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 아젠다 / 김영찬
역사상 가장 아름답게 태어난 나는
서사성 짙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밤잠을 거른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쓴 글
높새바람에게 던져주고 남은 날숨을 구름옥상 위에
방치한다
까막까치가 날아와서 불순물 섞인 운문을
쪼아 먹으리
역사상 가장 힘들게 고고한 자태로 버텨야 하는
나는
내가 나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연필심에 침을 바른다
-김영찬 시집<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중 나는 더욱 소중하다. 이 세상 올 때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오지 않았을 것이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귀한 존재로 살아가라 왔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귀함을 잘 모른다. 역사상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를 무시하거나 때로 없는 존재로 취급하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모르는 세상,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어둠 속에서 숨을 조절하는 것이었을 뿐, 나라는 존재 증명을 위해 다시 일어선다. 내가 나를 치료한다. 살아온 발자취는 바람에게 던져주며 그 운문은 까막까치가 먹을 것이라 한다. 그렇게 지나온 길을 깨끗이 지우고 앞으로의 비망록을 다시 쓴다. 일생에 있어 가장 힘든 고난의 시기라도 고고한 자태로 버티며 연필심에 침을 바르는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위한 날들을 열심히 살아보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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