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햇귀/박필우

에세이향기 2023. 6. 27. 02:45

햇귀

 

누구나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찬 언덕에 지푸라기 깔고 누워 하늘을 양껏 봅니다. 저 홀로 하늘을 향해 우뚝 버티고 선 미루나무가 고독합니다.

 

십여 년 넘게 다닌 직장을 달랑 A4용지 한 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배낭 하나, 오랫동안 비워둔 내 마음의 빚 스케치북까지 챙겨 가는 뒷길에 정류장까지 딸아이 손잡고 슬픈 눈으로 따라나서는 집사람에게 미안합니다. 알 듯 모를 듯 웃어 준다는 게 그만 슬픈 여운만 남기고 맙니다. 어디 갈 거냐고 묻는 아내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습니다. 문득 고향 마을이 떠올랐지만, 부모님은 물론 홀로 남은 형수마저 떠나버린 고향은 아득한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난 어디로 가야 할까?’ 터미널서 한참을 망설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해가 궁금합니다. 그래! 서해로 가자. 일몰이 있는 그곳, 내 서해를 그려 오리라. 황토빛 한이 서려 있다는 그 전라도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처투성이의 마음은 어딘들 마다할까. 마치 바람을 따르듯 산으로 절로 계곡으로 돌고 돌았습니다. 고개를 드니 문득 서쪽 바다를 입에 문 항구에 와있습니다. 낯선 곳의 설렘보다 긴장이 온몸을 감쌉니다. 어둠에 갇힌 이방인은 넓은 바다를 건너서 막 뭍으로 올라선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습니다. 바람은 항구가 몸부림치며 뱉어낸 비릿한 냄새와 섞여 생경한 이방인에게 서슬 퍼런 흉기로 변합니다.

 

어둠 속에서 온갖 번뇌에 뒤척이다 밤을 그렇게 났습니다. 어딜 가나 우리네 변함없는 군상. -안개 땜시 뱃질이 연착이랑께~.- 생소한 남도 사투리 속에 섞였지만, 아침의 기운을 빌어서 더 이상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안개는 조금 옅어졌지만 여전합니다. 항구도 나처럼 용기를 냅니다. 다행히 물결은 잠에서 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짙은 안개 속을 조심스럽게 달리며 가끔 뱃고동을 울립니다. 세상에 갇혀 나란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생면부지 섬 자은도에 도착했습니다. 소나무 빽빽이 우거진 섬, 밀물과 썰물이 어김없이 지는 곳, 곱디고운 모래는 인고의 세월 동안 바닷물에 힘주어 걸어도 굳은 가슴인 양 발자국이 생기지 않습니다. 침묵에 침전된 그리운 바다가 눈앞에 펼쳐있습니다. 군데군데 떠 있는 섬. 엷게 깔린 물안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그 의미를 잃은 지 오랩니다. 찰랑대는 물소리는 노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화음을 이루고 사라집니다. 인적도 발자국도 없는 모래사장,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은 바다는 침묵으로 짓누릅니다. 시나브로 안개가 걷히자 붉게 타들어 가는 황혼의 노을이 서럽습니다.

 

자발적 유배객이 되어 작은 섬, 외딴집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마법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잘 빗질 된 마당이 가슴을 쓸어줍니다. 마당 가운데 짧은 다리의 살평상은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으라며 배를 펴 권합니다. 담장을 대신한 국화가 햇살을 머금어 바람을 받아 인사하고, 만고풍상을 견뎌낸 용트림의 소나무는 가지를 늘어트려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나는 어린 시절 고향 집 품으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젖은 눈길이 내 어머니를 똑 닮았습니다. 등을 토닥이는 감촉에서 내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앞니 두 개가 없어도 할아버지의 생소한 사투리가 정겹기만 합니다. 할머니가 거친 손으로 주물럭대며 만들어 주신 반찬은 여린 기억 속 어머니가 해주던 딱 그 맛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었다 싶으면 살며시 문을 열고 잠든 나를 확인하던 어머니도, 아침을 먹고 바다를 찾을 때 멀리서 지켜보는 걱정 어린 아버지의 시선도 어쩜 그리 똑같을까요. 문득 내 가슴에 얽혀있는 절망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삼 일째, 뒤숭숭한 꿈자리 끝에 맞이한 스산한 어둑새벽. 찬바람머리 나그네는 단잠을 깨울까 조용조용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팍팍한 도시의 잣대로 환산해야 한다는 것에 갈등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사례는 해야 했습니다. 준비한 봉투를 이불 아래 끼워놓는 것으로 마음을 숨겼습니다. 세상 여느 어머니처럼 타향으로 떠나는 아들을 위해 아침상을 차려 놓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힘들어도 참고 살아야제 잉~.”

