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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 오르다 - 조옥엽

에세이향기 2024. 3. 1. 11:45

튀어 오르다 - 조옥엽

박새 떼 날아오르는 탱자나무 사이사이로 올라오는 양지 꽃잎 숨소리 엎질러진 샛길 따라가다 보면

하눌타리 서너 줄기 무너져가는 돌담 양어깨로 들어 올리다 지쳐 쓰러진 담장에 억지 걸음을 내디딘 양철판과 헌 문짝들, 함박눈 뒤집어쓴 대나무처럼 비틀거리며 오두막을 감싸고 있다 자신을 품어 줄 땅을 향해 경배하고 있는 지붕과 기둥과 마루와 방문과 주인 노파, 시간은 집과 주인의 마음을 한 물결로 흐르게 하느라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쪼아댔을까 눈매도 앞태도 뒤태도 옆태도 모두 닮았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걸린 샤쓰 하나, 오래된 바램처럼 나부끼고 봄볕에 몸을 맡긴 고양이 한 마리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염불하듯 두 발 앞으로 모은다 살구 꽃잎들이 우르르 떼지어 몰려다니다 오개오개 구석에 모여 있는 해거름, 앞집 울 안 동백의 붉은 입술에 혹한 복숭아나무 가닥가닥 팔다리 비틀어 꼬는 마당가 언제 달려왔는지 제비꽃들 제들 봐 제들 좀 봐

쿡쿡쿡 보랏빛 웃음 연방 터트리는 업동 마을 오두막집, 두꺼비도 아기 업고 지나가다 힐끗힐끗 한눈 팔며 연신 두 눈 끔벅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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