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김비주
다친 다리로 몸을 욕조에 걸치고
머리를 감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곧은 슬픔 하나가
지나간다
한평생 같이 살면서 그의 슬픔이 무언지 짐작만 하였지
묻지 못한다
꿈 속에서만 키워오던 나의 희망이 너무나 간절하여
그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의 틈새에 이는 바람에 잠시 너스레를 실어본다
괜찮아, 아프지?
종골 두개가 나가도록 그를 짓눌렀던
삶의 무게가
무언지 시간을 넘어선 후에 기민해진다.
모두 각기 슬픔에 갇혀있는지라 슬픔의 뿌리 앞에
송두리째 내주는 날을 만난다
엉성하게 내리는 초겨울의 남도 비 사이로
덜 끓은
육자배기가 지나간다
늘 함께이지만 언제나 혼자인 사람들 속에
새빨간
동백이 자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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