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없는 돌
유안진
돌은 입이 없어 먹이사슬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득한 저 시대에는 돌도 입을
가져 먹고 살았는가. 돌이 먹은 수억만 년 전의 동식물들이, 소화되지도 못한 채 미
라가 되어 박물관에 모였다.
입을 가진 돌은 아직도 먹어야 사는가. 전시장 수석(壽石)에는, 먹어 온 천둥과 번
개 강물과 바닷물, 달과 별빛 눈 서리와 비 안개가 보인다. 물과 바람과 짐승의 소리
까지, 더러는 소화되고 더러는 변형된 채 훤히 내비친다 얼비친다.
온 몸으로 삼켜 먹고도 입 없는 듯 입을 감춘 돌. 보리매미 울음조차 핥아 빨아 마
시고, 시침떼며 살찐 몸에 자욱진 문양. 돌의 몸 돌의 색깔도 그의 식욕이었다. 고
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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