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김정민
뒤꼍의 대나무 뿌리 구들장을 장악하고
들락날락 바람이 돌쩌귀 빠진 문짝을 열고 닫던 집
임종도 없이 죽어버린 괘종시계를 떼 내고
포클레인 버킷을 들어 올려
장승처럼 지켜선 용마루를 누른다
꿈 버무렸던 흙벽도, 서까래도
병색 짙은 신음처럼 무너진다
게으른 골목 깨우던 워낭소리 쪽마루에 걸쳐두고
뻐꾹 소리에 피곤 달래던 아버지의 그림자
기와, 연목, 대들보에 매달려 버팅기다 내처진다
‘원룸 두 동 지으면 끝내주겠다’
평평하게 땅을 고른 포크레인 남자의 말끝에
언뜻, 오빠 얼굴에 미소가 번졌던가
마당가에 쪼그린 아버지, 엄동설한에 어디로 가시나요
이승과 저승을 잇는 속울음
뿌연 먼지 속에 구덩이를 파는데
♦ ㅡㅡㅡㅡㅡ 어떤 집이든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돌보지 않으면 어느새 폐옥이 되고 만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로 비워져 있던 집이다. 주인 없이 홀로 늙어가는 집이다. 마냥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헐기로 한 모양이다. 어떤 용도로 어떻게 쓰이든, 평평하게 고른 땅이 돈으로 바꿔질 것이다.
멈춘 지 오랜 괘종시계가 떼어지고,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중한 집이 사라지는 중이다. 오빠는 원룸 두 동을 떠올리며 그저 흐뭇하기만했을까. 용마루와 기와, 연목, 대들보와 서까래가 포클레인의 위력에 사정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시인의 속울음을 알 것 같다.
사라지는 것은 죽음과 같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경건해진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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