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는다는 것 권상진 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 접혀진 자국이 경계같이 선명하다 한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서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