 

부모의 마음이 되면 아무리 깊이 감춰둔 상처라도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밥상 앞에서 들려준 아버지 말씀이었습니다. 잘 도착했노라 전화부터 하라는 늙은 아버지의 간곡함이 젊음을 부끄럽게 합니다. 할아버지 손에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목적을 잃은 봉투가 들려 있습니다. 꼬깃꼬깃 접힌 지폐 두 장을 함께 밀어 넣어줍니다. 얼굴은 화로에 덴 것 같이 화끈거립니다. 주름진 얼굴, 그 가운데 피어나는 잔잔한 미소는 석양의 낙조를 바라보는 것처럼 황홀했습니다. 배낭을 멘 채 마당에 넙죽 엎드려 큰절로 인사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론 처음입니다.

 

기이한 인연으로 불쑥 나타나 번잡하게 만들다 문득 공허한 외로움만 가득 안겨 준 꼴이었습니다. 무던했던 삶에 파문만 일으킨 것은 아닐까? 돌아서는 발길, 등 뒤에서 무엇이 툭 칩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 노을 같은 햇귀였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피워내는 붉은 기운이 집안에 넘쳤습니다. 기왓골 사이, 방문 사이로, 굴뚝 덮게 위로도 아름답게 퍼져 있었습니다. 아들을 거친 세상으로 보내는 노부부의 흰 머리와 주름진 얼굴 골골에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에게서 까마득한 부모님 사랑을 받았습니다. 노부부는 내 상처를 어루만져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게 한 훌륭한 연주자였답니다. 차고 쓴 세상을 견디게 하는 연민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주었으며, 그분들의 따뜻한 접촉은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깜박하고 두고 온 스케치북이 나를 대신하고 있을 거라 위로합니다.

 

내 앞에 짙게 깔린 운무가 거치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이제, 내 삶은 그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살마저도 내 몸에 보약처럼 스며듭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청명淸明인가 봅니다.(1999)

 

 

ㅡ꿈을 응원하다

 

2월의 어둑새벽, 하늘에 별들이 바들바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때마침 뒷마당에 수탉이 홰를 치며 별을 향해 어서 하늘에서 사라지라며 재촉했다. 멀리서 장단을 맞춘 화답이 하늘에 메아리쳤다. 별은 태양 빛을 빌어 시나브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부스스한 새벽어둠을 뚫고 나선 길, 어머니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 자전거에 발을 맞춰 걸었다. 온전히 잠을 떨치지 못한 모자母子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목에 감긴 목도리를 풀어서 내게 감싸주려 했다. 나는 머리를 살짝 틀어 피했다. 겨울만 되면 손가락 끝이 갈라져 연고를 바르는 어머니, 그 모습을 보면 늘 가슴 아팠다.

 

어머니는 읍내 상설시장 난전에서 채소 벌이를 했다. 시골 장날을 찾아 채소 장사를 떠나던 그 날도 어머니 손끝은 성한 곳이 없었다. 나는 전날 미리 싸놓은 보따리를 풀고 어머니 요구대로 채소가 다치지 않게 차곡차곡 더 담았다. 이마에 새벽바람을 이겨낸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왔다. 보따리를 자전거 뒤에 싣고 단단히 묶었다. 굵고 둥근 쇠막대를 앞 동태와 손잡이에 덧댄 짐바리 자전거마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로 넘어갈 기세였다.

 

