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이정경 사과 꽃봉오리 수줍게 올라오던 봄, 오랜만에 옛 친구들이 모였다. 모처럼 나들이라 꽃단장했지만, 어디 세월의 흔적을 얄팍한 분칠로 가릴 수 있을까. 파운데이션 위로 드러나는 주름살에서 그녀들의 지난 시간이 숨어있다. 백발이 성성하고 느슨해진 말투에서 삶의 연륜을 느낀다. 늘 동생을 업고 다녔던 친구의 등을 슬쩍 만져본다. 아직도 그녀의 빈 등에서 젖내가 묻어있는 듯하다. 세상 언저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던 친구들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날이 저물도록 끝이 나지 않는다. 적과로 떨어진 과일처럼 숨을 죽이고 산 시간을 쏟아내려면 아마도 이 밤을 하얗게 새워야 할 것 같다. 엄동의 추위를 이겨낸 사과나무는 가지마다 꽃눈을 틔운다. 꽃은 액화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고 정화만 남긴다. 선택된 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