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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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들 / 민혜

에세이향기 2024. 2. 20. 09:31

들 / 민혜

 

빈들에 서면 왠지 안도의 숨이 나온다. 추수 끝난 벌판엔 아직 분망했던 잔재가 남아 있지만 새봄이 오기까지 들은 긴 휴식에 들어간다. 나는 때로 늦가을의 빈들을 찾아 그 텅 빈 휴지기를 망연히 바라보곤 하였다. 허허롭고 황량하기까지 한 들녘을 향해 한 자락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을 때면 알 수 없는 안식의 숨이 가슴 저 밑으로부터 새어 나오곤 했다. 들은 길게 누워 모처럼의 한유를 누리는 것 같았다.

자식들을 품은 어미인 양 들은 언제나 숙명의 언저리를 뜨지 못했다. 그 자리를 지켜가며 숱한 새끼들을 키워내고 살찌워냈다. 그러다 때가 되면 어디론가 떠나보내곤 했다. 재주는 곰이 부렸으나 주머니는 왕서방이 챙기는 것처럼 들은 늘 모든 걸 내어주고 빈 가슴으로 황혼을 맞는다.

곁을 스쳐가는 냇물이나 강을 바라볼 때면 들도 그들 따라 마냥 흘러가고 싶었으리라. 그들은 한시도 머물지 않고 들의 곁을 유유히 스쳐 지나가곤 했다.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흐르는 듯 같지 않은 그들이었다. 물결은 저마다의 소리가 있어 조잘대고 철썩이며 기분과 감정을 토로했지만 들에겐 불언불어(不言不語)의 운명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수려한 뫼와 굽이 흐르는 강의 풍치, 일렁이는 바다의 장관이 인간을 쉽게 경도시키는 것과 달리 덤덤하니 지내는 들은 무심히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들은 가까이 다가와 주는 이들에게만 비로소 자기 속내를 열어 보였는지 모른다.

눈이 하얗게 내렸던 어느 겨울날 나는 빈들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동두천역에서 내린 후 다시 경원선 열차로 갈아탔다. 내가 탔던 열차 칸의 승객들은 대부분 남성들로 연배가 한참 위로 보이는 분들이었다. 얼굴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검버섯과 깊이 팬 주름 때문인지 그들의 모습은 빈들처럼 검누르고 굽이져 보였다. 그들 또한 평생을 들처럼 일하고 들처럼 떠나보낸 인생들일 터였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나는 내 옆자리의 어르신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다.

“종점까지 가디요.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더 북으로 갑네다. 고향을 북에 두고 내려왔시니까요.”

그는 고향이 그리워 하릴없이 이 거리를 자주 왕복한다며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그간 그가 무시로 오고갔던 노정을 이으면 이미 북녘 고향 산천을 수도 없이 휘돌고도 남았을 테다.

도심권을 벗어나자 열차는 내 눈앞에 갖가지 풍경을 연이어 풀어 놓았다. 마을이 보이는가 하면 산과 내와 강이 보이고 빈들이 펼쳐졌다. 들녘에는 햇살 받은 하얀 눈이 설탕 가루라도 뿌린 듯 반짝였다. 선로 가까운 묵정밭 눈발 위로 가녀린 새 발자국 몇 개가 작은 단풍잎처럼 찍혀 있는 게 보였다. 겨울빈들의 가녘에선 마른 들풀과 갈대들이 서걱대며 몸을 흔들었다. 이맘때의 산야는 채도를 달리할 뿐 유사한 색채로 차분하게 어우러지나 백설로 뒤덮인 사위는 온통 눈부신 신천지를 펼쳐 보였다.

