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조미정
눅진한 이불솜을 널어놓은 창틀 사이로 가을 햇살이 비집고 들이치던 오후이다. 열어놓은 창으로 사마귀 한 마리가 들어와 마루 끝에 걸터앉는다. 지레 겁을 먹고 긴 막대로 허공을 툭툭 쳐 조용하던 일상을 흔들어 놓은 건 아마도 내가 먼저였을 것이다. 못마땅한 듯 사마귀가 지그시 나를 노려본다. 배가 납작한 수컷이다.
언젠가 다큐에서 사마귀의 교미 장면을 보았다. 열 시간이나 계속되는 짝짓기 동안 배고픔을 참지 못한 암컷이 수사마귀의 머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몸의 절반이 사라졌는데도 짝짓기의 행위를 멈추지 않을 정도로 수사마귀는 집요했다. 자기의 영역 안에서 평생 혼자 살아가는 사마귀는 교미를 할 때만 페로몬을 방출하여 수컷을 유인한다. 그 유혹은 치명적이지만 수사마귀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았나 보다. 머지 않아 배를 한껏 부풀린 암컷이 산란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식에 대한 본능이 사람의 일처럼 맹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울타리가 허물어져 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뼈빠지게 일하던 남편이 떠올랐다.
그 즈음 남편은 백수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실패한 후 쉽게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괴로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자 쏘아대는 내 잔소리도 곱절로 늘어 갔다. 생활고보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을 한꺼번에 그만두게 된 것이 더 괴로웠다. 처진 어깨로 대문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이 크게 들썩이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체했다. 며칠 뒤, 남편이 일자리를 찾아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몹시 놀랐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앉을 때까지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떨어져있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내 두 손을 꼭 잡고 힘을 주는 남편이 미덥지 않아 슬며시 등을 돌렸다. 그 순간 나는 암사마귀를 닮아 있었다. 당장 눈앞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턱대고 남편을 사지로 내모는 듯했다.
암사마귀가 모질다고 하나 세상 모든 일이 음과 양이 있듯이 사마귀를 생각할 때도 한 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 교미에 성공한 암사마귀는 닥치는 대로 먹이를 갉아 먹는다. 포악한 성품 탓이라기보다 산란을 위한 영양분을 비축해 두기 위해서이다. 여느 어미들처럼 사마귀 역시 자식에게만큼은 삶을 송두리째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모성을 가졌다. 늦은 가을, 나뭇가지나 풀줄기에 알을 낳고 죽어버린 어미 사마귀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내혹하다가 밀어붙였던 지난 일이 후회가 된다.
나도 어미 사마귀처럼 강한 모성을 보여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들은 자주 부모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공부를 직접 가르치는 대신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며 소리만 버럭 질러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춘기를 반항적으로 겪는 아이들을 혼자서 감당하기엔 내 뒷바라지가 턱도 없이 모자랐다. 아이들은 던지듯이 툭 말을 건네거나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 일들이 덤덤한 일상이 되어갈수록 몸과 마음은 더욱 지쳐갔다.
눈을 뜨면 몸이 자주 붓기 시작했다. 연가시에 감염이 된 사마귀처럼 내 속이 다 문드러진 탓이었다. 연가시는 수생생물로 유충일 때 사마귀에게 감염되었다가 내장을 파먹고 자란다. 성충이 되면 기생하던 숙주를 물가로 이끌어 죽게 만드는 무서운 기생충이다.
겨우 몸을 추슬러 며칠에 한 번씩 소식을 전하던 남편을 찾아갔다.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찾아간 남편의 숙소는 뜻밖에도 문명과 멀리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자재를 보관하는 큰 창고 옆에 이동식으로 지은 조립식 목조 건물은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빗물이 새었다. 지난 밤 잠시 내린 가을비에도 천장이 새어 여기저기 빈 플라스틱 물통에 빗물을 받쳐두고 있었다. 내무반 같은 구조의 마룻바닥에 온돌도 깔려 있지 않은 그곳은 방이라기보다 창고에 더 가까웠다. 얼룩진 벽에서 눅눅한 곰팡내가 났다.
방 안의 적막을 깨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햇빛 속에 서 있어도 한기가 선득선득 어깨에 올라오던 10월말이었다. 가끔씩 집에 들를 때 무엇인가를 챙겨주려고 하면 남편은 한사코 거절했다. 잠자리도 따뜻하고 도랑이 있어 여름마저 시원하게 보냈다고 아무 걱정 말라며 내 건강이나 챙기라고 신신당부하곤 했었다. 그동안 전혀 해보지 않은 막노동을 하면서 고생한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입 밖에 내어 말하지 못했다. 거칠어진 손이며 까맣게 탄 피부가 은근히 마음이 쓰였지만 당장 입에 풀칠하기 바쁜 당시의 처지에 그만한 고생은 당연한 일이라고 얼버무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묵묵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나처럼 암컷에게 몸뚱이를 다 먹히고 날개만 남겨놓은 수사마귀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햇빛을 받고 투명하게 반짝이던 날개처럼 아이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오랜 세월 같이하며 든든한 동지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서로 상처를 주며 등을 돌리는 가족을 종종 보았다.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일도 가족이기에 더 큰 아픔으로 받아들여진 탓이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은 가족 간에 더욱 쓸모 있는 말인 듯하다. 어려운 일에 처했을수록 더욱 토닥여 주어야 했는데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원망의 탑을 쌓았던 일이 후회가 되었다. 그동안에도 남편은 묵묵히 우리를 보호해 줄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겨울, 우포늪 답사를 갔다가 잡목이 우거진 갈대밭에서 사마귀의 알집을 보았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을 정도로 견고했다. 수시렁이, 사마귀좀벌 등의 공격을 받아 사마귀의 알집은 성한 것이 드문데 용케 천적을 피했던 모양이다. 손가락 마디만큼 작은 집에서 수백 개의 알들이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봄이 되어 알에서 깨어날 새끼 사마귀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까지 부모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음을 알지 못한다. 따뜻한 보살핌 없이 혼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더욱 까탈스런 성품이 되어 욕지거리도 들을 것이다.
나도 한때 부모님을 원망했었다.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라고 했을 때였다. 어머니보다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섭섭함이 컸었다. 그맘때의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어깨가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때마침 묵직하게 불어온 바람에 사마귀가 건들거렸다. 멀리서 풍겨오는 암사마귀의 페로몬 냄새를 맡았을까? 나를 보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 버렸다. 지금은 바야흐로 사마귀의 짝짓기 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