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계란찜/고윤자

에세이향기 2021. 12. 29. 06:11

 


계란찜/고윤자


 우연히 오래된 그의 노트를 보게 되었다.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흘려 쓴 글씨로 무표정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노트를 반 정도 넘기다가, 낡은 사진 몇 장을 발견했다. 동물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찍었던 오래된 흑백사진 , 보기에도 촌스러운 우리의 결혼사진이 수줍게 숨어 있었다. 가족을 떠나 해외에 오래 체류해야만 했던 남편의 여행가방 속 필수품이었던 모양이다. 더러는 색이 바래고 그 중 몇 장은 공기를 접하지 못해서인지, 하얗게 곰팡이가 덧씌워져 있었다. 숨어서 피어났던 것은 곰팡이만은 아니었다. 빛바랜 사진 위에는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자식이건 아내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천하게 생각하고 꺼려왔던 남편만의 특별한 사랑 방법이기에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가족사진보다 더 꼭꼭 숨어 있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노트의 맨 끝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음식의 요리 방법이다. 혹시라도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써 숨긴 흔적이 엿보인다. 그가 혼자 있을 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적어 놓은 것 같다. 큰 냄비에 해바라기 모양의 찜 기를 넣는다. 물은 찜 기가 잠길 듯 말듯하게 담는다, 둥그런 국그릇처럼 생긴 도자기에 계란과 같은 분량의 물을 넣는다. 흰자를 응어리가 안지도록 잘 풀고 새우젓이나 명란 등 좋아하는 재료를 첨가한다.
 
 시집 와서 이 나이 되도록 나는 방이나 마루청을 맨발로 한번 밟아 보지 못했다. 내 발은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꼭 덧신이나 양말 속에 숨어 있어야만 했다. 몇 대 위의 시할머니이신지는 잘 몰라도 밤에 속곳 바람으로 뒷간을 드나들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노론의 후예라는 족보를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끌어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이조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게 만든 적도 많았다. 내가 너무 크게 웃는다든지, 걸음걸이가 너무 씩씩하다든지 하면 양반집 규수 얘기를 들먹이곤 했다.
 '애기야, 그게 그렇다.'로 시작해서'...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거라.' 로 끝을 맺으신다.
 
 그런 이 집 식구가 하나같이 즐기는 음식이 바로 계란찜이다. 시할아버지부터 우리 아들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좋아해서, 아침 저녁상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오르고 있는 메뉴이다. 한 번쯤 여자들 차례가 오나 하고 찜 도자기 밑을 긁어 보지만, 신기하게도 늘 빈 그릇이 되어 나온다.
'이것이 양반의 음식이 아니고 천민의 음식이라면 얼마나 통쾌할까.'
나는 늘 그런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어떤 때는 음식 사료史料를 다 뒤져서라도 멋지게 망신을 주는 장면을 그려보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노론이 주류를 형성한다. 남인이 인위적으로 제거된 정치판에서 소론은 간신히 야당의 역할을 대신했으나 그 세력은 미미했다. 이때는 국왕도 비주류일 뿐이었다. 탕평책을 써 보려고 노력했던 개혁 군주 정조의 죽음으로 노론의 시대는 연장된다. 200년에 걸쳐 집권한 노론은 조선의 멸망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우리 집의 주류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었다. 시댁 식구는 우리 가정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도 늘 당당했다. 밥상도 같이 차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것저것 항상 요구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었다. 반면 아내인 나와 우리 친정은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베풀면서도 늘 비주류였다. 방문도 되도록 삼가고 한 구석에 조용히 있다가 되돌가가곤 했다. 내 나이 사십이 다 되도록 우리 엄마는 늘 딸 가진 죄인이었고 딸을 빈손으로 내맡긴 위탁자였다. 반면 남편이 몸이 몹시 아프거나 사회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는, 시댁 식구는 으레 손을 털고 나가버리는 방관자였다. 나와 친정식구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에 대해 이렇게 해야 옳았다는 둥, 저렇게 해야 좋았다는 둥 뒷담화만 늘어놓는 비평자의 입장이었다. 흡사 노론이 권세만 누리고 나라의 흥망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랴.
 
 계란찜을 준비하는데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계란과 물의 같은 분량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계란이 많고 물이 적으면 계란찜이 석회질처럼 딱딱해지고 만다. 계란찜 특유의 유동적이고 부드러운 맛을 잃게 된다. 물이 계란 양보다 많으면 오래 불 위에 놓아두어도 계란이 쉽게 엉기질 않는다. 맑은 국물이 안 생기고 노란 계란 국물이 보이면 계란보다 물의 양이 많은 것이다. 또 노른자와 흰자를 서로 섞어 응어리가 안 지도록 풀어야 계란찜이 부드러워진다.
 
 계란과 물이 같은 양이어야 좋은 찜이 되듯이, 남편과 아내도 정삼각형의 양변처럼 등변과 등각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새댁이었을 때는 양반집 규수라든가 음전한 여자라든가 하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자유와 권리를 구속해 왔다. 반대로 남자들은 힘센 아버지라고 자기만을 위할 것을 고집하거나 생활력이 없는 아내에게 너무 큰 목소리를 내었던 것 같다. 용수철이 눌려진 만큼 튀어 오르듯 요즘은 오히려 아내들이 남편에게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 같아 그것도 눈에 거슬린다. 남자들은 밖에서 돈도 많이 벌어오고, 집에 오면 기생처럼 살가워져야 남편 칠거지악을 면하다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노른자와 흰자가 서로 섞이여 응어리가 안보이도록 풀어져야 맛있는 계란찜이 되듯이, 상대방을 위해 자기 형체를 없애 버리는 희생이 있어야 비로소 가정이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계란을 담은 도자기를 불 위에 올려놓고 참을성 있게 오래 기다려야만, 부드럽고 모양도 예쁘게 쪄진 계란찜을 얻을 수 있다. 가정생활도 무던히 참고 기다려야 그 완성품이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계란찜을 그렇게 많이 먹었던 남편이나 계란찜의 고수라고 할 만큼 만들어 낸 나도,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들어가는 법을 몰랐다. 사진속의 남편은 아직도 모든 것을 다 받아줄 것 같은 미소로 웃고 있다. 내 눈은 파뿌리 될 때까지 희생과 순종을 맹세하는 시골처녀 같다. 사진속의 나는 정말 나였던가. 기억이 점점 멀어진다. 낡은 사진을 다시 제 자리에 끼워 넣는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음옷/윤혜주  (0) 2021.12.31
어에 머물다/류창희  (0) 2021.12.29
물숨/박소현  (0) 2021.12.27
시간은 어떻게 껍질을 벗는가 / 최민자  (0) 2021.12.27
길 위의 할머니들 / 정희경  (0) 202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