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를 기다리며 / 황상순 옥수수를 딸 때면 미안하다 잘 업어 기른 아이 포대기에서 훔쳐 빼내 오듯 조심스레 살며시 당겨도 삐이걱 대문 여는 소리가 난다 옷을 벗길 때면 죄스럽다 겹겹이 싸맨 저고리 열듯 얼얼 낯이 뜨거워진다 눈을 찌르는 하이얀 젖가슴에 콱, 막혀오는 숨 머릿속이 눈발 어지러운 벌판이 된다 나이 자신 옥수수 수염을 뜯을 때면 송구스럽다 곱게 기르고 잘 빗질한 수염 이 노옴! 어디다 손을 손길이 멈칫해진다 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솥에 든 옥수수를 기다리는 저녁 한참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잠이 쏟아진다 노오랗게 잘 익은 옥수수 꿈 속에서도 배가 따뜻하여,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