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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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단나/박순태

에세이향기 2023. 12. 3. 11:32

단나/박순태


 육면체의 근원은 점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공간을 채워주는 물체가 된다. 입체의 출발은 미미한 점이었으나 결과는 삼차원 예술품이 되었다. 작은 것이 조금씩 모이다 보면 후에는 당초 예상할 수 없었던 큰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내 삶의 삼차원 예술인 단나도 초배기라는 옛날 도시락이 근원이다. 단나는 남을 사랑하여 나눈다는 뜻이다. 이 일은 이순을 코앞에 둔 내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다.
 초배기를 만난 것은 포항의 '덕동마을 민속 박물관' 이다. 그곳에는 항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옛날 물건이 많았다. 이름만 들어도 정감이 가는 물건에서부터 아주 생소한 물건까지 진열 되어 있다. 그때 내 눈을 잡은 것은 옛날 도시락, 초배기다. 유리관을 통과한 내 마음이 허기진 내 배를 알아차리고 이미 초배기 뚜껑을 열고 있었다.
 보리 흉년이었다. 장마 때문에 수확을 앞둔 보리에서 싹이 나와 들판에서 썩어버렸다. 부모님의 한숨 소리는 하늘을 절반도 올라기기 전에 허공중으로 흩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도 덩달아 쉬지않고 비를 뿌리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하늘은 여름 내내 애간장을 태웠다. 먹을 것이 없었다. 아기 주먹만한 감자 하나로 하루 종일 허기를 면해야 했다. 뱃속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발자국을 따라 장단을 맞췄다. 얼굴에는 굶주림의 연속으로 마른버짐이 허옇게 번졌다.
 여름 방학이 되어 이런 몰골을 하고 내가 날마다 가는 곳이 있었다. 산 밑에 작은 샘물터다. 나는 그때 높은 산기슭 외딴집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며 혼자 지냈다. 일꾼들은 초배기를 비닐로 싸서 시원한 그늘 샘물에 담가두고 풀을 베러 산으로 갔다. 그들은 부잣집 머슴들이다. 화학 비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퇴비를 마련하러 산으로 갔다. 내 마음은 오직 초배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숨죽이며 살금살금 초배기로 향했다. 초배기 뚜껑을 열까말까 갈등의 순간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고픈 배는 손을 만류할 새도 없이 이미 초배기 뚜겅을 열고 있었다. 손으로 밥을 세 번 긁어 먹었다. 옆에 있는 밥을 끌고 와서 표시나지 않게 마무리 해놓고 손자국을 지웠다. 초배기 뚜껑을 정신없이 덮어 두고 '걸음아 날 살려라'며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다. 달려운 탓인지 배는 다시 허기진다. 두려움은 없어지고 조금 더 먹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생긴다.
 다시 샘물터 근처로 살금살금 가 본다. 바위 뒤에 숨어서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일꾼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군침을 삼켰다. 내가 긁어먹은 초배기의 주인이 혹시나 알아버리면 어쩔까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다행히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알면서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슬며시 일어서서 그들 옆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내가 긁어 먹은 그 초배기 주인인 일꾼이 손짓을 하면서 나를 부른다.
 "꼬마야 이리 와서 밥 먹어라"
 훔쳐 먹지만 않았어도 달려갔을 텐데 지은 죄가 있어 그런지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도 허기진 배를 이길 수는 없어 그들에게 갔다. 일곱 명의 초배기에서 조금씩 얻어먹다 보니 내 배는 올챙이처럼 볼록해졌다. 내 유년엔 풀베는 일꾼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던 날이 많았다.
 오후 수업이 있는 4학년이 되면서 부터 학교 가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미국의 원조로 학교에서 끓여주는 강냉이 죽과 우유 과자를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나눠먹는 도시락이 최고였다. 친구들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펼치며 누군가 내게로 젓가락을 건네 주었다. 친구들 도시락에 한 번씩만 먹어도 배고프지 않을 만큼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물로 고픈 배를 채워야 하는 토요일 일요일이 싫을 정도였다.
 때때로 친구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받을 때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볼 새라 조심해서 살짝 전해주는 그 도시락 속에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뚜껑을 열면 하얀 쌀밥에서 구수한 냄새가 올랐다. 먹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때가 있었다. 지금 친구의 어머니는 계시지 않지만 그 정성만은 아직도 내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세상에서 제일 참을 수 없는 설움이 배고픔이다. 배를 채우기 위해 찬물을 억지로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그때 얻어먹은 초배기 밥과 친구의 도시락은 내 삶에 각인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 가든 그곳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어지간한 자리에서는 내가 밥을 사는 편이다.
 내가 인연이 된 사람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무척 행복하다. 지금 내게 가장 행복한 일이 있다면 밥 사줄 사람이 아직 옆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내 배 부른 것이 '푼'의 행복이라면 남이 배부른 모습을 보는 것은 '할'의 행복이다. 아마도 그 옛날 초꾼들이나 친구들도 내가 허겁지겁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나처럼 행복했을 것이다.
 초배기에서 시작된 작은 나눔의 사랑이 지금 내게는 무한한 사랑의 베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기 초배기의 밥을 훔쳐 먹은 것을 알았으면서도 나를 배부르게 했던 그분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 일꾼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 받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나 밖에 모르는 욕심쟁이가 되었을지 모른다. 사랑이나 베품은 나눌 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을 알게 해준 '초배기'이다. 내 삶에 가장 큰 무형예술품을 만들고자 오늘도 주저 없이 함께 밥을 먹는 일에 앞장선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단나는 밥을 나누어 먹는 일이다.
 전시관에서 우연히 만난 초배기가 수 십 년 전에 헤어진 일꾼들을 만난 듯 반갑다. 내게 초배기로 점을 찍어주고 간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나는 밥으로 짓는 단나라는 삼차원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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