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마
김순경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다. 등신불이 되어버린 듯 미동도 없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낸 길마는 일어날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한때는 쇠등을 타고 산과 들을 누볐지만 지금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소도 사람도 떠나고 없는 빈집을 상주처럼 홀로 지킨다.
길마는 쇠등에 얹는 운반도구이다. 말굽같이 굽은 두개의 나무를 연결해 말안장처럼 만든다. 등에 착 달라붙도록 안쪽에 가마니나 천을 덧댄 길마는 실린 짐이 떨어지지 않도록 배와 궁둥이에 단단히 묶는다. 짐의 균형을 잡아주기도 하지만 긁히거나 찔리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안장이 있어야 제대로 말을 탈 수 있듯이 길마가 있어야 짐을 싣거나 달구지를 끌 수 있다.
한번 등에 올라온 길마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얹히고 실리면 어디든 지고 가야 한다.턱이 땅에 닿도록 목을 길게 빼고 자갈밭이든 가파른 비탈길이든 앞으로 나아간다.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입가에 침이 흘려내려도 곁눈질조차 할 겨를이 없다. 볏단이나 가마니가 무겁게 실리면 발을 옮길 때마다 통뼈 같은 네 다리가 후들거리고 근육은 쉴 새 없이 요동을 친다. 털이 빠져 맨살이 드러나고 굳은살이 혹처럼 부풀어 올라도 채워진 길마를 쉽게 벗지는 못한다.
소가 어쩌다 길마를 지게 되었는지, 맑고 큰 두 눈을 보면 선하기 그지없고 그늘에 누워 되새김질할 때면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런 날은 많지 않다. 남을 해치거나 성가시게 하지 않고 천천히 풀만 뜯는 소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그렇게 큰 짐을 져야 하는지. 죽어서도 몸뚱이를 보시하지만 물 한 모금 마실 새도 없이 마지막 가는 날까지 짐을 지고 달구지를 끈다.
한동안 지게를 졌다. 그때는 어느 집이든 크고 작은 지게가 창고나 헛간에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몸에 맞지도 않는 지게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때는 지게가 무엇인지 그것을 벗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때가 되면 당연히 져야 하는 줄 알았다. 식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짐을 져야 하는지는 더더욱 몰랐다. 어깨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생겨도 쉽게 지게를 벗을 수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더 크고 무거운 짐이 올라왔다. 어떤 것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삶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소도 처음에는 길마가 어떤 건지 몰랐다. 무거운 짐을 불러오는 도구인지 알았다면 순순히 등을 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뭔가가 올라오면 꼬리를 치켜들고 거품을 내물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게 몇 번 발버둥치며 떨쳐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고삐를 움켜쥐고 굽은 나무를 등에 얹으면 뛰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갈수록 짐은 점점 크고 무거워졌다. 숨 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사정없이 짓눌러도 한번 올라온 짐은 마음대로 내릴 수가 없었다.
가장이 가는 길도 그렇다.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 모르고 들어선다. 할아버지가 갔던 길을 아버지가 따라가고 세월이 지나면 아들도 밟는다. 꽁무니만 보고 따라가는 양들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앞만 보고 따라간다. 설사 물어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벗겨도 껍질밖에 없는 양파 같은 길인 줄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그 길은 왕도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이라는 이름 위에 짐이 쌓이면 등이 휘고 머리는 하얗게 변해간다.
아버지는 가장의 짐을 지지 않으려 했다. 젊은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외지를 떠돌았고 전쟁이 끝나자 산골에 들어가 송진 공장을 차렸다. 모두 부자가 되는 줄 알았지만 판로가 만만치 않아 부도가 났다. 중년에는 공업도시의 중심가에서 판유리 대리점을 시작했다.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때마다 논밭을 팔아야 했다. 마지막에는 소도 산도 급매물로 내놓았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어린 자식들은 고향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장의 짐을 나누어져야만 했다.
집안 살림은 어머니 몫이었다. 첫닭이 울면 캄캄한 방에 호롱불이 켜졌다.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시작되는 일과는 자식들 얼굴도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다. 논밭 일에도 앞장서야만 했다. 빈 땅만 있으면 뭔가를 심었다. 논두렁이든 밭두렁이든 황무지를 개간한 산비탈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집 근처에는 파나 부추 같은 것을 심고 자주 가지 않아도 되는 메밀은 먼 밭에 심었다. 끝없는 밭일에 손가락이 휘고 관절이 꺾여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에 주름살이 깊어지고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어도 언제나 밭일을 하고 있었다.
가장은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거센 파도에 맞서 항해를 계속해야 하는 선장처럼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가정을 끌고 가야만 한다. 무리의 수장이랍시고 먹을 것부터 챙기는 수사자처럼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은 가장이 아니다. 일어설 힘조차 없어도 필사적으로 사냥하고 배가 고파도 식구들부터 챙겨야 가장이다. 알만 낳고 자리를 뜨는 암놈보다 새끼가 될 때까지 포식자와 싸우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가시고기가 진정한 가장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는 하나의 운반기계라고 도킨스는 말한다. 물려받은 유전자를 가장 많이 안전하게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이기적인 유전자라고 한다. 어쩌면 그 말도 일리는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을 감수하면서도 자식을 보듬는 모성애나 어떤 힘든 일도 마다않고 험지에서 일하는 가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쉽게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 멀리 달아나려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점점 옥죄어진다.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최면을 거는 것일 뿐 언제나 같은 길이다. 그 길은 반질거리던 얼굴이 밭고랑처럼 주름져도 자식을 길마처럼 지고 사는 부모의 길이다.
사람은 누구나 길마를 짊어지고 산다. 가장이든 아니든 태어날 때부터 짊어지고 사는 길마는 마음대로 내려놓을 수가 없다. 열사의 모래바람이 숨통을 조여와도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처럼 허리가 휘고 주름이 온몸을 감싸도 우직하게 가야만 한다. 그것이 삶이다.
지나온 질곡의 세월이 헛간의 길마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