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반칙
조영선
독거노인이 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다.
남편이 그렇게 타계했고 내가 그렇게 남겨졌다. 100일 전의 일이다. 나이로 보아서는 남편이니(85), 아내(87)인 내게, 그리고 또 어떤 노약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두드러지게 삶의 의욕과 대비가 달랐다. 남편은 모기에게 물려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몸을 움직여 보고 혹시 불편한 곳은 없나 자가점검을 철저히 한다. 남편은 몸을 신생아처럼 관리한다. 그의 좌우명 중 “첫째는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완치에 이를 때까지 치료를 받는다.”라는 것이다.
한편 아내는 어떻게 둘러대서라도 병원에 가는 것은 피하고 본다. 웬만한 병은 자연 치료가 되며 더러는 사는 날까지 같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영양식이나 건강식은 쓰거나 다소 비위에 거슬려도 관계없이 잘 먹는다. 그러나 아내는 절대로 사양한다. 입에 맞는 것만 먹을뿐더러 세끼의 식사도 소식으로 한다. 남편은 운동을 거르지 않고 충분히 한다. 아내는 산책이나 걷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남편은 세상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던 사람이다. 아내는 염세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의욕적인 삶의 태도는 단연 아니다. 누가 보든지 이 집은 먼저 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서로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만다.
남편은 아내보다 연하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 혼자가 되더라도 건강하게 살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 상태다. 큰 어려움이 없는 노년이다. 김치를 맛있게 담글 줄 안다. 여러 가지 밑반찬과 저장 음식도 만든다. 백숙도 끓이고 사골도 고아낸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영양식을 만든다.
모두 아내에게서 배운 것이다. 기본 음식은 아내에게서 배웠지만 인삼, 버섯, 삼채, 생강 등 보약제 첨가물은 남편이 연구해서 넣는다. 우리 집은 늘 보양식 수준의 약재 향이 배어있다.
남편은 세탁기도 돌린다. 청소는 도우미를 불러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시킬 줄 안다. 남편은 건강관리에 무심한 아내에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충고를 한다.
“당신 죽으면 예쁘게 염해서 보내주고 곧 따라갈게…. 멀리 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어요.”라고 확신에 차 있는 말투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그가 훌쩍 내 곁에서 떠났다. 병명은 폐렴이라고 하지만 그저 노환이라고 생각한다. 젊었다면 거뜬히 이길 수 있었을 테니까.
오늘로 백일이 지나고 넉 달째로 접어든다.
둘이 살다가 혼자가 됐다. 남편의 방은 그대로 있다. TV가 있고, 옷걸이에 코트와 모자가 걸려있다. 남편만이 보이지 않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심심하다. 남편은 삶의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TV를 많이 본다. 특히 음식 프로를 본다. 그럴 듯한 음식이 나오면 수첩에 적는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간다. 식재료와 양념을 빠진 것 없이 사온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대중없이 많이 사오는 것이 흠이다. 작은 용량의 것은 사지 않는다. 식초도 큰 병으로 사고 참기름도 대통으로 사왔다. 남편의 눈에는 적은 용량의 것은 양에 차지 않는다. 모든 것이 크고 비싸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 했다고 칭찬한다. 일을 거들어 주지 않으면서 타박만 하면 안된다. 칭찬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남편이 노후에 홀로서기를 위하여 주방 일을 배울 때 아내는 칭찬으로 일관했었다. 당신의 손맛은 기가 막히네.
“종갓집 김치가 무색해요. 어머님(시어머니)을 닮았나 봐, 간이 딱 맞네…. 갈비가 알맞게 됐네. 맛있다, 자꾸 먹게 되네….”
“어? 정말이야? 많이 먹어요. 또 해줄게.”
“여보, 당신 친구들 불러서 자랑해야죠”
당신은 100세 인생의 선구자야. 장수를 하려면 남자도 주방일을 알아야 해요. 당신, 다음 세상에는 여자로 태어나요.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마누라 삼을게…. 침대를 정리 할 때…, 빨래를 개킬 때, 내무반장이 놀래겠다. 세탁소가 문 닫겠다.
배우려는 사람에게 잘 했다는 칭찬만큼 흡족한 것은 없다.
남편은 전화 걸기를 좋아한다. 어릴적 친구들을 비롯해서 외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남편이 관리하고 있는 친지는 약 100명 정도인 것 같다. 그런 관계로 외출 시에 밖에서 남편에게 통화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이고 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과일과 케이크 등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산다. “이것 당신 좋아하는 거야.” 아주 비싼 태국산 애플망고를 들고 들어온다.
그러나 먹기는 남편이 먹는다. 그리고 다시 사온다. 살 때는 아내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고 사지만 먹을 것 앞에서는 잠시 아내를 잊고 만다. 그러나 언제나 아내 것을 사 온다. 오늘도 포도를 사왔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여보, 포도 어디에 두었어요?”
“응, 그것 내가 먹었어, 내가 금방 사다줄게….” 한다.
그러던 남편이 없으니 주전부리가 떨어졌다. 그동안 남편 덕에 잘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게 되려는지…. 많이 사온다고 타박은 했지만, 늘 풍족한 살림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맛있고 비싼 것을 사온다. 나도 남편을 위해서 뭔가를 사야 한다. 그래야만 냉장고가 채워진다. 그러나 남편이 없다. 먹어 줄 사람이 없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냉장고가 채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가면서 마스크 착용은 안 했다. 급히 뛰어들어오며 “여보, 마스크.” 하고 남편에게 마스크를 집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거기에 남편은 없다. 아직도 남편 부재를 실감하지 못한다. 신을 신은 채 거실 바닥에 털썩 앉았다.
들창 문틀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서 바닥에 길게 누웠다. 무심히 손을 뻗어 건드려 본다. 빛은 주름투성이의 손등에 올라와 내게 말한다. 쓰레기 버려야지…. 질끈 감은 눈에서 주르르 입까지, 눈물이 찝질하다.
오래 같이 살던 부부에게는 하루라도 먼저 떠나는 사람이 승자다. 남겨진 사람이 패자인 셈이다. 남편은 꼴인 점까지 와서 갑자기 스케이트의 날을 꼴인 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쇼트트랙 빙상 선수처럼 운명의 꼴인 선을 넘어 들어갔다. 그는 운명의 선을 통과했고 나는 낙오됐다. 그래서 돌싱이 됐다.
나는 오늘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미술 공부는 일주일에 한 번 지도를 받는다. 선생님은 어떤 그림을 배우려고 하시냐고 묻는다. 초상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남편의 초상화를 그려 보려고 한다. 그리는 동안 마주 앉아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서다. 아버지와 남편에게는 왜 거짓말을 했냐고 따져 보려고 한다.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나는 믿었었다. 나를 먼저 보내고 뒷정리하고 곧 뒤따라 갈테니 멀리 가지 말라던 그 말, 그 변명을 꼭 듣고 싶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의도적으로 외출을 하고 싶어서다. 그림 배우러 간다 하고 차려 입고 격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며칠 안으로 벚나무에 꽃송이가 벌어지는 것도 보겠고….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가 그리고 싶은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을 때까지 분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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