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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하얀 민들레/강여울

에세이향기 2024. 3. 21. 10:40

 

하얀 민들레
여울
 


“옥상에서 지심을 뽑았더니 몸이 고되구나.”
퇴근해서 현관을 들어서자 어머님이 오늘 한 일을 이야기하고는 엉금엉금 방으로 기어가신다.
지심 뽑을 땅이라고 해봐야 예전에 김장 배추를 절이던 커다란 고무통 하나와 화분 몇 개일 뿐이다. 흙 밟을 일이 거의 없는 도시에 살다 보면 늘 흙이 고프다. 그래서 흙을 옥상 화분에 담아놓고 그가 부리는 마술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흙은 얼마전부터 고추 모종 아래 민들레 몇 포기를 살려내 하얀꽃을 피우고는 바라보는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다.


지난해 봄, 먼 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갔었는데 도시에서 보기 힘든 하얀민들레 군락이 있어 씨앗 두어 대공을 뜯어 왔었다. 옥상 흙에 묻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흩어놓았는데 기특하게도 몇몇 씨앗을 품고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 것이다. 낮에도 쉽게 볼 수 있는 노란 민들레와 달리 하얀 민들레는 개화시간이 짧았다. 아침에 활짝 피었다 태양이 뜨거운 오후가 되면 꽃잎을 접는 탓에 퇴근해서는 꽃을 볼 수 없었다. 바빠도 아침에 일부러 민들레를 본 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다. 척박하고 삭막한 도심의 옥상에서 안간힘으로 피어난 하얀 민들레는 달처럼 순박하게 마음을 미소 짓게 했다.
“잘 안 뽑히더라 애를 먹고 뽑아서 비닐봉지에 담아 놨으니 갖다 버려라.”
토마토 주스를 받아 들며 어머님이 한 번 더 당신이 한 일을 자랑하신다.
“예”하고 대답하면서 몸이 무거운 어머님께는 그것도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싶다. 몸이 워낙 뚱뚱하니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머님께는 노동이나 마찬가지다.
지난주 일요일엔 어머님은 집 밖에 나가셨다가 한 시간여 만에 되돌아오셨다. 현관문을 미는 듯한 소리에 나가 보니 어머님이 바지를 벗고 팬티바람으로 앉아 있었다. 옷은 무론이고 양말이며 신발까지 냄새도 장난이 아니었다. 몸을 씻기고 옷들을 빨아 널고, 현관과 계단 청소까지 하고 나니 몸이 거의 파김치가 되었다. 야간 일을 하고 와 오전 내도록 그 난리를 쳤으니 밥맛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만큼 속을 비운 어머님은 반찬 하나 남김이 없이 점심 밥상을 깨끗이 비웠다. 설거지를 하고 퍼져 누워 앞날을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아버님은 이 년여 간이나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옆에 계신다고는 하지만 같이 있어주는 일이 전부였다. 아버님은 그 정신에도 뒤를 보면 무릎까지 옷을 내린 채 종종걸음으로 내게와 “우짜꼬?”를 연발했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 볼일을 봤다 해도 어머님이 뒤처리를 깨끗이 못해 다시 씻겨야 했다. 이렇다 보니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면 집에서도 쌓인 일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늘 웃으며 모든 일을 다 할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과의 굳건한 마음의 신뢰 때문이었다.


