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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것들의 체온 / 최장순

에세이향기 2024. 5. 20. 03:48

묵은 것들의 체온 / 최장순

 

 

유행도 한철을 넘기기 어렵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쏟아지고 새로운 것에게로 마음이 향한다. 어느덧 속도감에 익숙해졌나 보다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유행에 굼뜨다. 빠른 변화가 주는 어지럼증과 멀미가 심한 탓이다. 여전히 품을 떠나보낼 수 없는 오래된 것들, 유품처럼 모셔두는 그들에게서 나는 푸근함을 전달받거나 어지럼증을 해소한다.

"형님, 부자 되세요."

덕담과 함께 매제가 건넨 건 돈궤였다. 횡재한 듯 마음이 뿌듯해진 나는 어디에 둘까 고민하며 방과 거실을 오갔다. 방에 모셔두기엔 잠이 편히 올 것 같지 않았다. 거실 소파 협탁으로 제격이었다.

소나무 통판의 위 닫이 형 궤, 송판으로 돈궤를 만든 것은, 돌고 돌아온 돈 냄새를 은은한 소나무향으로 지워주고 싶음일까. 사개 물림은 튼튼해 보였지만 거기에 여러 개의 쇠 장석으로 보강했다. 문짝은 세 개의 경첩으로 연결했고 양쪽에 광두정을 세 개씩 박아 넣었다. 한 번 들어간 돈은 절대 탈출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자물쇠가 분실된 상태, 이미 돈궤는 기능을 상실했으니, 나는 그것의 의미만 즐기면 그만이었다.

과거의 것에는 과거를 넣어두는 것이 적절해 보였다. 군인으로 살아온 내게 돈궤는 어울리지 않는다. 야전노트며 호각이며 멈춘 시계며 군번줄과 버클과 문진 등을 넣어두기로 했다. 언제든 추억을 꺼내볼 수 있지만, 형식은 ​갖추고 싶어 자물쇠대신 놋숟가락을 꽂아 놓았다. 나는 물욕에 달관한 사람이라는 여유, 소박하게 먹고사는 게 부자라는 의미를 은근히 내보임이 아닌가. 어느 양반가나 거상巨商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그것, 집안 내밀한 곳에 감춰두었을 그것이 자물쇠 없이 내게 온 것은 '가두지 말고 풀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혹 돈 많은 상인의 것이었다면, 그는 그 안의 돈을 풀어 어려운 이들을 도왔을 것이다. 상상이 이쯤에 이르자 훈훈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자린고비를 상상하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새색시 모습이 저럴까. 꽃가마를 따라와 신혼 방에 놓였을 화각장이 내게로 온 것은 몇 해 전이다. 옛것을 모으는 취향을 알아챈 동생이 임자는 따로 있다면 차에 실어준 그것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한 이가 이사를 가면서 주었다고 했다. 시어머니와의 심각한 갈등 속에 시집살이를 하였다는 그녀, 화각장은 윗대로부터 대물림된 것이라 했다. 물려받은 것은 남 줘버릴 만큼 잊고 싶은 기억이 많은 듯했다고 동생은 일화를 덧붙였다.

화각장의 그림은 모두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문짝에는 붕어에 올라앉은 노인과 거북이 등에 앉은 노인이 있다. 그 주변으로 빨래를 하고 물을 긷는 여인들과 제기 차는 아이들, 낚시를 드리운 사람, 등짐 진 농부의 모습도 보인다. 옛 시골마을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각각의 표정은 발고 여유롭다. 어른 공경과 무병장수, 화목한 가정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는 듯하다.

시어머니도 며느리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 처지를 이해했다면 아물지 못할 상처를 주지는 않아을 것, 며느리도 화각장 곳곳에 숨겨진 그림의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았다면, 시어머니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지 않았을까. 서로 화목하지 못한 그 사연만큼은 지워버리고 싶다.

대물림은 물건으로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담긴 뜻도 함께 이어져아 하는 것, 화각장 한구석, 고부간의 열 오른 체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화각장은 종합예술품임이 확실하다. 뿔을 다루는 각질장,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 그림 그리는 화원, 옻칠하는 칠장, 장식을 만드는 두석장의 체온과 오랜 시간이 합쳐져야만 가능한 작품이다. 근래 출가한 딸에게 오차도 저 화각장만큼은 주고 싶지 않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에 담긴 사연이 온순하지 않다면, 그것을 굳이 물려줄 필요가 있겠는가. 내 손때와 온정을 입혀 온전히 따스한 사연만 담으리라.

1908년에 발간된 '신약젼셔'만큼 나를 경건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본래 신 구약 두 권이었는데 6.25를 거치며 신약성경만 남아 내게 이르게 된 것이다. 그것은 '예수쟁이'였던 5대조 할아버지가 보시던 것으로 표지는 낡아 두터운 검정 비닐로 덧씌웠다. 그럼에도 108년 묵은 체취가 신성한 기운으로 다가온다.

​ 어떻게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였을까. 궁금했지만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어떤 계기가 믿음의 용기와​ 결단으로 이어졌음을 짐작할 뿐이다. 대고모인 두 자매는 소녀시절, 어느 날 사랑방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들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염불하신다"며 신기해했다고 한다. "조선과 일본이 한 나라가 되었대."라고 두 분이 속삭였다는 것으로 짐작컨대, 일제강점기가 막 시작되던 그때, 5대조께서는 예수를 믿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부자父子중심의 수직적 연속성을 중요시했던 유교문화. 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조상을 두고, 또 다른 봉지 않는 하늘의 아버지를 섬긴다는 일이 당시로는 가당치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강릉은 양반 토호와 유림 세력이 강해서 예수 믿음을 패륜으로 취급하여 냉대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기독신앙은 5대조 당대로 끝났다.

100여 년 가까이 끊겼던 신앙의 맥을 이었다. 빛바랜 낡은 성경이 '쟁기'가 되었다. 조상의 손때 묻은 성경을 펼칠 때마다 '묵정밭이 되어버린 신앙의 텃밭을 다시 일궈내라' 이르시는 것 같다. 이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가지는 않지만, 함께하는 마음으로 주일 아침이면 들여다보곤 한다. 그곳에 손을 얹어 당신의 묵은 체온에 내 예배를 보탠다. 그럴 때면 본적도 없는 5대조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는 듯하다. 돋보기에 의존해 수없이 넘겨 읽었을 성경. 까마득한 할아버지의 호흡은 가파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해서 그 시대의 정신마저 낡아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더해지듯, 사람들의 손을 타고 이어져온 체온은 변함없이 가장 인간적인 온도, 36.5도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오랜 것들을 모시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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