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입
강수니
봄이 오는 함평 나비 축제장. 색색의 나비춤이 현란하다. 저 나비들은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번데기 집을 빠져나온 나의 춤사위인가.
‘동백 아가씨’ 테이프가 반복되며 끝도 없이 돌아간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입원실. 중년인 그녀는 설암 말기로 이미 혀를 잘라낸 자리에 대장 한 부분을 이식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여러 장기에 암이 전이된 중증 환자였다.
여자 2인 병실, 간병하는 그녀의 남편과 한 공간에서 24시간 함께 있었다. 투병생활로 예민해진 나는 여간 곤욕스럽지 않았다. 목에 호스를 꽂고 유동식을 넘기는 그녀는 수시로 구강을 청소해야했다. 가래 뽑아내는 기계소리와 시도 때도 없이 틀어대는 ‘동백아가씨’ 노래는 고문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는 남편의 투박한 목소리, 밤새 코고는 소리는 내 잠을 흔들어놓았다.
더는 견딜 수 없어 딴 병실로 옮길 차례만 기다리고 있는 중에 창밖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고향은 어디쯤일까. 동백꽃이 피고 지는 어느 외딴섬일까. 핏빛보다 더 붉은 그녀의 목숨은 지금 동백의 모가지처럼 뚝뚝 지고 있는 것인가.
문득, 나 역시 그 동백꽃이었다. 지난달, 아무도 몰랐던 남편의 황퇴. 충격이 가시기 전에 남편이 가족 몰래 친구에게 집 담보 보증을 섰던 일로 졸지에 집이 없어졌다. 우리는 악담을 독화살로 쏘아 보냈고 되돌아오는 화살에 가슴을 찔리며 피를 흘렸다. 그 쇼크로 갑자기 얼굴 한 쪽이 마비되었고 입과 눈이 흉하게 비틀어져 말을 하거나 웃으면 괴물로 변했다. 바람이 새는 입은 말의 기능을 닫고 폭포수 같았던 원망의 악담은 출구를 잃었다. 한 쪽 눈물샘까지 마비되어 아무리 울어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마른 울음만 토했다. 급기야 안구까지 말라 약으로 봉해버린 애꾸눈에는 반으로 조각난 세상만 보였다.
거침없이 달려오던 아스팔트길이 눈앞에서 뚝 끓어져버린 순간이었다. 낙서 같은 생의 후반부 그림을 용납할 수가 없어 세상의 끈을 풀고 저 아래로 뛰어 내리려던 그날, 골똘히 아래를 보고 있는데 왁자지껄 그 남자 사투리가 눈앞까지 날아왔다.
그녀를 질질 끌고 와 패대기를 치며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있었다. 또 옥상에서 투신하려는 그녀를 붙잡아 온 모양이다. 혐오와 짜증으로 뭉친 그들에게 처음으로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한 병실의 환자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세상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이 그동안의 불신을 걷어내고 측은지심의 마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 사내는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며
“임자! 의사선상님이 그러는데 맨들어 붙인 쌧바닥도 신경만 통하몬 노래도 할 수 있당게 빨리 나아서 집에 가소! 이번 참에 전국 노래자랑에 나감세.”
한밤중 칸막이 커튼 위를 우렁우렁 건너오는 그 남자의 거짓말이, 절망의 늪 속에서 아무것도 안 들리던 내 귓속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매일 다른 병실로 옮겨달라고 졸랐던 요청을 거둬들인 것은 그날 이후이다.
우린 서로 말은 할 수 없어도 눈빛으로 관심이 오고 가다 필담을 나누는 사이로 변해갔다. 예전에 그녀는 노래를 잘 불러 별명이 동백아가씨였단다. 통증이 올 때마다 녹음된 그 노래를 들으면서 참는다 했다. ‘진통제 값도 아낄 겸’이라고 손바닥에 쓰고 웃었다.