아버님은 세 살 때 종갓집으로 양자를 온 까닭에 물질적으로 정을 낼 줄 모르는 분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을 줄 줄 아셨다. 내가 남편과 맞선을 보던 그날부터 아버님은 내가 하는 어떤 말에도 고개를 저은 적이 없다. 아무리 안 된다고 버티던 일도 내가 하자고 하면 그러마 하셨다. 내가 간단한 위종양 수술 날짜를 기다릴 때는 암이 아니라고 해도 “전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네 병을 꼭 고쳐야 한다.”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남편 때문에 힘들 때마다 아버님은 “미안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로 소중하다.” 며 위로하고 마음 아파하셨다. 치매를 앓아 내가 나인 줄 몰라도 아버님이 좋았다. 먹고 돌아서면 또 밥을 달라 하고, 혹시라도 밥맛이 없다며 밥을 드시지 않기라도 하면 열 번이라도 다른 음식을 해드릴 만큼 아버님이 오래 내 곁에 계시길 원했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힘이 될 정도로 아버님의 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절대적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곧바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어머님의 연세가 쉰일곱 들던 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님은 밥과 빨래 등 집안일에 손을 뗐다. 결혼한 이듬 해 첫아들을 낳았을 때 미역국을 끓여 밥을 해주시긴 했는데 얼마나 앓는 소릴 하시는지 가시방석에 누운 것 같아 채 한 칠일이 못되어 일어나 밥을 하고 빨래를 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해 난 밥도 잘 먹지 못하고 해골처럼 야위어 맞는 옷이 없었다. 나를 천금같이 여긴다는 말과 달리 어머님은 작은 일에도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고, 자주 의심했으며, 당신의 상상을 진짜인양 말하여 부부싸움을 하게도 했다. 당신도 여자이면서 손자인 내 아들은 무슨 일을 해도 잘한다 하고, 딸은 할 일을 해도 나쁜 짓을 했다고 말해 딸아이와도 자주 싸웠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어머님의 이런 증상은 더 심해져 종종 내 속을 들쑤셔놓았다.


진심은 진심으로 통하는 법이다. 아버님은 치매가 걸려 아무리 냄새가 나도 싫지 않았다. 아무것도 몰라도 그냥 더 오래 살아주시길 바랐다. 치매와 상관없이 아버님은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모든 어려움을 견디게 했다. 그러나 어머님은 처음으로 옷에 실수를 한 것인데도 마음이 암담하게 지친다. 지난날 어머님은 아버님과 달리 종종 쌀이나 반찬을 사라며 약간의 돈을 주시곤 했다. 어머님을 그것을 최고의 사랑법으로 여기셨다. 때문에 황당하고 억지스런 말로 속을 끓이는 것은 당신의 당연한 권리쯤으로 여긴다. 이런 까닭에 금전적인 고마움마저 곧잘 흔적 없이 증발되곤 한다. 생활비 중에 제일 적게 드는 것이 쌀값이지만 어머님은 이 쌀이 생활비의 절반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내가 바른말을 해도 막무가내 당신 주장이 법이라는 듯 목소릴 높일 때는 속수무책이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벽이 되는 것이다.


벽처럼 어머님이 무슨 억지소리를 해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무반응은 화를 가라앉혀 측은지심을 일게 한다. 어머님은 어릴 때부터 배움의 문턱에 가보지도 못한 불행한 삶으로 자신 이외에는 이 세상의 누구도 믿지 못한다.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당신 말만 하려 하니 매일같이 공원에 모여 앉아 노는 할머니들과도 섞이지 못한다. 늘 외롭고 심심한 어머님이 안쓰러워 맘먹고 말벗이 되려고 앉았다가도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게 된다. 화를 낼 수도 설득시킬 수도 없으므로 억울하고 기분 나쁜 말을 연달아 들을 때마다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아야 상처를 덜 받게 된다. 밖에 나갔다 몇 번이이나 길을 잃고 파출소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이 며칠째 옥상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빈집에 갇혀 지내는 그 모습은 측은하게 늘 잘 해야지 하고 내 마음을 다잡게 한다.


옥상 흙에 물을 주려고 올라가 보니 내가 그렇게 흐뭇하게 바라보던 하얀민들레가 한 포기도 없다. 어머님이 뽑았다는 지심에는 괭이밥, 쇠비름과 함께 하얀 민들레도 들어 있었다. 속에서 울컥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른다. 어머님에게는 하얀 민들레가 뽑아버려야 할 지심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삶의 위안이었다. 말년에 며느리라는 말도 잊어버리고 그저 해맑게 웃으며 “좋은 사람요.”하고 나를 부르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말이 따뜻한 바람이 되어 내 어깨를 다독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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