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 / 최금진
나는 어느새 늙었고, 내 손은 그걸 잘 알고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면 뒷짐을 지거나 짐짓 팔짱을 낀다
내 과거는 토굴이었고, 손바닥은 언제나 더러운 때가 끼어 있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이웃들의 당돌한 악수가 무서웠다
나는 아픔이 아픔인 것을 모르던 어린놈이었다
소금 반찬으로 밥을 먹고, 혼자 학교에 갔고
학교에선 숙제를 안 해온 죄로 손바닥을 맞고
아이들은 입을 가리고 웃는 나를 계집애라고 놀렸었다
이제 그 손이 늙은 것이다
찌릿찌릿 경련도 오고, 각질이 때처럼 일어난 손이
어느 날, 맥없이 늙어버린 것이다
노란 단무지 같은 얼굴로 혼자 몸살을 앓다가
나를 사랑할 이유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을 때
남에게 싹싹 빌던,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기 위해 입을 가렸던
내 손이 곁에 누워 나를 쓰다듬고 있었다
헤어진 첫사랑 얘기, 때려치운 직장 얘기, 성경책을 찢어버린 얘기도
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나는 토닥토닥 내 손을 두드렸다
내 나이 마흔둘, 나는 초라한 손을 가진 사내가 되었다
붙잡았던 것은 다 떠나고 없다
물 새듯 손가락 틈새로 다 흘러나갔다
못난 손, 어정쩡한 손, 쭈글쭈글한 손으로 나는
남은 생애 동안 밥이나 퍼먹을 것이다.
돈을 만지고, 허겁지겁 통장을 펼쳐보거나, 쌀을 사거나
자식 학비를 대거나, 어머니 수의를 사거나
이 손을 바지랑대처럼 들고 다니며 뭔가를 괴어놓고 걸쳐놓고
바람 좋은 날엔 몸이 빠져나간 헐렁한 속옷이라도 널어야 한다
이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와 정면으로 앉아 밥을 먹지 않는다
믿을 건, 꺼끌꺼끌한, 울퉁불퉁한 손 하나뿐이니
달빛에 맡겨둔 나머지 손을 슬며시 거두어들일 수밖에
늙은 소나무들은 알몸으로 산등성이에 서서 이쪽을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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