꿈속에서 큰 소리로 부르다가 꿈 깨면 사라지는 입, 기막혀 통곡도 하지만 눈으로 더 많은 이야기 할 수 있다며 또 웃는다. 소리 없는 웃음, 미소美笑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그때 알았다.
거울 앞에서 힘주며 울어도 물고기의 눈처럼 깜빡도 않고 빤히 나를 보고 있는 눈, 웃으면 휙 틀어져 올라가는 괴물 같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면회도 사절하는 얼굴을 그녀와 마주보며 오랜만에 웃어보았다. 정지된 모습을 살아서 보는 고통을 함께 나누며 위로랍시고 “아줌마 혀가 없는 것을 너무 슬퍼마세요. 사람은 태어날 때 입에 도끼 하나씩 물고 나와 남도 찍고 나도 찍는 데요. 아줌마는 나와 남을 찍을 일이 없잖아요.”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였다. 이제는 동백아가씨 노래로는 진통 효과도 바닥이 나고 고통으로 혼절하는 그녀의 팔에 쉴 새 없이 모르핀 같은 진통제가 꽂히던 날 휴게실에서 만난 그 남자는 새까만 주먹으로 굵은 눈물을 쓱쓱 훔치며
“아줌씨도 남편 미워 하지마소! 부부라는 거이 참말로 나비 같은 기라요. 양 날개 두 짝중 한나라도 상하면 지 아무리 잘나도 못 날아 가제잉! 내 날개가 이렇코롬 부러져 뻔지면 나가 인제는 한 발짝도 못 날고 벌레거치 땅에 꼬꾸라져 퍼드득 거리다 죽어 갈 꺼인데…”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미 소생 불가능의 진단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 어디냐고 동네 이장에게 물어보니 서울 그 일원동 병원, 죽기 전에 제일 좋다는 그 병원에서 등짝이라도 눕혀 주고파 이러고 있다고, 여자 병실에 남자간병인이라 미안한 줄은 알지만 간병비가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끝을 흐린다.
애들 넷과 오랜 병 바라지로 먹고 살 것은 있냐고 물으니 아직도 소가 한 마리 남았는데 봄에 새끼 낳으면 두 마리나 된다고, 손가락 둘을 들어 보인다.
살아 있는 식구는 소 없어도 살지만 저 사람은 죽어갈 사람이라 다 해 주고 싶다며
“아 만날 때 잘 만났으니 보낼 때도 자알 보내야 쓰지 안것소. 안 그러요?” 하며 손등으로 쓱 눈물을 훔친다.
전라도 낙도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제일 좋다는 곳에 눕히려 불원천리 달려온 저 남자, 땀내가 진동하는 꾀죄죄한 이 촌부가 그 순간, 게리쿠퍼 보다도 더 근사한미남자였다. 슬픔에 젖은 빨간 그의 눈동자에 전염되어 나도 눈물 콧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 순간, 마비되었던 나의 한 쪽 눈물샘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남의 눈물이 나의 마비된 눈물샘을 뚫어주고 있었다.
며칠 후, 그녀는 그렇게 부르고 싶던 노래를 한 입 가득 담은 채 고요히 날개를 접고 흰 시트에 덮였다. 마치 흰 고치 속으로 번데기가 나비가 될 꿈을 꾸러 들어가듯이…
아내를 눕힌 침대를 보조사와 함께 복도 저만큼 영안실로 밀고 가는데 남자의 등에 부챗살이 부러진 부채처럼 덜렁덜렁 날개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환자복에 가린 나의 어깻죽지가 몹시 가려웠다. 등을 긁다가 더듬어보니 두 가닥의 날개가 뾰족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사물함에 내쳤던 전화기를 찾아들고 남편의 번호를 눌렀다.
“지독한 겨울이 다 갔나 봐요. 봄이 오면 나비가 나올 때 나도 당신에게로 날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게 날개 같은 것이 막 나오고 있거든요.”
입술근육이 제자리로 바로 돌아왔는지 발음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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