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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육철낫 / 김기화

에세이향기 2024. 5. 5. 07:17

육철낫  /   김기화

 

                                                                                       

  벌초하러 가는 길에 늘 챙기는 것 중 하나가 낫이다. 엄마는 의식 치르듯 며칠 전부터 낫을 갈아 신문지에 곱게 싸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집을 나설 때는 종이에 감싼 낫을 다시 가방에 조심스레 챙겨 넣는다. 해마다 고집을 세워 동행하던 엄마가 올해는 먼저 안가겠다고, 아니 못 가겠다고 하셨다. 불편한 몸이지만 손수 낫을 잡아야만 편하다던 분이다. 우리는 벌초 후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와 보여드리겠다는 말로 안심을 시켜드린 후 집을 나섰다. 그러나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이전과 달리 빨라졌는데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예초기가 풀을 베어내는 동안 새 낫을 챙겨 들고 주변에 무성한 관목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을 쳤을까. 낫자루는 그대로인데 날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한다. 나사가 풀어졌나 싶어 살펴보니 반쯤 잘린 개암나무처럼 목이 댕강 부러져있다. 그 뿐 아니라 반들거리던 날이 제법 촘촘하게 이까지 빠져있다.

  나무 손잡이로 된 가벼운 새 낫은 가느다란 나무줄기 몇 개를 베어냈을 뿐인데 힘에 부친 듯 이가 빠져 골골댄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낫을 새로 샀다고 했다. 웬만하면 버리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지고 살아온 분이 다시 새것을 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몇 번의 낫질로 무뎌진 것을 쓸 수 는 없었던 것이다. 반면 뭉툭하여 볼품없이 생겼다 여긴 닳아빠진 한 자루의 낫은 몇 년째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로 산 몇 개의 낫이 사라질 동안에도.

  풀베기를 할 때는 평 낫도 괜찮지만 나뭇가지를 쳐낼 때는 슴베가 긴 우멍 낫, 일명 목 낫이 필요하다. 까치꼬리 같은 평 낫의 날렵한 모습과 달리 우멍 낫은 후크선장의 갈고리 손 같이 생겨 나무를 잡아당겨 베기 좋게 생겼다. 하지만 키 작은 나무 조금 쳐내는데 굳이 우멍 낫까지 찾을 필요는 없다. 새 낫과 함께 들고 온 오래된 육철낫으로 베니 착착, 소리도 경쾌하게 노련함을 드러낸다.

  대장간에서 담금질이 제대로 되어 나온 육철낫은 수명이 길다. 그래서 닳고 닳아 쓰임새는 달라질망정 버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져 번듯한 상표 달고 나온 왜낫은 한철 풀만 베어도 숨은 돌에 맞아 이도 빠지고 숫돌에 갈아도 금세 잘 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 고작 몇 십 년 전이지만, 내 기억으로 그 때는 닳아빠진 낫도 숫돌에 잘 갈기만 하면 날카롭게 날이 서곤 했다. 바짝 마른 콩대를 자르거나 옥수숫대와 수숫대를 잘라도 이 하나 빠지지 않았다. 손잡이도 식구들의 손에 닳고 닳아 반들거리던 낫이다.

  그 때 두렁 깎던 엄마의 낫을 유심히 본적이 있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낫의 모양은 엄마의 다리를 닮아있었다. 논으로 밭으로 줄달음치던 엄마의 기역자로 굽은 다리 같은 육철낫은 부지런히 풀들을 그러모아 싹둑 싹둑 잘라냈다. 잘 쓸리는 몽당비처럼 적당히 닳아있는 낫은 기계처럼 싸릿대 밑동까지 말끔하게 베어내곤 했다. 팔 힘도 아닌 손목만을 움직일 뿐인데 낫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 리듬은 돌부리 하나 만나면 잠시 쉬곤 하다가 ‘퉤퉤’ 기름 입히듯 손바닥에 침 몇 번 뱉고 잡으면 다시 흥을 내 리듬을 타곤 했다. 그때 엄마가 사용하던 낫은 대장간에서 만든 조선낫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자르고 쳐도 이가 잘 빠지는 일 없는 육철낫.