당시의 경원선은 신탄리역이 종점이었다. 남북 분단 이후 경원선의 중단역이 돼버린 신탄리역에서 나는 일단 내렸다. 고대산 기슭을 조금 거닐고는 보리밥 집에서 배를 채운 뒤 철길이 보이는 차도를 따라 역(逆)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산보다는 들을 보며 걷고 싶었다. 차들은 휙휙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달렸으며 간간이 바짝 다가와 겁을 주곤 달아났다. 그럴 때면 위치를 옮겨 긴 휴식에 든 들녘을 살망살망 밟으며 걸어갔다. 말라붙은 고춧대에선 색 바랜 고추들이 잔뜩 오그라든 모습으로 덜렁거렸다. 한 시절엔 땅기운을 뽑아내어 열매를 부풀리고 야물게 영글어갔을 고추들의 꼿꼿했던 자존심은 오간 데가 없었다. 새삼 고춧대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영락과 쇠락이란 생명의 법칙이 비껴갈 수 없음을 보며 시선을 돌렸다. 밭이랑 저만치에 들짐승에게 먹힘을 당했는지 아니면 탈진하여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새의 깃털이 흙에 붙어 너풀거리고 있었다. 순간 내 눈앞엔 구제역이니 조류독감이니 하는 전염병으로 수많이 흙에 묻힌 뭇 축생들의 주검이 어른거렸다. 들에는 커다란 황소도 묻히고 돼지도 묻히고 닭과 오리들도 묻히었다. 생으로도 묻히고 시체가 되어 묻히기도 했다. 들은 고스란히 지켜보았으리라. 그들을 키워냈던 축산 농가의 비탄과 눈물, 죽어지는 가축들의 단말마적 신음과 울음소리를. 더럽고 궂은 것은 오직 들녘의 몫이었을까. 인간은 자신을 배불려준 그의 품에 갖은 폐기물과 쓰레기들을 거리낌 없이 파묻기도 했었다. 들은 그것 또한 말없이 가슴에 품어주었다. 오물의 악취도 스스로 삼켜야 했다. 형체이든 냄새이든 그 품에만 들면 모두를 보듬고 마는 들의 순독함은 얼마나 장구한 세월을 이어온 것일까. 유사 이래 인간은 들을 파먹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파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대지의 속살 속에 제 삶의 흔적들을 묻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빈 들녘이 거대한 팥 시루떡처럼 보이는 진풍경을 체험해 보지 못한 이는 결코 그 감동을 알 수 없으리라. 사십 후반 무렵의 어느 이른 봄날 아침이었다. 나는 전남 순천역에서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차한 차창 밖으로 간밤에 내린 비를 흠뻑 머금은 빈들이 시루떡 같은 색깔로 너르게 펼쳐 있었다. 갓 떠오른 동녘 해는 대지를 향해 주황색 빛살들을 분사하였고 볕에 데워진 흙에선 이제 막 떡을 쪄낸 듯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돋을볕이 연출해 내는 그러데이션(Gradation)의 장관. 창밖의 풍광은 빛과 색채, 정(靜)과 동(動)이 어우러져 자못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나는 지금껏 이처럼 찬란하고 훈감한 들녘을 본 적이 없었다. 빈들이었건만 더없이 육덕지게 다가왔다. 기차 시간대느라 조반을 거른 탓인가 거대한 시루떡만 어른거렸다. 나는 습기 촉촉한 짙은 고동색의 시루떡을 눈으로 원 없이 베어 먹었다. 구수한 떡의 살집은 끝 간 데를 모를 만큼 깊고 푸짐해서 승객 모두가 달려들어 파먹어도 화수분처럼 채워질 듯 보였다.

나는 얼굴을 창에 바짝 대고 계속 창밖만 내려다보았다. 시루떡의 가장자리엔 어느덧 연녹색 들풀들이 대지의 속살을 간질이며 꼬물거리고 있었다. 들은 지난해의 신고를 모두 잊은 채 새 생명을 품는 중이었다. 들은 또다시 하늘 아버지와 함께 작물들을 울울하게 키워낼 채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 정경을 응시하는 내 가슴에도 시나브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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