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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청자 사발 / 이언주(은영)

에세이향기 2024. 5. 6. 02:25

 

청자 사발   /    이언주(은영)  



 

  내 책상 위에는 청자사발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와는 오래된 친구 사이다. 긴 시간을 찻장에서 무심히 얹혀 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눈길만 마주치면 이 그릇이 무슨 말인가를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내 책상 위로 옮겨 앉았다.
  중국 윈난성(雲南城)에 있는 진샤강(金沙江) 상류를 여행할 때 일이다.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기는 하지만, 워낙 오지여서 하루 종일 기다려야 여행객 한 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곳이다. 그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강가에 남루한 사내가 지나가는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보자기를 펼쳐놓고 그 위에다 쇠뼈에 조각된 불경과 오래된 나시족의 장신구며 생활에 쓰이던 잡다한 도구들을 늘어놓았다. 우리를 본 사내는 얼마 만에 지나가는 사람을 만났던지 ‘임자 만났다’ 는 듯 거의 필사적 이었다.
  그 중에서 사발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사내는 나의 심중을 미리 꿰뚫었는지 발아래 있던 청자 사발 하나를 들어 내밀었다. 골동품으로 보이기 위해 한동안 땅에다 파묻어 놓았던 티가 역역한 사발 이었다. 집에서 쓰던 사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그것을 자신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캐낸 오래된 골동품이라고 몇 번이나 거듭 강조를 했다. 아직 흙이 그대로 묻은 그릇 밑면에는 명대(明代)에 제작 되었다는 글씨가 선명하게 씌어 있었다. 사내는 조상의 유물을 단돈 천원에 파는 무지한이거나, 어설프면서도 영악한 장사꾼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 속에는 오랜 기다림으로 지쳐버린 그늘이 길게 드리어져 있었다. 주위에는 티벳과 샹그릴라로 향하는 장벽 같은 숨 막히는 산이 하늘에 맞닿아 둘러쳐져 있고, 누런 흙탕물의 강이 넘실대고 흐르고 있었다. 거친 손은 고단한 생활을 읽고도 남았다. 설령 오늘 그릇을 팔고 그 돈으로 새 그릇을 사다 밭에 다시 묻는다 해도, 나는 그 손에 들려진 두껍고 무거운 사발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말끔히 그릇을 닦자 헛웃음이 났다. 차를 마실 때 찻물을 식히는 사발로 쓰려 산 그릇에서는 도공의 오래된 숨결이 느껴지기는커녕, 시골 밥상에서 밥이나 국을 받아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유열을 만드는 무슨 공법이 있었는지 작은 벌집 같은 잔금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릇 안의 무늬를 찍었던 염료도 번져 있다. 몇 번이고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물 사발로 쓰기에는 왠지 마음 한 구석에 개운치 못했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도 그렇고 하는 수 없이 찻장에 올려 두기로 했다.
  물 사발인 숙우(熟盂)란 차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끓는 물을 부어 한 김 식히는 그릇이다. 숙(熟)이라는 글자는 무르익히다, 혹은 정련(精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숙우는 막 끓은 물의 뜨거운 숨을 가다듬어 물의 깊이를 더하는 그릇이어야 한다. 그런데 물 사발의 행색이 어설프게, 설익은 밥을 한 입 물고 있는 듯하다. 이미 그 그릇의 근본을 눈치 채고 샀으면서도 그릇을 판 사내에 대한 측은함은 사라지고 괘씸한 마음이 자꾸 일었다.
  그동안 몇 번의 이사를 거쳤지만 청자사발은 세월의 먼지를 쓰고 거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여다보니 뚱하니 앉아 있는 모양새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나보다 먼저 사발을 사용했던 두메산골의 노부부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허투루 쓰기엔 너무 소중한 그릇이었을 것이다. 정갈하게 닦아 놓았다가 손님이 오면, 없는 살림에 소박한 찬이 담겨 상위에 올랐을 것이다. 어쩌면 갓 신접살림을 차린 딸의 혼수품으로 장만했던 그릇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그릇인들 이국 만리타향에서 이런 홀대를 받을 줄이야 꿈엔들 알았을까. 세월의 먼지를 쓰고 무심의 도를 터득하고 앉아 있다 해도 그를 아끼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어찌 사무치지는 않았을까.
  말없이 놓여 있는 사발을 처음엔 흘겨보다가 무덤덤하게 쳐다보게 되고, 있는 듯 없는 듯 눈길을 둔지가 십 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세월은 시간만 흐르는 것이 아닌가 보다. 오래된 친구가 종지면 어떻고 사발이면 어떠한가. 책상위에 놓여있는 그릇의 투박한 앉음새에 두루뭉수리한 선이 편안하다. 그저 손끝에 없으면 아쉽고, 보이지 않으면 찾게 된다.
  인연이란 전생에서 천년에 한 번 떨어지는 빗방울이 삼천 번 같은 바위에 떨어져야 금생에 잠깐 옷자락이 스친다고 했다. 수 천 킬로의 먼 시공을 날아와 매일 마주 하는 이 인연의 끈은 또한 어떤 것일까. 눌러 앉아 있는 사발의 모양새가 오래된 친구라기보다는, 소박데기 새댁이 기다림으로 하 세월을 보내며 맞이한 반백의 해로 같기도 하다. 


