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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의 공식/마경덕

에세이향기 2021. 11. 19. 10:01

두부의 공식

 

마경덕

 

 

저것은 네모난 공식

문제를 풀면 네 개의 각을 얻을 수 있다

​사방을 나누고 눈어림으로 재는 중량

해답은 말랑해서 비닐봉지에 담기거나 팩에 담긴다

 

​첫 문장은 함부로 구르고 튕겨나가는 딱딱한 공식

변수가 있어 정량의 물을 더하고 거품을 뺐다

 

​회오리처럼 휘돌다가도 뜨거운 불길만 무사히 건너면

잘 될 거라 믿었던 사내

완성품을 기다리며 허기진 시간을 견뎠다

간수를 넣는 과정만 통과하면 쓸 만한 물건이 될 거라고

부글거리는 잡념까지 걸러내었다

 

​순두부처럼 몽글거리는 아들에게,

 

​반듯하게 살아라

물러터지면 아무 짝에도 못 쓴다

네모난 틀은 아버지의 공식

 

거름포를 깔고 뭉친 마음을 부었지만 반듯한 각을 얻지는 못했는지,

 

​구치소 앞

두부를 들고 기다리는 아버지

​저기 물렁한 두부 한 모 걸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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