가가 짓무르도록 눈물을 쏟아 냈고 상대적인 박탈감에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버거워 오랜 벗들과의 친목 자리에서도 일탈했다. 늘그막에 집 없는 설움으로 알량한 자존심마저 저당 잡힌 채 기침 한 번 크게 소리 내지 못하고 와신상담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돌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천문도이다. 오랫동안 경복궁의 뜰에 무심히 버려져 있다가 뒤늦게나마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만원 지폐의 뒷면에도 그려졌다. 허나 주목 받지 못한 별들이 씁쓸하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매번 지갑 속에 넣고 다니면서도 비까번쩍한 세종대왕의 초상 혹은 혼천의에 가려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것을 보면.

하늘을 우러러 제사 지내던 태고 적부터 남두육성은 북두칠성과 함께 고인돌의 덮개돌에 새겨졌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서도 해와 달 못지않게 두 별자리가 팽팽하게 대우 받았다. 생명의 탄생과 장수를 관장하는 남두육성은 인간의 죽음을 주관하는 북두칠성에 견주어 좀처럼 뒤지지 않는다. 남두육성은 변방에서 떠도는 방랑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이고, 북두칠성에 떠밀려간 패배자가 아니라 진면목이 가려진 과묵한 순례자임이 분명하다.

빛나는 가치를 지니고도 소외된 삶을 살다간 별들은 무수히 많다. 카프카는 생계가 창작이라는 간극으로 말미암아 평생 광기에 시달린 작가였고, 고흐는 살아생전 그림이라곤 한 점밖에 팔지 못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였다. 박제가나 이덕무는 서얼 출신인 탓에 과거시험조차 응시할 수 없었던 실학자였다.

크든 작든, 밝든 희미하든 이 세상 모든 별들은 저마다의 공전 궤도를 가진다. 남두육성의 궤도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목과 겹쳐질 뿐이다. 그렇다 보니 평소에는 강렬한 빛에 가려져 있다가 태양과 거리가 멀어지는 여름에만 살포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눈에 도드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없거나 하잘것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풀은 땅속에서 제 키보다 몇 배 더 긴 뿌리로 바위를 움켜잡고 있고, 모래뿐인 사막도 암반 속에 우물을 숨기고 있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한다. 소외되어 있던 별들이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자기만의 궤도를 묵묵히 걸어갔기 때문이리라.

참빗으로 빗은 듯 대지 위에 곱게 땅거미가 깔리면 개밥바라기를 필두로 별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제주도에서만 보이는 무병장수의 별인 노인성, 수천 개의 별들이 공처럼 뭉쳐 있는 좀생이별, 겨울밤 반도의 남쪽 끝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느라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천랑성. 이름마저 생소한 아웃사이더들을 지켜보노라면 배시시 웃음이 배어 나온다. 누군가 쳐다보지 않아도 하늘 귀퉁이를 한 땀 한 땀 수놓고 있는 모습이 여간 당당해 보이지 않아서이다. 이 세상에 빛나지 않는 별이 어디 있으랴. 비록 삼등성에 불과할지라도 역시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 아닌가. 갑자기 내가 도드라져 보이고 지금 서 있는 여기가 바로 세상의 중심이다 싶다.

한 권의 점자책처럼 총총한 밤하늘. 손으로 더듬거리면 저 멀리 하늘 모서리에서 남두육성이 만져진다. 여섯 개의 미립자에 가만히 몸을 포개고 나도 푸르둥둥한 밤하늘 위로 백색의 궤적을 그린다. 머지않아 수더분하고 푼푼한 등을 다시 보여줄 여름을 향해서.

*하늘나루터별: 서양의 백조자리 중 데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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