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과 거짓말, 그리고 새벽 4시 / 노경실
남동생 부부와 사는 엄마와 나누는 아침 통화.. 나는 문안인사 뒤,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오늘은 어땠어요" "오늘도 울고 갔지." "오늘은 왜요?" 그때마다 엄마의 답은 다양하다. '머리 모양 마음에 안 든다고', '반지 끼고 간다고', '비 오는데 구두 신고 간다고', '체육복 입고 오라는데 원피스 입고 간다고', '팔찌를 두 개나 차고 간다고', '밥 먹기 싫다고', '졸리다고', '괜히 짜증을 내고.'
6살이 된 조카, 채원이는 날마다 날마다… 어린이집 버스를 타기 전까지 할머니와 제 부모를 뒤흔들어놓는다고 한다. 공주 되는 게 꿈이라는 어린아이 앞에서 팔십 인생을 살고 있는 백발과 청청한 마흔 초반의 두 사람이 절절매는 것이다. 단지 그 아이가 울며불며 외치는 '싫어서! 좋아서!' 때문이다.
어리고, 세상, 뭔지 몰라서 그럴까?
나는 4년 전부터 구세군이 운영하는 노숙인자활센터(모두 남성들임)에서 그들에게 글쓰기와 인문학을 가르치고, 합창제를 갖고 있다. 그곳에서는 거리의 생활을 벗어나 자기 힘으로 먹고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원을 마련해준다. 정해준 규율과 생활수칙 속에서 지내며, 일하여(주로 공공근로 작업) 자립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돈도 모으고, 심신이 회복되면 저마다의 삶의 터전을 향해 출발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나가는 사람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하지만 오랜 노숙생활에서 무절제하고 게으르며, 술과 각종 악습에 중독되고, 남은 인생에 대한 소망 없음과 철저한 패배감으로 홀로서기의 훈련은 자주 무너진다. 다툼도 빈번하고, 술맛을 잊지 못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먹고 자던 과거의 리듬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활센터를 떠나거나 퇴소 명령을 받기도 한다. 그들의 변명이나 항변의 이유는 비슷하다.
그때마다 자활센터의 직원들과 사회복지사들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같이 한숨도 쉬어주고, 함께 분노도 터뜨리고, 일부러 욕도 해주며 마음을 잡아준다. 외국의 노숙인자활센터는 노숙인들이 일정의 돈을 내고 입소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100% 무료이다. 세숫비누 한 장부터 먹고, 자고, 입고, 각종 취미활동이나 직업기술을 배울 기회도 완전 무료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저 인간이 성질이 더러워서', '답답해서', '일하러 가는 게 힘들어서', '한 방에서 같이 자는 게 불편해서', '마음대로 술 마시고 싶어서',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그게 그거 같아서'. 이십대 후반부터 일흔이 넘은 그들은 다시 힘내어 살아보라며 온 힘을 다해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바싹 말려버린다.
나이 들고, 세상, 알 만큼 알아서일까?
내가 자활노숙인 글쓰기 공부 외에 정기적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이주 여성과 함께하는 그림책' 시간이다.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나라에서 온 여성들. 그 중에서도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온전히 이 땅에 정착한 여성들과 매년 그림책 만들기 일을 한다. 저마다 조국의 신화와 전설, 전래동화 등을 한국어로 옮기고, 같은 나라 출신의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작업인데 어찌하다 보니 늘 여름에 시작한다. 일하고, 육아와 시부모을 모시는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광화문에 있는 글로벌센터로 달려온다. 나는 이들에게 한국어와 하나의 문학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가르친다. 당연히 이들의 국적만큼이나 성격, 자라온 환경, 취미와 기질, 지금의 형편 등등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자기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작품을 만들고, 게다가 작지만 서울시에서 주는 수업 인증서와 선물(상품이나 상금)까지 받으니 배움의 과정을 얼마나 고마워하고 기뻐하는지!
이들은 늘 정해진 시간보다 5분이라도 일찍 와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더워도 여기 온다고 생각만 하면', '시엄마가 잔소리 해도 이 시간만 생각하면', '남편이 요즘 많이 아픈데 그래도 이 작업 때문에', '그저께 일자리가 끊어졌지만 그래도 이 수업이 있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엄마가 수술한다는데 돈도 못 부쳐서 너무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이 수업하러 오니까.'
이들에게는 '더워서 추워서, 힘들어서 슬퍼서, 돈이 없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아파서 외로워서'는 삶의 희망을 짓누르는 바윗덩어리가 아니다. 아니, 되지도 못한다. 대부분 눈이 커다란 이 여성들 앞에서 유명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의 작가라는 나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나는 그 얼마나 핑계와 변명이 많은 삶인가. 그런데 이들은 팔 수도 없는 그림책 한 권을 위한 작업을 하면서 왜 저리 즐거워하는지.
먼 여행자라서, 세상, 알아도 몰라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오늘도 나는 새벽 4시 전에 일어났다.
3년 전부터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서 만든 습관 탓이다. 수십 년 동안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기에 이것을 완전히 거꾸로 바꾸는 것은 과장한다면 다시 태어나는 듯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스스로 나를 거듭나게 한 이유 중 하나는 변명하는 삶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변명하다 못해 어느 순간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에는 수치심에 떨기도 했다. '어제 아파서', '그저께부터 감기가 와서', '책 읽느라 밤을 새서'. 주로 아프다는 핑계와 변명, 거짓말을 해댔다. 또는 '비가 와서 우울해져서', '너무 더워서 힘들어서', '그 사람이 예의가 없어서', '그 사람이 입이 험해서', '심지어는 엄마가 아파서', '동생이 아파서.'
이제 더 이상 추워서 더워서, 아파서 힘들어서, 너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라며 변명하지 않고 핑계대지 않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고작 이 수준이냐고 누군가 나를 비웃어도, 그 날 밤, 나는 편안하게 잘 수 있다. '…때문에'와 '추워서 더워서'라는 고약한 두 방망이를 푹푹 삶아서 오히려 내 삶의 약재료로 삼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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