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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그 아픔을 읽다/허석

에세이향기 2023. 11. 29. 03:09

옹이, 그 아픔을 읽다

허석

한옥이 멋스러운 전통찻집에 갔다. 방으로 안내되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는데 다탁이 원목이었다. 넓고 묵직해 보이는 탁자 면에 물결치듯 부드럽게 뻗어나간 목리가 나무의 성정처럼 기품있고 웅숭깊다. 그런데 가장자리 쪽에 갑자기 회오리치듯 시커먼 옹이 무늬가 드러나고 표면이 우둘투둘 파인 곳이 있었다. 

 

설핏, 옥에 티처럼 느껴졌다. 그때 ‘결만 있으면 상품인데 옹이가 있어서 작품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생각을 바꾸니 옹이로 인해 생긴 기하학적인, 비정형적인 나뭇결이 오히려 신선한 자연미로 다가왔다.

 

옹이는 나무의 몸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이다. 나무는 자라면서 곁가지가 생기게 마련이다. 나무가 지속적인 부피 생장을 하면서 함께 자란 곁가지도 심지를 박고 파묻혀 자라게 된다. 옹이는 그 흔적이다. 사람처럼 나무도 겉으로만 봐서는 옹이의 존재를 알 수가 없다. 단면을 잘라보아야 속에 벌레가 먹었거나, 썩어서 비었거나, 화석 같은 자유분방한 무늬가 박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목재로서는 흉터이고 흠집인 셈이다.

 

나무에 박힌 옹이는 무쇠처럼 단단하다. 장작을 팰 때도 옹이에 도끼날이 박히면 나무가 갈라지기는커녕 도끼가 물려 쉽사리 빠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쓰임새는 많다. 주택의 대들보나 기둥에는 일부러 옹이가 많은 목재를 사용한다. 옹이의 단단함으로 나무의 갈라짐과 뒤틀림 현상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가 없다는 것이 새삼 맞는 말인 것 같다.

 

옹이는 자신의 분신을 지켜내기 위한 아픔의 상처이다. 그 아픔이 얼마나 깊었기에 고통의 응어리가 단단하게 굳어져 옹이로 나타났을까. 말 못 하는 나무라고 살아온 내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번개가 내리칠 때도 있고, 혹한과 가뭄에 몸져누웠을 때도 있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알아주는 이 없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은 우리네 인생사와 다를 바가 없다. 그 노력과 수고만으로도 그 나무의, 그 사람의 생애는 축복과 감동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것이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앞서는 것이 인생이었다. 먹과녁 같은 초행길 가듯 한 푼의 뒷바라지도 없이 오직 혼자 힘으로 감내해야 했던 여정도 있었고, 배고픔의 설움과 밥벌이의 수모를 겪어가며 손 마디마디에 옹이처럼 굳은살이 수없이 박이는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돈 때문에,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 말 때문에 가족이 분란하고, 우정이 소원하고, 인연을 외면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마다 그들의 삶에 무수한 사연과 곡절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될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가장 아프다. 사람의 기억은 꼭 좋은 것만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자존심이 상하고 생채기를 당한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전의 일인데도 상대방이 서운한 감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상처를 준 사람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마음속에 옹이가 되어 아픔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 법이다. 

 

누구의 삶에도 암호 같은, 눈물 같은 옹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다들 감추고 살 뿐이지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굴레를 안고 다투기도 하는 삶이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삶의 열정이 될 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되는가는 나에게 달린 일이다. 나무가 아픈 가시를 삭여 단단한 원형질로 변모하듯이 사람도 슬기롭게 옹이를 품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아름다움이란 말은 ‘앓음다움’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프고 아픈 후에 얻어진 영광이라면 아름다운 상처가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고통을 잘 견디는 영혼은 없다. 고통이나 상처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 볼 용기만 있다면 지혜로운 삶의 안내자가 될 수가 있다. 

 

상처 난 조개에서 아름다운 진주가 나온다. 가장 진한 나무의 향은 정작 옹이에서 배어 나오듯 사람의 향기도 그런 아픔의 극복 과정에서 가장 아름다워지는지도 모른다. 흠집 같은 옹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선물이고 훈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흉터만 바라보고 원망만 하고 있었다면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해 미래를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쓰레기더미에서도 꽃을 피우는데 상처 난 옹이라고 꿈꿀 수 있는 권리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연습하는 자와 저축하는 자는 절대 인생에 지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살려고 하는 절실함이 흐르고 벼랑 끝에서 희망을 향해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옹이의 힘이었다. 옹이의 단단함은 그런 응축과 인고의 세월을 겪어낸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근처 오래된 숲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오솔길 옆에 나무 한 그루가 몸피 한가운데 커다란 옹이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하지만 우물처럼 깊게 파인 그 큰 상처를 가지고도 수많은 푸른 잎을 피워낸 우람한 나무로 자라고 있었다. 더구나 그 상처마저도 누군가에게는 둥지로, 비바람을 피하는 처마로 공양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처음부터 옹이는 나무의 꽃이고 사리가 아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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