털털거리는 시골행 버스에 보따리를 실어놓고 돌아오는 길. 신문이 없는 월요일이라 몸도 마음도 새털처럼 가벼웠다. 자전거도 신이 난 듯, 내가 아니라 자전거가 달렸다. 한천 다리를 건너 남산 밑을 지나고, 냉기 감도는 저수지를 지났다. 아버지 심부름 다녀올 때 보던, 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오층석탑을 뒤로한 후 철길 옆으로 난 작은 둑을 따라 달렸다. 그때였다. 석탄을 실은 열차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검은 무쇠 덩어리는 빚쟁이들이 집으로 들이닥치는 듯했다. 도망치듯 달렸다. 자전거가 빠를 수는 없었다. 내 옆으로 지나칠 땐 “꽤~~액!” 하고 더 길게 굉음을 울렸다. 오늘은 봐준다는 소리로 들렸다. 오기가 생겼다. 열차를 따라잡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철교 난간에 막혀 버렸다. 약 올리며 사라지는 열차 꽁무니만 바라보다 가물가물해질 즈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방금 본 잔상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호기롭게 두 손도 놓아버렸다. 순간 몸뚱이가 허공을 날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새벽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고, 산비탈에 하얀 건물의 내가 다니는 학교가 보였다. 살얼음 낀 실개천에 자전거와 함께 처박았다. 이상했다. 참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감았다. 바짓가랑이가 축축이 젖어 들었다. 무르팍이 까졌나 보다. 오른쪽 눈가에 끈끈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문질러보았다. 피였다! 눈 옆 깊게 팬 상처에서 아침 태양 빛이 스며든 붉은 피가 퐁퐁 솟아났다. 내의를 찢어 상처 부위에 눌렀다. 긴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며 옆으로 지나갔다. 벼가 뎅강 잘려 나간 논바닥에선 파릇한 새순이 돋고 있었다.

 

자전거를 찾았다. 자전거 앞 발통의 굵고 둥근 무쇠가 굽어 있다. 절룩거리며 한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 눈자위를 누른 채 걸었다. 타원으로 꾸불꾸불 굴러가는 자전거 앞바퀴를 보자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자전거가 날 놀리는 것 같았다. 신작로가 가까워졌다. 버스 한 대가 탈탈거리며 앞쪽으로 다가왔다. 젠장! P면으로 가는 버스였다. 버스가 옆을 지날 때 보았다. 두 손을 창에 댄 채 금방이라도 차에서 뛰어 내릴 것 같은 어머니를…. 버스는 어머니 놀란 표정만 남겨둔 채 그렇게 가버렸다.

 

밤부터 비가 내렸다. 잠결에 듣는 빗소리는 더 깊은 잠으로 몰아갔다. 어머니는 비 핑계 삼아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잠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먼데 산사에서 범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새벽이면 집을 깨우는 아버지였다. 고저 단장 없이 반복되는 아버지 목소리를 견딘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끈기가 필요했다. 우산까지 받쳐 든 아버지는 그날따라 더 집요했다.

 

새벽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추적추적 무겁게 비가 내리고 있어 여명은 안간힘으로 버티는 어둠을 밀어내지 못했다. 자전거 안장에 빗물이 축축이 고여 있었다. 대청에 놓인 걸레로 대충 문질렀다. 힘차게 페달을 밟자 가랑이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었다. 그제야 사랑방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한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든 채 용케 골목을 빠져나왔다. 축축하게 젖은 신작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바닥이 빛을 내고 있었다. 어둠이 먹어 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산을 자전거 앞에 끼웠다. 지난 날 실개천에 처박은 후로 간혹 눈을 감고 달리는 버릇이 생겼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상쾌했다. 벌써 오월인가? 빗물이 볼을 타고 입으로 흘러들었다. 목을 지나 가슴을 타고 배로 기어들어갔다. 뱀이 몸을 감고 내려가는 기분에 파르르 소름이 돋았다.

 

비 오는 날의 신문배달은 고역이었다. 신문이 비에 젖지 않게 비닐로 덧씌워야 했고, 신문을 던질 때에도 빗물이 없는 곳에다 정확히 해야 했으며, 시간 역시 두 배로 걸렸다. 그렇게 칠십여 곳을 돌고 나면 배는 허기가 졌다. 하지만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허겁지겁 학교에 가야 했다. 그나마 나의 애마, 튼튼한 자전거가 있어서 지각은 면할 수 있었다.

 

골목 한 구비 돌자 문득 라일락 향기가 유혹했다. 담장 너머 핀 보라색 꽃가지를 꺾어 장독대 항아리 뚜껑에 꽂아 두었다. 식구 누구도 출처를 묻지 않았다. 그 뒤로 내 꽃서리는 멈추지 않았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선 채 까치발로 넝쿨 장미를 꺾다가 가시에 찔려 자전거와 함께 나자빠졌다. 요란한 소리에 우람한 남자가 뛰쳐나왔다. 귀싸대기 한 대 제대로 얻어걸렸다.

