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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말뚝 / 이은정

에세이향기 2024. 1. 30. 09:29

말뚝 / 이은정

 

 

 

텃밭 반만 갈아 퇴비를 뿌려놓았다. 짐승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그물을 두를 계획이다. 목장갑을 끼고 적당한 위치를 찾아 말뚝을 박는다. 세운 말뚝을 붙잡고 좌우로 흔들어준다. 제가 놓일 자리를 찾으란 뜻이다. 흔들흔들. 점쟁이 굿하듯, 노인네 지팡이 흔들 듯, 흔들흔들 흔든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한다. 한쪽 끄트머리를 망치로 내려치기 시작한다. 쿵 소리 한 번에 말뚝의 키가 훌렁 줄어든다.

세 군데 말뚝을 박았다. 니은 모양으로 양쪽 끄트머리와 가운데 코너 부분이다. 튼튼하게 박힌 걸 확인한 후 초록색 그물망을 두른다. 한쪽 끝에 박은 말뚝에 그물망을 고정하고 코너를 돌아 다른 끝에 가서 고정한다. 제법 그럴싸한 그물 벽이 생겼다. 가운데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한 번 더 팽팽하게 당겨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제 목비만 내리면 된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이 봄볕과 목비에 모공을 늘어뜨릴 것이다. 그때 퇴비가 스며들면 농작물을 심기에 좋은 땅이 된다.

기다리던 비가 왔다. 봄비치고는 제법 고약하게 왔다. 창고 위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갈 듯 몸을 뒤척이며 철퍽척퍽 요란한 소리를 냈다. 텃밭과 마당 사이 배수로가 흙으로 막혀 빗물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배수로에 쌓인 흙을 퍼내던 내 눈에 말뚝이 들어왔다. 세 개 모두 단합한 듯 안쪽으로 쏠려있었다. 팽팽하게 매어둔 그물망은 가운데가 움푹 내려앉아 제 쓸모를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 그치면 볼일이었다.

날이 맑아지자 작심하고 텃밭으로 향했다. 땅이 질퍽해 말뚝이 제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보였다. 가까스로 그물망을 붙들고 있는 말뚝 세 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차마 놓아버리지는 못하고 어쩌다 보니 어정쩡하고 위태롭게 서로 의지하고 있다. 저들은 무엇을 지키려고 저리 안간힘을 쓰고 있을까. 늙은 부모와 늙어가는 자식들처럼 걱정과 부담이 양립하는 말뚝과 그물. 부모가 말뚝일까, 자식이 말뚝일까. 세상 많은 요인이 중심을 잡지 못하게 시련을 주는데 완전히 엎어질 수도 없게 만드는 어떤 대상. 귀천을 따질 수도 없는, 그저 한 몸 같은 끈질긴 무엇. 어쩌면 서로가 서로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서 있기도 턱없이 부족한 힘으로 그물을 붙들고 있는 말뚝은 어쩌면 내가 가서 툭 쳐주길 기다리는지 모른다. 쉬게 해 줄까, 싶다가도 그 책임감에 감복했는지 가만 서서 바라만 보았다. 가까스로 버티는 것은 비단 말뚝만은 아니었다. 축 처져 내려앉은 그물도 힘겨워 보이긴 매한가지다. 붙잡는 쪽도 붙들린 쪽도 온전히 자발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차라리 말뚝이 엎어지면 그물도 몸을 풀고 편안할 텐데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끝까지 서로를 놓지 않는 말뚝과 그물은 위태롭지만, 함께, 살아있다.

아버지 팔뚝에 어린 동생과 내가 대롱대롱 매달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뱅그르르 돌며 힘을 과시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다리는 적당한 크기로 벌어졌을 테고, 근육은 팽팽하게 날이 섰을 것이다. 매달린 우리는 떨어질까 두려웠지만, 아버지의 힘을 믿었고 아버지라 믿었다. 팔을 부르르 떨며 버티던 젊은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다. 당신의 팔에 매달린 작은 딸들이 다치지 않도록, 마음 놓고 자신을 의지하도록 끝까지 버티었다. 그물이 진흙탕에 내몰리지 않도록 끝내 붙들고 있는 젖은 말뚝에서 씁쓸한 감회가 인다. 늙은 아버지의 팔뚝 같은. 이제는 신뢰하지 않는 딸들의 의지 같은.

나는 말뚝에서 나를 보았을까, 내 부모를 보았을까. 꿈과 현실의 괴리, 책임감과 고집의 차이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은 신뢰를 넘어선 안심의 관계라는 것을, 지나친 책임감이 고집으로 변질되어 관계를 허물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린다. 자식을 위해 생을 바친 가난한 부모와 늙은 부모를 마지 못해 건사하는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그물 같은 신뢰를 본다. 안간힘으로 그물을 붙들고 있는 말뚝처럼 위태로워도 무너질 수 없는 집요한 관계의 업(業)을 본다. 가난과 시련을 함께 인내하며 맞잡은 손을 기어코 후손에게 넘겨주고 마는 고집, 혹은 책임감. 부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관계가 주는 무거움은 단지 고통이고 짐일까. 벚꽃처럼 가볍게 흩어져야 아름다울까. 통제받지 않는 자유가 종국에 가져올 고독 따위엔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말뚝이 하는 말을 전한다. 혼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해. 시련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새 말뚝 하나를 챙겨 다시 텃밭으로 향했다. 말뚝과 말뚝 사이에 또 다른 말뚝을 박았다. 가운데 놓인 새 말뚝에도 그물을 고정했다. 양쪽 끝에 있던 말뚝이 더 흔들리지 않는다. 그물을 지탱하는 힘이 분산되니 그물 또한 팽팽함을 유지한다. 힘을 분산시키고 책임감을 나눈다. 다시 무너지는 일이 생겼을 때 죄책감도 나뉠 것이다. 모두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집이 기둥 하나로 지어질까. 자동차가 어디 바퀴 하나로 굴러가던가. 소나무 하나가 우뚝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뿌리가 작은 힘을 그러모으는지,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는 얼마나 많은 음의 조합인지 알면서도 모른 채 살아온 빈 가슴이 부끄럽다. 그 속에 늙은 내 부모가 보이고, 힘겨워하는 내 형제가 보이고, 손을 놓지 못하는 서로가 보인다. 그래도 끝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위태롭지만, 함께, 살아간다.

말뚝에 힘을 주기 위해 말뚝 아래에 돌을 쌓았다. 그물이 잘 버티라고 제일 위쪽에 빨랫줄을 덧대어 둘러주었다. 말뚝이 허리를 쭉 펴니 그물이 함께 일어선다. 부러 말뚝을 툭 쳐보았다. 끄떡도 하지 않는다. 조금 더 세게 쳐보았다. 여전하다. 이번에는 그물을 슬쩍 잡아당겨 보았다. 그물을 붙잡고 있는 말뚝이 바르르 떨린다. 그물이 제자리로 돌아가며 팽팽함을 유지한다. 그 안에서 자랄 새 생명에게 의지가 되어주려는 듯 말뚝과 그물은 서로를 끈질지게 붙잡고 있다. 자신을 믿으라는 듯, 마음껏 자라라는 듯.

그물 안에 파릇파릇 싹이 돋으면 말뚝은 저 자신을 더욱 살팍지게 할 것이다. 그물이 제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묵묵한 조력자가 되어 줄 것이다. 다시 중심을 놓쳐도 맞잡은 손은 놓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함께 시련을 이겨냈으니 이번에는 더 끈끈하게 붙잡지 않을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을 배웠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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