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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또랑광대 / 김순경

에세이향기 2021. 6. 8. 09:15

또랑광대 / 김순경

광대는 연극이나 곡예, 판소리를 업으로 하는 예술인을 말한다. 소리광대는 창을 위주로 하는 소리광대, 아니리와 재담을 위주로 하는 아니리광대, 용모와 발림 등 연극적인 개념을 중시하는 화초광대 등으로 나눈다. 그중에서 소리광대를 단연 으뜸으로 치고 아니리광대를 가장 낮게 평가한다.

 

소리광대는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다. 신재효 선생은 광대가廣大歌에서 인물, 사설, 득음과 너름새를 들었다. 많은 관객을 상대하려면 무엇보다 인품부터 갖추어야 하고, 사설 내용을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충분한 성량으로 막힘없는 소리를 자유롭게 내고, 자연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시각적인 효과도 낼 수 있어야 진정한 광대라고 했다. 이것은 지금도 소리꾼의 필수 요건으로 지켜지고 있다.

 

역량이 조금 부족한 소리광대를 또랑광대라 한다. 절대적인 실력이라기보다는 명창과 구분하는 상대적인 말이지만, 여러 고장을 돌아다니지 않고 주로 한 고을에서만 행세한다. 달인의 경지에 오른 소리꾼보다 못하다는 말이지 기본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도도한 강물이나 힘찬 폭포수처럼 소리를 하지는 못해도 일반 청중들은 명창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실력이 탄탄하다. 작은 도랑도 흐르는 물길이다. 시원찮은 또랑광대라 해도 소리를 업으로 삼고 제자도 양성하는 소리꾼임에는 틀림이 없다.

 

대학 새내기였을 때다. 축제 때 과별 농악경연이 있다면서 단원을 모집했다. 추천을 받아도 간단한 실기 시험을 치렀다. 체구가 비슷한 네 사람을 지목하더니 장구를 배우라고 했다. 그날부터 전문강사를 불러 장단을 배웠다. 전문강사라 해도 무용학원의 젊은 무용수 정도였다. 경연을 며칠 앞두고 판소리학원을 찾아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수가 불혹을 갓 넘긴듯한 소리꾼의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힘찬 목청과 북소리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구성진 그 소리가 돌아오는 내내 이명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농악경연대회가 끝나고 다시 찾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대금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가슴을 파고드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에 매료되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대금 연주가 끝날 때까지 얼어붙은 듯 복도에 서 있었다. 문을 열자 왜 또 왔냐는 듯이 의아한 눈길로 쳐다봤다. 판소리를 듣고 싶어 왔다고 하자 앉으라고 했다. 수업이 시작됐다. 약간 쉰듯한 목청이 끝 모르고 올라가더니 폭포수처럼 떨어지며 북장단과 어우러지기를 반복했다. 몇 장단을 가르치고는 수업을 끝냈다. 훗날 알아보니 그 판소리는 춘향가의 사랑가였고 소리를 가르치던 선생은 명창이 되어 있었다.

 

내게 판소리는 늪이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평생을 배우고 연마해도 끝이 없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확실한 정석도 없다. 광대를 천시하던 조선 중기만 해도 판소리는 세습 무당의 자식들이 이어갔다. 판소리가 체계화되고 공연문화가 자리를 잡자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한 번 빠지면 쉽게 발을 뺄 수 없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는 오늘도 그 길을 답습한다.

 

이순을 앞두고 단가 사철가를 들었다. 인생을 계절의 변화에 비유한 가사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려운 한문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았다. 배우고 싶은 마음에 수백 번을 들었다. 유행가나 서양음악처럼 쉬이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듣다 보니 억지로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깊이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창이 되거나 소리를 업으로 삼는 소리꾼이 되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더는 미루기 힘들었다.

 

판소리 선생을 찾아갔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원치도 않았던 장구 장단에 민요부터 배웠다. 쉽다고 생각했던 노래였지만 맛깔나게 따라 부르기는 어려웠다. 정작 배우고자 했던 판소리는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시작했다. 악보도 없이 가사만 보고 배우려니 답답했다. 소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단련하는 수련장 같았다. 장단과 시김새를 동시에 밀고 나가는 날에는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돌아올 때마다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찾아갔다.

 

몇 해가 지났지만 겨우 북장단에 소리를 태우는 정도다. 매주 북을 마주하며 소리꾼의 흉내를 낸다. 추임새를 넣는 관객도 없고 화려한 조명도 없지만, 나에게는 늘 앉은 자리가 공연 무대가 된다. 그곳에만 가면 기를 모으고 소리를 토해낸다. 설사 청이 갈라지고 찢어져도 상관없다. 잠시나마 쌓였던 삶의 찌꺼기를 거리낌 없이 뱉어낸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다 보면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청이 술술 나올 때도 있다. 한 대목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날은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지만 어쩌다 목청이 트이는 날은 날아갈 것만 같다.

 

또랑광대도 평생 소리 공부를 한다. 명창만큼은 전국을 돌며 공연하지 않지만, 세파에 물들지 않은 전통 가락의 파수꾼이다. 생계가 어렵고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소리 하나만을 잡고 모든 것을 바친다. 평생을 하대 받으며 궁핍하게 살아도 북채를 놓지 않고 소리를 질러댄다. 어제는 곰살맞고 찰지게 안겼던 소리가 오늘은 뚝뚝 부러져도 피를 토하며 다시 시작한다. 무슨 광대라고 불리든 개의치 않고 한 길만 묵묵히 걸어간다.

 

명창만 나오는 공연은 없다. 소리판에 가면 청중들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무대 경험을 쌓으려는 문하생들이 먼저 분위기를 잡는다. 무대와 객석이 제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막이 오르면 관객들을 공연에 몰입시키는 소리꾼들이 등장한다. 점점 열기가 고조되면 그날의 최고 명창이 화려한 너름새와 막힘 없는 통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공연은 열기가 중요하다. 충분하게 공연장을 달구는 또랑광대가 없으면 명창도 없고 국창國唱도 없다.

 

오늘도 어디선가 또랑광대들이 목청을 다듬는다. 나도 육자배기 한 대목을 몇 주째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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