  낫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견하는 노래도 있는데 우리에게 엄마는 무섭고 날카로운 낫 그 자체였다. 하지만, 불에 달구듯 매서운 담금질 속에 자란 덕분에 뛰어나지는 못해도 저마다 제자리를 지킬 줄 아는 지혜와 끈기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농기구를 파는 오래된 가게에서 여러 가지 모양의 낫을 만났다. 생김새처럼 쓰임새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다. 담배 낫은 담배를 재배하는 농가에서 필요한 것이라 한다. 나무껍질을 쉽게 벗기기 위해서는 옥 낫이 필요한데 생김새를 보니 영락없는 물음표다. 마치 나무를 베기 전 무언가 생각해야 할 것을 주문하는 것처럼. 누에치는 농가에서 뽕잎을 따는데 필요한 뽕 낫, 버드나무를 벨 때는 쓰인다는 버들 낫, 서서 풀을 벨 수 있게 만든 선 낫, 왼손잡이를 위한 왼낫 등 다양했다.

  당시 우리 집에는 그 다양한 낫들 가운데 육철낫, 그러니까 조선낫 하나뿐이었다. 마치 엄마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듯 낫도 한 종류뿐이었다. 사람도 홀로 대를 잇는 것은 모든 어려움을 다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집 낫이 그랬다. 엄마는 그 낫으로 두렁 풀베기 작업뿐만이 아니라 산에서 주워온 굵은 막대기를 연필 깎듯 다듬어 지겟다리로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여름에는 보리 베기 가을에는 벼 베기로, 논일이 끝나면 다시 밭으로 돌아와 콩대며 들깨 참깨를 베어내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틈틈이 닳아빠진 숫돌위에서 ‘슥슥’ 소리 내며 날을 세울 때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아 턱 고이고 바라본 적도 있다. 칼 가는 소리는 무서웠는데 이상하게도 낫을 가는 소리는 굽은 모양 때문인지 소리가 더 부드럽게 들렸다. 그것은 적당히 휘어진 날을 품고 있는 나무 손잡이 속에 숨은 슴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는 않지만 낫은 슴베가 자리를 잘 잡고 버텨줘야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낫처럼 휘어진 다리를 가진 엄마는 그 속에서 나온 힘으로 우리를 길러냈다. 뾰족한 낫 끝을 왼손 엄지와 검지로 살짝 쥐듯 잡고 ‘슥삭 슥삭’ 가는 모습은 흡사 어떤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정말로 의식 치르듯 낫을 갈았는지 모른다. 그러지 않았으면 낫처럼 굽은 다리로 어찌 50년 가까운 세월을 세 아이의 엄마로 가장으로 제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런 엄마가 이제 더 이상 벌초 길에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장정처럼 듬직하던 낫자루가 시나브로 닳고 닳아 속으로 삭아 없어진 것과 같다. 나는 그동안, 닳았어도 여전히 제 힘을 발휘하는 육철낫처럼 엄마의 꼿꼿한 겉모습만을 보려 했다. 낫자루가 너무 오래되면 슴베주위의 나무가 먼저 삭듯이 엄마의 몸도 속으로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닳았어도 여전히 잘 드는 날카로운 육철낫 같은 꼿꼿함만을 기대했던 철없는 딸이었던 것이다.

  올가을, 낫자루 속에 박힌 슴베 같았던 엄마의 숨어있는 다리가 물기 없는 삭정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병원에서 오래전부터 제자리를 벗어나있었다는 엄마의 어긋난 기역자 같은 고관절을 사진으로 만났다. 어려서부터 틀어진 관절을 몇 십 년 버티게 해준 낫자루 같은 근육은 이제 힘을 잃어 닳아빠진 낫 처럼 앙상한 뼈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엄마께 육철낫처럼 든든한 사랑만 받을 줄 알았지 제대로 된 ‘안갚음’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커다란 바위덩이로 자라 가슴을 짓눌러왔다. 외려 작은 ‘안받음’마저 사양했던 꼿꼿한 엄마의 겉모습만 봐온 철없는 딸이 그날에서야 오래 두어도 삭지 않고 닳지 않을 육철낫 하나를 비로소 가슴속에 벼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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