                                          
 -  『에세이스트』2008.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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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국시 /  이언주(은영)




                                                                                                                         
  배가 들어오자 포구 선술집이 시끄럽다. ‘까꾸네’ 집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빈자리에 의자만 끌어와 앉으면 누구라도 일행이 된다. 바다와 고기이야기로 걸쭉한 막걸리가 한 순배 돈다. 선술집 할머니는 싱싱한 잡어를 굵은 콩나물 위에 듬뿍 올려놓고, 고추장 술술 풀어 끓이다가 요기가 되도록 국수를 한 줌 넉넉하게 넣었다. 펄펄 끓는 커다란 냄비가 둥근 탁자 가운데 올라오면 파도에 지쳤던 뱃사람들의 만찬이 시작된다. 반찬은 오로지 꽁치젓갈로 담은 김치 하나가 전부다. 막걸리와 뜨거운 국수 국물에 후루룩거리고 배를 채우고 나면 험한 바다의 긴장과 고된 노동의 피로가 모두 풀어졌다.
  구룡포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인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읍으로 승격할 만큼 번성했던 항구였다. 지금은 청어가 귀해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지만, 그때는 청어가 많이 잡혀 아무 곳에나 걸어놓고 과메기로 말렸다. 선착장엔 방금 내려놓은 고기들이 펄떡거리고, 장화가 푹푹 빠지도록 고기비늘이 질펀하게 쌓였다. 밤새 집어등을 훤히 밝힌 고깃배들로 바다는 멀리 수평선까지 불야성을 이루었다. 깃발을 펄럭이며 만선을 자랑하는 배들이 밤낮으로 포구로 밀려들었다. 닻을 내린 선원들은 풍어로 흥청거리며 고단한 몸을 풀어놓을 바닷가 선술집으로 모여들었다.
  동해를 여행하다 소문으로 듣던 모리국시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막내 아이가 귀여워 까꾸네 집으로 불렸던 국수집은 포구 끝자락 얼음공장 옆 후미진 골목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대폿집이다.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문도 받지 않고 벌써 주방에서는 국수를 끓여내고 있었다. 벽에 걸린 낡은 액자 속에는 빛바랜 사진으로 국수집 지난 시간이 진열되어 있었다. 펄펄 끓는 냄비를 상 가운데 내려놓은 할아버지는 사진 속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외지 손님에게 자식마다 자랑을 길게 늘어놓았다. 주름이 깊게 그려진 시골노인의 눈가에 그리움이 습기처럼 번지고 있었다.
  옛날부터 모리국시를 먹으면서도 정작 그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덜어먹을 대접하나 받아들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먹다 생긴 이름이라는 말도 있고, 일본말의 ‘많다’는 뜻으로 모리(もり)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국수를 먹다가 하도 시원해서 술집 할머니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가 “내도 모린다”라고 해서 모리국시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기야 그날 잡힌 생선들을 닥치는 대로 넣고 끓였으니 딱히 무슨 국수라 이름을 붙이기도 그렇다.
  식기 전에 얼른 드시라는 할아버지의 재촉에 큰 냄비를 휘휘 저었더니 생태며 새우, 소라에 대게 다리까지 걸려 올라온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모리국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기요(그것은), 모리는(모르는) 사람끼리 모디서(모여서) 묵는다꼬 모리국시 아이라요.
  이거는 우(여럿이) 모디서 먹는 음식인기라요.
  요새는 생아구로 끓이는데 어제 폭풍 때매 배가 못 나가 동태로 끓여 맛이 덜하네요.”
  생선으로 끓인 국수가 비린 맛이 나면 어쩌나 했던 마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적당히 퍼진 국수 때문에 걸쭉해진, 얼큰한 국물은 체면 따위는 잊어버리게 했다. 너나없이 자기 앞의 그릇으로 국수를 부지런히 퍼냈다. 그 크던 찌그러진 양은 냄비는 삽시간에 넓은 바닥을 있는 대로 보이고 말았다.
  청어가 사라지면서 뱃일하던 사내들도 떠나갔다. 포구가 한산해지자 부둣가 선술집들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포구의 발걸음들이 느려지고 풍경도 변해갔다. 한나절이 되어 띄엄띄엄 배가 들어오면 붉은 다라를 머리에 인 아낙들이 어물을 받아 자리 잡고 앉아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을 기다리는 정도다. 얼음공장의 녹슨 함석지붕이 나사가 빠졌는지 바람에 들썩거린다. 쉬는 날이 없던 국수 공장도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이제는 모리국시에 들어가는 해산물도 잡어가 아닌 생아귀나 생태 같은 고급어종으로 바뀌었다. 뱃사람들로 북적대던 까꾸네집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일을 도우는 사람도 없이 꾸려가는 노부부에게 이제는 식당일이 힘에 부쳐 보인다. 세월이 흘러도 오래된 포구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직도 남아 있는 후한 인심뿐이다. 그리고 모리국시는 혼자서는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노부부는 냄비에 한 사람만큼의 양만 끓이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며 손님을 돌려 세웠다. 혼자 먹는 모리국시는 이미 모리국시가 아니다. 구룡포에 가면 절대로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모리국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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