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좋은 수필

헛 / 조인혜

에세이향기 2023. 11. 27. 14:48

헛 / 조인혜

 
 

 

언어는 관계 속에서 순환되고 해석된다. 단어 하나로 사람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할 수도 있고 나락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 눈동자 바로 앞에 뾰족한 무언가 세워져 있는 것처럼 온몸에 신경의 날을 세울 때도 있다. 때로는 늘어난 고무줄처럼 느슨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언어가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모양이 변하고 온도가 바뀐다. 심지어 권력이 생기고 위계가 정해지기도 한다.

 

봄볕처럼 따뜻하고 이불 속처럼 편안한 단어들이 있다.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잘될 거야' '좋아질 거야' 등이다. 미로같이 풀리지 않는 문제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닥칠 때 '괜찮아' 한마디를 들으면 불편했던 감정들이 순식간 녹아든다. 어깨 토닥거려주는 행동보다 말이 가지는 온기가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이다.

 

감정의 변화도 사용하는 언어에 금방 나타난다. 사람들이 쓰는 '우리'라는 단어는 가족으로서 연인으로서 정체성을 언급할 때 사용한다. 감정의 골이 생기거나 사이가 불편해지면 '우리'는 사라지고 '나'와 '너'로 중심 이동이 이루어진다. 언어의 무게 중심이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한 단어가 복잡한 설명을 짊어지기도 한다. 치대기, 세탁하기, 널기, 개비기, 옷장에 넣기 등 다양한 과정을 ‘빨래’가 대변한다. 여러 과정의 동사는 쏙 빠지고 '빨래'라는 명사 하나에 전 과정이 담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이 큰 단어인 셈이다.

 

'이유 없는, 보람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헛'이라는 글자가 있다. '헛하다'의 어근이다. 반듯하고 튼실한 뜻을 가진 단어도 이 한 글자가 더해지면 볼품없고 빈약하다는 의미로 전락한다. 헛장사, 헛방, 헛팔매질, 헛깨비, 헛점, 헛걸음, 헛세월, 헛수작. 헛고생··· 헛이 붙은 단어를 나열하면 끝이 없다.

 

씨름판의 들배지기 기술처럼 멀쩡한 뜻을 가진 단어를 보기 좋게 엎어치기 해서 힘을 빼놓는다. 참되지 못한 의미의 '헛'에 당한 단어들이 그냥 속절없이 기죽을 수만 없어 다시 일어선다. 이 얼마나 씩씩하고 용감한 도전인가. '헛'이란 놈은 묘한 희망을 준다. 그래서 '헛'이란 접두어가 생명과 관련되기도 한다.

 

여자의 임신 여부는 정확한 검사를 통해서 알게 되지만, 헛구역질을 통해서 미리 눈치챈다. 헛구역질은 소중한 생명의 잉태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임산부를 보호받게 하는 신이 내린 신호로 여겨진다. 엄마 배 속의 아기는 어떤가. 밤이고 낮이고 헛발질을 해 자신의 건강한 몸 상태를 전한다. 수없는 헛발질을 통해 아기는 자라고, 헛구역질하는 엄마와 친숙한 교감까지 이루어낸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헛'이라는 단어가 가장 고귀한 생명을 잉태하고 지켜낸다. 태초의 소통으로 이어지는 몸 말인 헛구역질, 헛발질, 이 얼마나 숭고한가.

 

옛날 농가에는 헛간이 있다. 안채에서 조금 떨어지거나, 대문 가까운 곳에 있다. 한 면은 벽 없이 트인 허름하게 지어진 집이다. 변소가 달려있기도 하고 각종 농기구, 거름, 재,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곳은 주인도 드나들지만, 용무가 급한 이웃이 볼일을 봐도 무방하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주인의 허락 없이 빌려다 사용해도 된다. 이곳은 이런저런 격식을 생략한 곳이다. 넉넉한 인심을 채워 놓은 바깥채가 헛간이다.

 

꽃에도 헛꽃이 있다. 자드락길에서 만나는 산수국의 황홀경에 눈길을 빼앗겨 본 사람은 안다. 여러 장의 헛꽃잎이 유혹하는 자태가 얼마나 고혹적인지. 산수국은 헛꽃을 내세워 작디작은 진짜 꽃에 곤충이 찾아 들게 한다. 스스로는 열매조차 맺지 못하지만, 헛꽃이 벌 나비를 유인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참꽃이 수정하여 열매를 맺게 된다. 누가 헛꽃을 꽃이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추운 겨울이 와도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말라 비틀어 시들은 자태에서 의연한 절개마저 느낀다. 헛꽃이라 헛것이 아니다.

 

결혼 초에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우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 십 년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그 일마저 놓았다. 바쁜 와중이었지만 이십여 년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 다시 전문직으로 돌아가려니 십 년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의료 현장의 변화는 더 급격했다. 386시대의 구닥다리 지식으로 최첨단 시대 현장에 끼어들려니 두려움도 앞섰다. 미립만으로는 비비고 들어갈 곳이 없었다. 젊고 유능한 전공자들이 배출되고 취업 현장의 경쟁은 바늘구멍처럼 어려웠다.

 

이력서를 썼다. 여러 번 망설였다. 이력서 끝에 봉사활동 기록을 넣었다. 면접관의 관심이 내게 집중되었다. "이렇게 오래 봉사활동을 하다니 선생님은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그동안의 헛수고가 찐 수고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 줄의 '헛수고' 기록이 면접관에겐 '헛방'이 아니라 '진짜 이력'으로 인정받아 취업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는다. 그렇게 들어간 직장에서 퇴직 나이가 지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헛수고는 없다. 헛수고 그것도 수고이다.

 

봄이면 눈길이 자연스럽게 수국에 꽂힌다. 수형이 건사한 바위수국을 샀다. 은은한 향기를 품고 헛꽃이 달린 연분홍 색감이 매혹적이다. 눈길을 딴 곳으로 돌릴 수 없게 하는 헛꽃이 '헛'이라는 이름을 달아 더욱 애틋하다.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무엇을 위해 헛꽃을 피우고 있을까 싶다. 헛꽃을 수없이 피우다 보면 내 안의 참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지.

 

글 한 편 쓰기 위해 참글인 양 헛글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헛헛한 글이 찐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오늘도 한 송이 헛꽃을 피웠다. '헛'이라는 다리를 건너 '참나' '참 글쓰기'에 언제쯤 도착할까.

 

'헛'이라는 글자를 씨간장처럼 귀하고 소중히 다루고 싶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옹이, 그 아픔을 읽다/허석  (1) 2023.11.29
주춧돌과 기둥 / 변해명  (1) 2023.11.29
허물 / 정재순  (3) 2023.11.25
두레박/황영선  (1) 2023.11.24
풍락초 / 조현숙  (3) 2023.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