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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까마귀/정성희

에세이향기 2023. 4. 26. 03:37

까마귀

 

                                                                                                                                 정성희

  

 까악까악, 저놈이 또 울어댄다. 오늘 하루도 신수 사납겠구나 싶어 웬수 같은 저 울음소리가 소름끼치도록 까맣게 들려온다.

 

 먼 옛날에는 까마귀가 예언하는 신통한 재주를 가졌다하여 신령스러운 영물로 받들어졌다고 한다. 새를 숭상해온 우리민족문화에서 이러한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까마귀가 임금을 암살위기에서 구했다는 설화에 근거하여 정월 대보름이면 약밥을 지어 제를 올렸으며,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더라도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또한 씨름총에는 단군신화에 등장한 신단수 나무 위에 까마귀가 앉아 노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하니, 우리 선조들에게 그놈은 광명을 가져다주는 해신이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까마귀 비록 검다지만, 우리민족은 백색과 아울러 흑색도 즐겼다. 고구려에는 신라의 화랑도를 능가하는 전문무사집단인 조의선인이란 게 있었다. 전시에 검은 옷인 조의를 입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무예전사들로서, 고구려가 그토록 넓은 영토를 확장해가며 기세를 뻗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들이 입은 검은 조의는 저승사자가 걸친 싸늘한 도포가 아니라, 우리민족에게 강인한 용맹과 드높은 기상을 고양시킨 위연(威然)한 도복이었다.

 

 세월 따라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자고나니 뒤웅박팔자가 된 까마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귀향 보내진 비운의 새로 바뀌어졌다. 신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닥쳐올 재난을 미리 귀띔해 주던 귀물이 신성한 길조에서 불길한 흉조로 운명이 달라진 건 그리 오래지 않다. 깃털이 검고 울음소리마저 싸늘한데다가 불길한 징조까지 주니, 사람들로부터 천덕꾸러기로 전락되어 점차 멀어져 간 것이다. 마을에서 쫓겨난 까마귀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면서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만 했다. 산기슭 공동묘지는 그들의 좋은 생존터전이 되었다. 사람들이 차례를 지낼 때마다 남겨둔 음식으로 그나마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혼을 싣고 나르던 신조(神鳥)인 까마귀가 어쩌면 전생에 무당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굳이 무당이라기보다는 우리 한(韓)민족의 조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때 그분들도 후손들에게 염려스런 훈계를 하며 귀한 대접을 받았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실없는 늙다리의 잔소리로만 들려 사람들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 까마귀팔자를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살다보면 삶의 풍파에 부딪혀 막다른 길에 닿을 때가 더러 생긴다. 우주와 자연을 지배하는 이법이 때로는 불가사의하고도 신비스런 힘으로 인간사를 이끈다는 것에 무릎을 치게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미지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면 종교의 있고 없음, 학식의 높고 낮음과 직업의 귀하고 천함, 소유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들은 조상을 찾아간다. 그것은 학문적 지식보다는 경험을 토대로 한 선조들의 산 지혜를 구하려는 최후의 몸짓이 아닐까. 그들의 요구는 언제나 절박하기에, 그을음투성이 삶을 살면서 갖은 세속풍랑을 몸소 겪었던 우리 조상들의 살아있는 인생이 아니고서는 해답을 캐낼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허나 그도 그때뿐이다. 못난 며느리 제삿날 병난다고, 제 궁할 때만 조상 찾으니 가을에 못 지낸 제사 봄에 지내랴. 새대가리마냥 양심을 아래로 떨구고 이런 저런 상념에 마음을 헤매며 발길 가는대로 하염없이 걸었다. 버드나무 가지 위에 오색 헝겊이 늘어져 있는 하늘이 텅 빈 허름한 무당집에 다다랐다.

 

 “얼굴이 보살형이야.”

 

 늙은 무당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건넨 말이다. 흐트러짐 없는 그의 눈빛은 다소 고집스러워 보였으나, 얼굴은 온화한 토종 애호박을 닮았다. 나는 그의 주름진 차림새에서 한때 찬란했던 옛 문화를 읽을 수 있었다.

 

 자르르 윤기나게 빗은 쪽진 머리에 선명한 가리매는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은, 우리 선조들의 올곧고 강인한 정신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화사한 비취뒤꽂이는 아직도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이며, 펄럭이는 쾌자는 세상만물을 안으로 다 품으려는 넉넉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걸걸하고 쉰 듯한 목소리에는 인간의 편에 서서 신에게 소원을 갈구하며 비손하던 우리 조상들의 희생도 엿보였다.

 

 저기 무당 간다. 예전에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를 바라만 보려했다. 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중간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저당 잡힌 설움과 사회적 고립을 애써 무시하며 잽싸게 등 돌리려고만 했다. 그것은 그들만의 피할 수 없는 멍에라고 웅얼거리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존재로는 인식하려 들지 않았다.

 

 세월을 머금은 흰서리가 내리고서야 그런 눈홀김을 거둘 수 있었다. 뒤로 멀어진 발자국도 조금씩 끌어당겼다. 나의 단편적인 생각들을 절대기준으로 삼아 그를 보려 했던 옹졸한 시야가 부끄러워졌다. 밤길의 먼 불빛처럼 늘 아득해 보이던 조상문화가 서서히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세계라고 여기며 거들떠보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게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아마도 원시문화에 대한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이 이러하지 않을까. 잘 모르면서 그저 두렵고, 그렇다고 가까이하기엔 왠지 께름칙하여 시간의 저편에 묻어버리고 싶은, 그런 것이 아닐까.

