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그을음/임병식

에세이향기 2022. 6. 5. 07:27

그을음/임병식

흙투성이 옷을 입은 채 마루에 누운다. 집안에 배어 있는 오래된 냄새에 섞여 부드러운 촉감이 등줄기로 스며든다. 마당은 후끈 달아오른 햇살이 넘실대고 마루 위는 시원한 바람이 앉아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듯하다. 마루는 가슴을 열어 놓고 주말에만 오는 발길을 기다린 듯, 들에서 일하느라 늘어진 몸을 푸근하게 감싸준다.
 천장에는 서까래가 투박한 몸짓으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지은 친정 집은 반백 년이 훨씬 지났다. 서까래가 애초부터 갖고 있던 지문이 그을음 속에 묻혔다. 하얗게 칠했던 회벽도 시간의 더께가 묻어서 검게 변했다. 처마 밑, 기둥, 창호지를 바른 문살, 집안 곳곳에 그을음이 진득하게 앉아 있다. 아궁이에 처음 불을 지피던 날부터 식구들의 살 냄새와 소소한 기억마저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부모님과 형제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이 집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그을음일지도 모른다.
 들판에 가을 햇살이 출렁인다. 농부의 발걸음과 햇빛이 그린 한 폭의 그림은 자상하셨던 어머니의 미소를 닮았다. 언제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건만, 들판 한 귀퉁이 논은 벼가 모두 쓰러졌다. 아버지 없이 처음으로 농사를 지은 자부심이 낟알처럼 충만해졌고, 보름달이 한 번​ 왔다가면 바로 추수를 할 판이었다. 들뜬 마음을 누르려는 듯 그곳만 비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 논은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고래실이다. 생의 희망을 잃은 듯 쓰러진 벼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생전에 시골을 떠나본 적 없는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뒤꼍 온상 안에는 고추와 고구마 모종 등이 파랗게 와글거리고 있었다. 당신의 몸이 정지되는 날까지 계단을 오르내리신 아버지의 힘겨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시작한 농사는 십여 년 동안 아버지를 도와드린 이력이 무색하게 실수가 많았다. 게다가 예전부터 농사는 하늘이 반을 짓는다고 했던가. 평일에는 쨍쨍하던 날씨가 주말에만 비가 왔다. 진홍빛 고추가 방안에서 물컹거리며 썩고 깍지 안에서 튀어나온 콩은 우리를 외면하고 하얗게 붙어버렸다. 봄부터 흘린 땀이 헛고생이 되어버린 허탈감에 한동안 들에 나가는 발걸음이 흔들렸다.
 선뜻 논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논둑에 멍하니 앉는다. 야트막한 산자락이 무심하게 나를 본다. 개울물은 조근거리며 흐르고 새들은 다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주저앉으려는 내 마음​을 질책하듯 점점 다가온다.
 "이 사람아,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나. 거기에 들인 공이 아깝지도 않나?"
 뒤돌아보니 어르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온다. 대부분 칠팔십 대여섯 등이 구부정하거나 다리를 절룩거린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들은 발걸음이 불안하다. 평생 농사만 지은 어르신들은 약을 달고 살 정도로 몸이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다. 게다가 농촌의 가을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건만, 우리를 돕겠다고 나오신 것이다.
 아무리 사양해도 어르신들은 논으로 들어갔다. 바닥이 개펄처럼 변해서 한번 디딘 발이 잘 빠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간신히 걸음을 옮기면서 지겟작대기로 벼를 반대 방향으로 넘겼다. 그나마 조금 덜 쓰러진 곳은 한 아름씩 묶어서 세웠다. 모든 일이​ 여럿이 힘을 합치면 수월하듯 벼가 중심을 잡고 섰다. '쌀 한 톨에 농사꾼의 땀방울이 몇 개 들어간 줄 아느냐 여든여덟 개가 들어가야 쌀 한 톨이 되는 거여." 어린 시절 밥투정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어르신들은 벼 한 포기도 남기지 않았다. 당신들 또한 쌀 한 톨을 만들기 위해 여든여덟 번 이상 논으로 향했으리라.
