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天 / 김응숙
늦깎이 공부를 하다 보니 새삼스레 천자문를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뜻으로 보나 차례로 보나 하늘 天이 으뜸이다. 세상 만물이 하늘 아래 있지 않은가.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 또한 하늘 아래에 있다. 天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늘 아래 있는 人자가 보인다. 한자가 상형문자라는 것이 이해가 된다.
사람 人은 홀로 설 수 없는 인간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을 문자화 한 것이라 한다. 긴 획이 짧은 획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짧은 획이 긴 획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획 하나만으로는 글자가 될 수 없으니 일견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속성을 담아낸 것으로도 보인다. 휘어져서 서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두 획에서 삶의 탄성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사람 人 위에 두 개의 가로획이 놓이면 하늘 天이 된다. 완성된 모습으로만 본다면 인간에게는 두 개의 하늘이 있는 셈이다. 나는 짐짓 위의 가로획을 큰 하늘이라고 생각해본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궁극의 위치이다. 더 이상이 없는 완전하고 온전한 경지이다. 이 하늘은 보통의 인간은 감히 범접하기 어렵다. 간혹 역사에 남은 성인들이 가닿았을지는 모르겠다. 큰 하늘에 닿아있는 人자의 긴 획 끝을 골똘히 바라본다. 시력이 나빠져서인지 닿은 듯 떨어진 듯 접점이 흔들린다.
반면 아래에 있는 가로획은 분명하게 人자를 관통하고 있다. 그것도 긴 획과 짧은 획이 만나는 지점을 정확하게 지나고 있다. 마치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곳에서부터 양쪽으로 하늘이 열리는 모양새다. 나는 또 짐짓 아래의 가로획을 작은 하늘이라고 생각해본다. 인간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오욕칠정에 물든 하늘이다. 그러나 이 하늘을 거치지 않고는 그 위의 하늘에 닿을 수 없다.
어릴 적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던 우리 집에도 가끔씩 더 가난한 이가 찾아오곤 했다. 어느 겨울 밤,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는 한밤중에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연탄을 갈기 위해서였다. 자기 전에 살펴보니 위 연탄의 검은 부분이 한 뼘이나 남아 있었다. 귀찮더라도 자다가 일어나 연탄을 갈고 불구멍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다.
빨간 내복차림으로 부엌에 들어서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희끗한 사람의 형체가 부뚜막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소란스런 인기척에 어머니도 잠이 깨어 부엌으로 나왔다. 연탄가스를 걱정해 조금 열어놓은 부엌문으로 그날 손님이 든 것이었다.
손님은 우리가 광자라고 부르는 여인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검은 보퉁이를 꼭 끌어안은 그녀는 몇 년 전부터 겨울이면 우리 동네에 나타나곤 했다. 겹겹이 껴입은 때 묻은 옷깃 위로 가녀린 목이 삐죽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낮이면 광자를 따라다니며 동네골목을 누볐다. 아니면 광자가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양지바른 공터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광자는 동네 어느 집으로 스며들곤 했는데 그날은 우리 집이 선택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낡은 이불을 가져와 광자를 덮어주었다. 아침에는 없는 찬이라도 소반에 밥을 차려주고, 더운 물로 세수를 시키고 손을 씻어주었다. 그리고 손톱깎이를 가져와 긴 손톱을 깎아주었다. 그러는 동안 광자의 초점 없는 눈은 허공에 걸렸다가 우리를 바라보다가 하였는데, 어쩌다 배시시 웃으면 나도 광자를 따라 웃었다.
광자가 다녀간 날이면 나는 아무 까닭 없이 기분이 조금 좋았는데, 다시 밤이 되어 이불 속에서 윙윙거리는 겨울바람 소리를 들으면 자꾸만 광자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이면 광자는 어느 집에선가 한겨울의 모진 한파를 피하고는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광자의 동가식서가숙은 겨우내 계속되었지만, 얼음이 녹고 봄꽃이 필라치면 광자는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찾아든 광자를 내치는 집은 동네에 없었다. 기꺼이 소박한 한 끼의 밥과 허름할망정 온기가 배어있는 한 벌의 옷을 내주었다. 동네사람들은 그냥 알았던 것 같다. 긴 획과 짧은 획이 서로 기대며 만나는 그 접점에서 인간의 하늘이 열리고, 그 하늘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하늘 아래에서 그때 동네사람들은 광자의 작은 하느님이었으며, 어느 날 밤 불현듯 선택된 그 지위에 내심 감사하고 감격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한때 분식점을 한 적이 있다. 생전 처음 하는 장사였다. 생계를 해결할 방법이 막연한 때였다. 김밥을 만들어 파는데 서툴다보니 손이 더디기가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손님이 기다리고 있을라치면 더욱 허둥거렸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기는 일쑤이고, 말아놓은 김밥도 어느 것은 크고 어느 것은 작았다. 그래도 그 김밥을 사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불평은커녕 도리어 격려의 말을 해주기도 했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때의 손님들은 절실했던 나를 찾아와준 나의 작은 하느님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하늘에는 작은 하느님들이 별처럼 무수히 많았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들은 기꺼이 내게로 와서 나의 작은 하느님이 되어주었다. 가끔씩 나도 그들에게 작은 하느님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사람 人자의 접점을 가로획이 관통하며 하늘을 만들고 그 위에 또 한 획의 하늘이 놓여있는 하늘 天자. 비록 큰 하늘에는 가닿지 못해도 작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의 작은 하느님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보인다. 어설프게나마 겨우 天자 한 자를 익혔다.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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