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집 불독
백정혜
짐승을 두고도 면식이란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불독을 봤을 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줄잡아도 오 년이 넘도록 보지 못했던 남의 집 개를 첫 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무엇으로도 나를 알아볼 리 없는 짐승이었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건 반가움 때문이었다. 한길 갓집 문지방에 걸쳐 누운 개는 섭생인 양 바깥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었지만 경계의 빛이라곤 아예 없었다. 다가앉은 낯선 여자를 그저 멀뚱히 쳐다만 봤다.
잔등이며 목덜미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입안에서 빙빙 도는 말을 계속 응얼거렸다. 반십 년 소식 모르다가 만난 사람이었다면 나눌 수 있는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절친한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개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간의 변모를 헤아리고 재빨리 상대를 훑어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축 처진 양볼과 깊은 주름에 묻혀 있는 납작한 코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바닥에 늘어진 배와 허옇게 붙어 있는 젖꼭지를 보고서야 그 개가 암컷임을 처음 알았고, 몇 배의 새끼를 낳았으리란 짐작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불쑥 '늙은 암캐' 하려던 말을 얼른 삼켜버렸다. 마른 손바닥에 쓸리는 내 빰에도 까슬한 세월이 남겨져 있었으니 이제 그 개가 무엇을 지키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고, 조금은 추저분해 보였다. 갑자기 늙은 불독이 매여 있는 처지가 궁금했다.
한쪽으로 밀쳐 둔 유리문에는 갖가지 음식 이름들이 선명한 페인트 글씨로 쓰여 있었다. 길가에 내놓은 철판 화로에서는 막 붙여 넣은 연탄 연기가 파랗게 피어 올랐다. 군때 오르지 않은 선홍색의 글씨와 은회색의 광택이 남아 있는 함석 식탁, 불독의 임자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구이집 주인인 듯했다.
그때, 인기척에 돌아다본 등 뒤에도 내가 분명 알아볼 수 있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서로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빙긋 웃었다. 지난날 그가 길거리에서 구두를 수선하고 내가 단골이었을 적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젊은 날의 야치와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떨쳐버린 남자는 보기좋게 몸이 일어 있었다. 그 웃음은, 길거리에서 그를 보지 못했던 동안 그와 그의 생활에 찾아든 여유라는 것을 감지하게 해 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십수 년 전이었다. 내가 시장 동네로 이사를 오고 달포나 되었을까. 길목 노른자위에 자리를 잡은 그들 내외를 보게 되었다. 서른 안팎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차린 노점으로는 그들 나이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삶의 벼랑까지 밀려난 궁박한 사람들일 거라는 추측이 어렵지 않았다.
남편의 장사 밑천이라고는 접는 의자 하나에 구두 수선에 쓰이는 구지레한 도구 몇 개가 전부였다. 그에 비하면 옆자리의 아내에게는 낫게 투자한 물증이 드러나 보였다. 새로 마련한 리어카 화덕에서 어묵 국물을 우려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그래선지 맺힌 데 없이 밝기만 했다.
한창 나이의 부부가 매달린 일치고는 나이가 시답잖다던 나의 생각은 잠시였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던 꿋꿋한 시작에의 의지는 마치 마지막 사투같이 보였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삶의 격전장에서 그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만만찮은 젊음이었음을 알았다.
나의 직감이 정확했다면, 그들은 어두웠던 밑바닥 생활을 청산하고 뒤늦게 만난 사람들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강퍅한 적개심을 내보이던 남자와 해납작한 얼굴에 헤픈 웃음을 흘리고 있는 여자가 그런 선입견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주변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언제나 그들 사이에 딱 버티고 있는 불독이었다. 우긋한 안짱다리를 세우고 맞보기 민망할 정도로 못생긴 개는 오히려 그 낯바닥 때문에 순종일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감별에 밝은 애견가라면 심상히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은 구두 수선공의 불독은 누가 봐도 머금찬 경우였다. 투견판에서 돈을 물어다 줄 것 같지도 않았고 맹렬히 지켜야 할 무엇이 그들에게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였다.
처음엔 나역시 아닌 척 곁눈질로 그들을 지나치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를 따라붙는 그의 눈길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종아리가 뻣뻣해지곤 했다. 그러나 그가 뒤쫓아 본 것은 나의 각선미가 아니라 단지 갈아대야 할구두 뒤축이었음을 나중에 알앗다.
머지않아, 그 남자의 는정거리는 눈길을 피하기보다는 내가 그들의 손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사과 궤짝에 앉아 구두창을 갈거나 흠실흠실 어묵을 먹으면서 가까이에서 본 내외는 훨씬 더 젊어보였고 곧잘 어울렸다. 어찌 보면 천잡한 몸치장에 쉼 없이 나다분거리는 아내. 그 여자가 사랑스러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남편. 그들은 이미 거친 가난의 몸살을 사랑이라는 거룻배를 저어 반쯤은 거슬러 오른 사람들이었다. 내가 무슨 사치냐고 했던 능준한 불독은 그 남자가 검질기게 지켜 온 자존심이란 걸 그때쯤 알게 되었다.
십오 년이 지난 뒤, 나는 다시 그들 구이집 단골이 되었다. 구두 뒤축을 따라오던 눈길 대신 웃음을 보이는 그는 이제 불독을 향해 날붙이의 퍼런 기합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손님이 권하는 낱잔에 체면이 풀리면 말추렴도 붙여오지만 나는 꺼리지 않았다. 응달진 골목에서 시작해 구이집 간판을 올리기까지 그들의 '성공'이 안겨주었을 피곤을 내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님이 던져 주는 곱창에도 식욕을 잃고 누워 있는 불독, 그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던 늙은 개는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번잡한 일상에 허둥거렸던 시절, 내가 화려한 구두로 지키고 혹은 숨기고 싶었던 소망과 아픔은 무엇이었을까. 곱창집 목로판에서 구이 한 점과 소주로 한 저녁을 때우는 날이면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며 술시중을 드는 주인 남자가 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걸까. 그리고 나는 왜 고달팠던 나의 지난날들이 그리워지는지.
우리가 닿은 소망의 강가에 정박된 젊음의 거룻배. 그 배로 건너는 왔지만 결코 되돌려 탈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린 까닭에 그리움은 슬픔과 함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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