 

그러나 새벽이면 의식을 치르는 어머니를 위해 꽃 서리를 멈추지 않았다. 정화수 떠 놓고 빌던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을 꽃가지가 응원하고 있었다. 절박함 속에 새싹 같은 희망이었다. 어머니 가슴을 짓밟고 도시의 하이에나가 되어 방황하는 큰형을 위한 기도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2016)

 

 

ㅡ나목裸木, 그 이후

 

옛 마을엔 이야기 한 개쯤 전해져 내려오기 마련이다. 전설은 시간의 강을 건너고, 공간이라는 벽을 넘어 전해온다. 오랜 이야기와 함께 원시적인 질서로 꼬리에 꼬리를 문 자그마한 산마을 풍경은 무던한 가슴을 속절없이 흔든다. 그러나 더 깊고, 더 지독한 고독을 선택한 삶에는 우리가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자연의 힘이 작용했으리라.

 

자발적 유배자가 되어 끝끝내 홀로서기를 고집한 오지와의 인연이 달갑다. 저기 먼 숲속에서 고개를 쏙 내민 굴뚝이 반기면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려 걷기를 즐긴다. 난데로 떠돌다 주춤주춤 고향으로 향하는 탕아의 발걸음을 닮은 에움길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간에게 허락한 마지막 배려 같다. 길에서 만난 근원을 알 길 없는 고목의 용트림에 덧없이 짧은 인생은 시간조차 그 의미를 잃게 했다. 숲은 햇살에 짙푸르고, 공기는 더 달게 느껴졌다. 등굽잇길을 에두르자 세상 구경에 들뜬 연생이 고라니가 폴짝폴짝 엉덩이의 잔상만을 남긴 채 숲으로 사라진다. 자연의 세상에 살짝 발을 담그는 순간 환영 인사치고 제법이다.

 

숲에 반쯤 몸을 숨긴 처가에 도착하자 그간의 감성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태풍에 나무가 뽑혀 넘어졌는데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는 장모의 압력이 인사를 대신했다. 땔감으로 잘라오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의 메밀눈이 결정적이었다. 모처럼 가슴은 비장감으로 충만했다. 전동 체인톱과 손바닥에 꼭 잡히는 톱까지 챙겨 잡목 우거진 자드락길을 올랐다. 눈발에 힘이 들어가자 전장으로 향하는 장수의 마음이 이럴까 싶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굵은 은사시나무를 마주하면서 비장감은커녕 기선마저 제압당하고 말았다. 한 아름으로도 한참 부족한 굵기의 은사시를 넘어뜨릴 바람이라니? 새삼 자연의 경이로운 힘을 느꼈다. 둔덕이 무너지자 뿌리가 드러나면서 부실하게 지탱했던 탓일 거다. 문득 은사시 나이테의 다탁茶卓이 떠올랐다.

 

제가 굵어 봐야 뿌리 뽑힌 나무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풋내기 나무꾼의 터수 없는 솜씨가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어깨와 손목이 움직이지 않게 힘을 주었다. 머릿속에 그려낸 찻상에 어울리게 밑둥치를 대각선으로 공략했다. ‘빠바바방!’ 순식간에 기계음이 숲의 고요를 깨웠다. 전동 체인 톱날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계곡에 울리고 산허리에 퍼졌다. 이방인이 궁금해 나뭇가지에 앉아 멀뚱거리던 까마귀 한 마리가 괴기한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손목이 덜덜 떨리는 것도 반 정도까지였다. 가슴을 파고드는 외마디 비명, 은사시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던 날에 이어 태어나서 두 번째일 것이다. 아뿔싸! 잘려가던 은사시가 몸을 비틀어 전동 톱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최후의 반항, 감히 너 같이 인생을 무턱대고 살아가는 유의 인간에게 쉬이 당할 내가 아니란 듯 감사납기 짝이 없다.

 

무릇 삶이란 그런 것,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닥치면 원인 파악이 가장 먼저다. 반대쪽 상황을 살피기 위해 오른쪽 다리를 들어 나무에 걸친 후 등걸에 올라탔다. 가랑이로 몸을 지탱하면서 왼쪽 다리를 올리는 순간이었다. 안쪽 발목을 할퀴는 통증을 느꼈다. 부러진 삭정이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했다. 공룡 발톱에 긁힌 듯 붉은 사선 셋, 거칠게 난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눈으로 상처를 확인하자 더 아려왔다. 발버둥 치며 힘겹게 반대편으로 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별다른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참 하찮기 짝이 없는 존재란 느낌이 들어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도 그럴 수 없었다. 언제 따라온 아들아이의 눈이 세상의 시선이 되어 짓눌렀다. 애써 어깨와 눈에 힘을 주고 얼굴을 돌렸다.