 

 소라가 똥 누러 간 새 거드래기 기어든다더니만, 한때 위용을 떨쳤던 민족문화가 목 좋은 자리를 치고 들어온 젊은 문명의 기세에 눌려 맥없이 주저앉게 되었다. 영악한 그놈은 과학에 바탕을 둔 거대한 수확을 앞세워 세상 사람들을 송두리째 매수해버렸다. 장구한 역사를 면면이 이어온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이 그놈 등쌀에 밀리어, 보존해야 할 소중한 미덕까지 폭삭 내려앉고 말았다. 세월이 갈수록 횡포가 심해져 가당찮게 자신을 치켜 주지 않으면 이내 관계를 매몰차게 닫아버려 찬바람만 고이게 한다. 오만감에 저 잘난 줄만 알고 으스대는 배은망덕한 호래놈은, 한(韓)민족의 고유문화를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악습으로 치부하거나 미신과 관련시켜 제 발치 아래 두고 지배하려든다.

 

 하지만 옛 풍습은 기나긴 역사의 길목을 지켜 온 수문장이며, 어려움을 이겨낸 우리 조상들의 삶의 거울이다. 특히나 무속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 정착할 때부터 뿌리 깊게 내려진 대중풍속으로서 단군을 교조로 한 토속신앙이 아니던가. 조금은 모나고 일그러진 부모라고 버릴 수가 없듯이, 이론적 체계와 그 내용이 미흡하더라도 수천 년 내려온 민중의 향토문화를 차갑게 굳은 신식문명의 틀 속에 부식시킬 수는 없으리라. 달팽이가 등 위에 집을 이고 다니듯 인간도 그 내면에 고유한 민족의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거늘, 하물며 그렇게 허무하게 내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천 년 동안 제 나라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도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귀중하게 여기며 지켜온 이스라엘민족이 생각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문명이 거지반 이상 사라졌지만, 유대인들의 전통만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유랑과 핍박의 긴 역사 속에서도 풀뿌리 같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자녀들에게 철저히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전수한 이스라엘민족의 저력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가까운 일본의 민속 문화를 살펴보더라도 얼굴이 붉혀지기는 매한가지다. 일본은 그들의 원시종교를 신도(神道)라고 추켜세운다. 그렇다고 그 어느 누구도 그것을 미신이라며 주변부로 밀어내지 않는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다다오가 ‘물 위의 신사’라는 작품을 설계해 제 나라 신사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린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우리는 멀쩡한 민속 문화를 감춰두고 꺼내어 쓸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일본을 마주대하기가 왠지 거북살스럽다.

 

 그 깨달음이 장롱 맨 아래 간직해 둔 사주단자보다 더 소중하게 다가올 즈음,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버드나무 가지 끝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있다. 갈 곳도, 깃들일 곳도 없어 가슴이 메이는지 빈 허공을 향해 목젖이 새까맣게 타도록 까악까악 울부짖기만 해댄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악을 쓰는 그놈의 울음소리가 우리 조상들의 나무람 같아 양심이 쪼그라든다.

 

 얼마 전 방송에서 까마귀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울산의 하늘을 뒤덮으며 몰려든다는 내용이었다. 울산시와 환경단체들은 까마귀는 흉조가 아니라 울산이 생태도시로 거듭났음을 증명해주는 귀한 손님이라며 시민들에게 ‘까마귀 바로 알기’의 홍보교육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까마귀 생태교실을 마련하는 등 시민들이 까마귀와 친숙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옛 명성을 되찾은 듯한 안도감에 조상 뵐 면목이 생겨 절로 흐뭇해져 온다.

 

 반쯤 열린 문 틈새로 스며든 햇빛을 통해 선명해진 신당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늙은 무당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 선인들이 그래왔듯이, 그도 문명의 거리에 휴지처럼 버려진 부도덕과 혼란을 잠재우고, 뒷방으로 밀려난 민속문화의 옛자취를 되찾으려는 염원으로 또 다른 긴 세월을 비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비록 체계화된 교리를 갖고 있지 않아 다소 어설프더라도, 당골의 혈통을 이어받은 신의 후손들이 제 조상을 섬기지 않고 제 문화를 내팽개치면 그 누가 받들고 지켜가랴. 우리 민족의 뿌리와 같은 무속의 위상을 되찾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겠다는 다짐이 내 안에서도 꿈틀대고 있다. 그러한 눈뜸이 천년의 울림이 되어 휑하니 뚫려진 가슴을 꽈악 채워주는 듯하다.

 

 

 “얼굴이 보살형이야.”

 

 아무래도 그 무당집에다 내 영혼을 남겨두고 온 것 같다. 나는 세포 속에 숨어있는 미세한 입자들 하나하나에서 단군의 자손임을, 아니 당골의 피를 이은 후손임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며 내 인생의 첫 장과 마지막 장에 새겨두련다. 그리고 언젠가는 두고 온 또 다른 나를 찾으러 그곳에 들러야 할 것 같다.

 

 

- 계간 ‘동리목월’ 2017 가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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