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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기다리는 집/조현미

에세이향기 2023. 5. 21. 21:25

기다리는 집


조현미




한 채 집을 마주하고 있다. 더러 집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동네가 떠들썩한 한가위 저녁이거나 정초 무렵이었다. 처음엔 풍경 소린 줄 알았다. 그러나 바람이 자는 중에도 소리는 찾아왔다. 그 집이 온몸으로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살붙이를 죄 떠나보낸 늙은 주인 같았다.
집의 상심은 생각보다 중했다. 용마루는 휘었고 굴뚝은 잦바듬했다. 아궁이는 검게 입을 다물었고 부뚜막도, 불목도 온기를 잊었다. 해진 창호 너머 그 집의 속살이 적나라했다. 꼭 주인의 알몸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뼈대가 탄탄하고 옹골진 것으로 보아 한때 꽤 헌칠한 집이었다. 행랑까지 거느렸으니 살림 또한 윤택했을 것이다. 종달새와 빗소리와 살강 위 귀또리 소리가 아이들 웃음소리와 뒹굴었겠으나…. 체온이 떠난 집엔 이제 제비조차 들지 않는다.
집은 혼과 백의 거소, 육신과 같다. 집과 사람은 함께 연명한다. 사람이 떠난 집의 몰골도 처연하지만, 육신의 객수는 오죽할까? 어쩌면 그 집, 십수 년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사력을 다해 집의 넋을 초혼하고 있었던 거다.
살아오는 동안 참으로 많은 집을 만났다. 한 칸 방이 곧 집일 때가 있었고 식구 수대로 방을 소유하기도 했다. 자를 재고 썬 듯 한결같이 곡선이 부재중인 집이었다. 집이 커질수록 식구들은 겉돌았다. 각자의 방에 찬밥처럼 담겨있는 날이 많았다. 한집에 머물되 함께 사는 게 아니었다.
옛집이 그리웠다. 천장과 마주하고 누우면 집의 골격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들보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가구재가 살짝 허리를 비틀었다. 부챗살 같은 서까래와 곱게 눈을 내리깐 처마선, 하늘 귀퉁이를 살짝 추킨 추녀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집은 곧 한 채의 물후物後. 여름엔 마루로, 겨울엔 아랫목으로 사람들을 불렀다. 집을 닮은 사람들이 두리반에 이마를 맞대고 경단 같은 말을 빚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더불어 사철을 살았다. 오로지 옛집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땅과 집은 서로를 만나면서 의미 있는 장소로 거듭난다. 대지야말로 한 칸 방, 한 채 집의 배아다. 그런 만큼 집은 자연의 순리를 따랐다. 산의 팔부능선쯤에 처마를 두었고 땅을 깎는 대신 축대를 쌓았으며 물의 본성을 따라 집안에 수로를 두기도 했다. 그런 집의 수명은 대개 길었다. 집과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며 백 년을 해로했다.
갓 개관한 한옥박물관에 들렀다. 건장한 인부들이 크레인과 합심해 한옥의 뼈대를 세우고 있었다. 마침 대들보를 올리는 중이었다. 도편수가 손짓하자 크레인이 사자후를 토하면서 대들보를 들어 올렸다. 아름드리나무가 공중에 가로획을 그으며 천천히 떠올랐다. 인부 둘이 호흡을 모아 들보를 내리쳤다. 망치를 받은 나무는 비명 대신 향기를 지르며 모로 누웠다. 보와 기둥이 마치 퍼즐처럼 들어맞았다.
수 세기, 하늘바라기로 살아온 나무가 아니던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여윈잠에 들어야 할지도 모를 일, 대들보의 보시에 맘이 짠했다. 그때 알았다. 왜 한집안의 가장이나 장손을 대량大樑에 비유하는지. 보가 없는 서양의 기둥을 아틀라스라 칭하는지. 대들보야말로 한옥의 알짬이었다.
보와 도리, 기둥의 끈끈한 결구結構를 보면 단란한 한 가정이 떠오른다. 모양도 크기도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대들보와 연대하며 이들은 하나로 응축된다. 불룩함은 우묵함으로, 모서리는 곡선으로 붙안는다. 지아비와 지어미가, 음과 양이 그러하듯 내밀하게. 형과 아우처럼 의좋게 서로를 보듬는다.
그 집이 한 채 집을 데려왔다. 백 살 가까이 삼대를 바라지 해준 나의 옛집이었다. 한때 장년의 아버지처럼 건장했으나 식구들이 떠난 뒤 집은 급격히 쇠락했다. 빼뚜름한 돌담과 버름한 마루, 휘우듬한 바람벽이 와병 중인 살붙이 같았다. 오래된 족보처럼 해진 집을 대들보가 사명처럼 건사하고 있었다.
자식들이 떠난 집에서 아버지가, 어머니가 저렇듯 불면을 앓았을 것이다. 찬 방에 체온이 깃들기를 열망하며 빈 고둥처럼 울다, 끝내 한 줌 재로 소신공양했을 것이다.
내객來客조차 끊겨 선득한 문고리에서 집의 외로움이 만져졌다. 달력의 붉은 숫자 같은 기억만 골라 찬 마음에 불을 넣었다. 뙤창을 넘어온 햇살이 웅크리고 누운 내게 와 등을 포갰다. 허기진 속이 아랫목에 묻어둔 밥처럼 따뜻해졌다. 바람벽에 덕지덕지 붙은 상장과 달력 속 동그라미, 집을 떠나던 날에 고정된 시침과 분침, 집은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 그릇 고봉밥 같은 추억의 힘이 빈집을 연명케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한 채 집의 기억을 갖고 산다. 할머니가 몸소 형제들의 태胎를 받은 집,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들 생의 연보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집. 늙고 낡아 더 정이 가는 집. 아이들이 우당탕 뛰놀고 저녁이면 숟가락 소리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들이 살아있는 집. 보와 기둥처럼 서로를 부둥켜안고 늙어갈 수 있다면, 웃자란 외로움을 비스듬히 기댈 수 있다면 생의 가을을 그곳에 부려도 좋으리라. 우리는 모두 돌아가기 위해 떠나왔으니. 오랜 객고 끝의 허기를 옛집만이 치유하리니.
그 집에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훅, 끼쳤다. 앞섶 가득 저문 들을 안고 오던 어머니의 체취 같은, 아버지가 부려놓은 한 짐 나뭇가리 같은, 오래된 우물 내 같은…. 오동나무 아래 약봉지처럼 낙엽이 수북했다. 흘러간 노래처럼 풍경이 흐느끼고, 바람벽에선 숭숭 황소바람이 울었다.
쇠잔한 빈집을 대들보가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돌아오겠다’던 약속의 힘으로 쓴 약 같은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달맞이꽃에 달빛 댕겨 불 넣어둔 채, 집은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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