 

강공이 통하지 않으면 남은 수는 애면글면 달래는 것밖에 없었다. 비탈로 내려가 쓰러진 나무를 살폈다. 두 뼘으로도 부족할 곁가지가 땅에 박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계산속 머리 회전이 빨랐다. 작업환경을 위해 주위 잔가지 몇몇을 수동 톱으로 솎아냈다. 충분하다 싶었을 때 곁가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지구 중력에 의해 밑둥치 틈이 벌어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톱밥이 흩어졌다. 이마에 비지땀이 흐르고, 숨이 턱밑에 차올랐다. 잠시 쉬기 위해 손목에 힘을 푸는 순간 나뭇가지는 톱을 문 채 입을 다물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기에 들어간 가지는 마치 ‘배냇냄새 나는 놈이!’라고 하는 듯했다. 결국 얕봤던 곁가지에 수동 톱마저 당했다. 감시 차 올라온 볼만장만 아내의 시선을 느꼈다. 누가 봐도 상황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표정을 남기고 내려갔다. 이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원병을 기다려야 했다. 은사시나무는 두 종류의 톱을 문 채 나뭇잎을 흔들며 히들히들 나를 비웃고 있었다.

 

삶에는 켜켜이 두른 나이테만큼 경험이 중요했다.

 

자연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몇 마장 떨어진 마을에 내려가 전동 톱을 빌린 장인이 올라왔다. 장인의 얼굴은 해가 지고 어둠에 침식당해가는 석양같이 검붉었다. 멀뚱하게 서 있는 무기력한 사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장인이 전동 톱 시동을 걸자 굉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장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V’자로 홈을 만들어 자르기 시작했다. 우아한 다탁의 멋과 다도茶道의 허영은 대번에 사라졌다. 죄인이 된 듯 옆에서 물고 늘어진 톱날을 잡았다. 기름이 타면서 내는 연기와 냄새, 얼굴로 향하는 톱밥의 파편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늘 그래왔듯 어차피 세상은 견디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은사시의 마지막 반항은 거기까지였다.

 

땔감에 맞게 적당한 크기로 잘려 나가는 은사시는 사회의 짜인 틀에서 튕겨 나와 야만의 상태로 퇴보를 거듭하는 나를 닮았다. 다른 나무들은 온전하게 뿌리를 내렸건만, 너는 어이하여 자연에서 기반을 잃어버린 채 속을 드러내는 치욕을 당하는지, 한 줌 바람에도 은빛 이파리 흔들어 세상에 존재를 자랑했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자기연민의 순간 동병상련의 마음이런가, 동강동강 잘려 나간 은사시를 향한 측은지심이 일어났다. 양지바른 담장에 줄지어 세워놓고 잠시 쉬기 위해 그 위에 앉았다. 더 희망도 없는, 꺼져가는 생명의 띠가 되어 어울렸다. 토막 난 은사시는 남은 물기마저 빠져나가자 다시 갈라지고 쪼개지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몸에 불이 붙어 마지막 온기를 세상에 전하고 몇 삽 재가 되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은사시의 사연은 빛바랜 전설이 되었다. 벌거숭이 나무들이 북풍을 견디자 해가 바뀌고 봄이 왔다. 나이테의 다탁은커녕 지난 일은 세월에 유린당해 까마득히 잊혔다. 그리 슬플 것도, 별나게 신나는 일도 없는 무덤덤한 일상에 인이 배여 갈 무렵이었다. 처가에 들렸을 때 기력이 다한 것 같았던 옛날의 꿈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흐르는 물가에 무심코 꽂아둔 팔뚝만 한 곁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생명의 신비로움을 찬양하고 있었다. 은사시의 영혼이 깃든 듯 비장함을 노래했다. 자연의 회생본능을 얕보지 말라고 강건했다. 마치 너 따위가 쉬이 단죄할 생명이 아니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삶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며 얼핏 설핏 살아온 내 그간의 과정을 질타하고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무료한 삶, 마냥 지쳐가는 날에 파릇파릇한 희망의 새싹이 가슴에 돋아나고 있었다. 파란 하늘은 은사시의 꿈을 받아줄 창공을 훤하게 열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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