 지난 봄이었다. 새벽부터 콩을 심고 나니 시커멓게 웅크리고 있는 산등성이만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그날 마치지 않으면 일주일이 늦어져서 휴대전화기를 비추면서 밭 주위에 망을 치는데 후렛시 불빛이 다가왔다. 밤이 늦도록 우리가 들어가지를 앉아 어르신들이 나온 것이다. 들에서 일하고 있으면 어르신들은 혀를 차며 한마디씩 한다. '좀 쉬면서 하게. 그러다 병나겠네.' '왜 생고생을 하고 그러나. 농사 안 져도 먹고 살만할 텐데.' 그 말씀은 여전히 농사에 초짜인 우리를 다독여주고 싶은 순정한 속내이리라. 어르신들은 우리가 없어도 트랙터로 논밭을 갈아놓거나, 둑에 씌운 비닐이 벗겨져 있으면 손을 보기도 한다.
 한참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급히 가느라 준비해간 음식이 없어서 난감했다. ​간식으로 갖고 간 몇 개 안 되는 빵을 내놓는데, 주엽이 어머니가 커다란 양푼을 머리에 이고 왔다.
 "죄송해유, 도와 드리지도 못하구. 기냥 국수나 삶아 왔어유."
 논두렁에 둘러앉아 점심을 드시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약주를 드신 듯 불콰하다. 수저를 잡은 검고 투박한 손을 달달 떠는 분도 있다. 당신의 일인 양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은 한 동네, 한 식구라는 의미를 말해주었다. 어르신들에게 동네는 가마솥을 닮은 공동체이니 한 식구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의 동작은 굼떴다. 엎드리다시피 하거나 털썩 주저앉아서 하면서도 힘든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스갯소리로 흘러내리는 땀을 식혔다.
 동네를 둘러싼 야트막한 산은 어머니의 젖무더처럼 선이 부드럽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의 성정도 순하고 어찌 보면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하다. 다른 동네 사람보다 유식하거나 목소리가 큰 분도 없고 약삭빠르지도 못하다. 아래위 동네가 한데 어울리면 앞에 나서기보다 있는 듯 없는 듯 뒤에서 내 할 일만 한다. 특별할 게 없는 어르신들이지만, 몽고반점처럼 따뜻한 심성을 타고났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거나 손익을 셈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정을 베푼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산마루를 넘어가는 석양이 자줏빛으로 변했다. 희망을 되찾은 듯 벼는 일어섰지만, 어르신들의 등은 더 굽어졌다. 약주를 좋아하시는 앞집 할아버지의 그림자는 허리를 펴지 못했다. 무릎 관절을 앓는 할머니들의 걸음걸이도 몹시 무거워 보였다.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니 '그러면 그걸 기냥 보고 있나.'한다. 시적시적 걸어가는 어르신들의 왜소한 등에 자줏빛 노을이 걸렸다. 그 모습이 집 앞에 펼쳐진 정경보다 가슴 저리게 하는 건 왜 그럴까. 어르신들의 뒷모습에는 오래전부터 풍습처럼 내려온 '인정'이라는 훈김이 묻어 있다.
 하늘빛을 닮았던 기와가 본래의 색상을 잃으면서 친정집도 많이 퇴색되었다. 얼마 전 지나간 비바람에 용마루를 지키던 기와가 마당으로 떨어졌다. 벽에는 시간의 무게가 버거운 듯 굵은 선을 그었다. 예전처럼 가족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문지방을 넘을 것 같지 않다. 건넌방 아궁이도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불을 땐지 오래 되었지만. 그을음은 아궁이에 불을 때든 말든 개의치 않는 듯 꼼짝 않고 있다. 집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 함께 할 모양이다.
 번듯한 집 한 채 없는 동네도 차분히 앉아 있다. 골목을 들썩이던 아이들 웃음소리는 불나방이​ 되어 도회지로 떠난 지 오래되었다. 어르신들의 힘찬 발걸음 소리는 큰길 옆 느티나무에 걸려 있다. 낮아지는 지붕처럼 동네가 변해도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 의무를 다하듯 평생 그 자리에 있듯이 어르신들은 앞으로도 그대로 계실 모양이다. 그분들 덕분에 그리움이 가득 묻은 흑백 사진을 닮은 고향이 있어 가슴이 든든하다. 동네를 지탱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그을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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