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최민자
진열장 안에 소주병들이 도열해 있다. 순하리, 처음처럼, 좋은 데이, 참이슬…… 징발을 앞둔 처자들처럼 술병들이 긴장감으로 다소곳하다. 아래 칸에는 막걸리와 음료수병도 보인다. 참살이, 배다리, 대포, 느린 마을…….
계통 없는 말들이 중구난방 오가는 사내들 사이로 앞치마를 두른 이모님들이 진열장을 여닫으며 술병을 나른다. 몸 안에 부어져 마음을 교란시킬 투명한 물불들이 이 상 저 상으로 왁자하게 흩어진다. 옆 테이블에도 막걸리병이 대기 중이다. 목청이 큰 중년 사내가 목을 비틀자 기울어진 병이 크르렁 콸콸 안의 것들을 쏟는다. 반투명의 뿌연 피가 양재기에 담겨 이 사람 저 사람 목 안으로 흘러든다.
양재기들이 자리를 찾아 앉는다. 안을 비워내 병들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구석 자리에 물러앉는다. 허리 잘록한 콜라병도, 엉덩이 암팡진 복분자도 안의 것들만 들여보내고 허허롭게 서 있다. 아무리 견고하고 아름다워도 껍데기란 기껏 천덕꾸러기일 뿐인가. 몸도 기실 껍데기이련만 껍질을 제거한 내용들만, 안의 것들만 제안에 들인다. 사과도 옥수수도 쌀도 알밤도 껍데기는 다 배척당한다. 안과 안이 뒤섞여 하나로 일렁일 때까지 안의 것들을 잠시 담아두는 용도. 껍데기의 쓸모란 거기까지일까.
마주 앉은 친구와 투명한 호박빛 맥주잔을 쨍, 소리 나게 부딪쳐 본다. 부딪는 건 잔과 잔이지만 마음과 마음이 스미고 물드는 듯 기분이 일시 쨍하고 솟는다. 마음을 건넬 수 없어 술잔을 건네고 마음을 기울일 수 없어 술잔을 기울인다. 통음(痛飮)으로 통음(通音)을 한다고 할까.
연인들끼리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바칠 수 없어 꽃을 바치고 마음을 포장할 수 없어 선물을 포장한다. 마음을 내밀 수 없어 입술을, 어깨를, 가슴을 내밀지만 아무리 꼭 부둥켜안아도 몸과 몸은 항구적으로 결합되지 않는다. 일시 접합이 된 듯하여도 이내 틈이 나 분리되어 버리는 것, 물(物)의 한계이고 비애일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화학적으로 스미고 물들어가는 것을 요즘 말로 ‘케미(chemistry)가 돋는다고 하던데 참 멋진 통찰력이다. 코르티졸,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생화학적 호르몬들이 마음을 작동시키는 원료라는 사실을 알고 만든 말이려나?
바깥을 제거하고 몸을 삭제한 소통, 껍데기를 소외시킨 과학기술 덕에 인류는 마침내 정신적 존재가 영물(靈物)이 되어 가는 중인 듯하다. 눈인사 한 번 나누지 않고도 교류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대, 손과 손을 마주 잡는 접촉의 따스함은 없을지라도 안과 안의 접속을 통해 생각과 느낌, 온기와 물기로 감응하며 산다. 감성을 입은 기술이 인간을 신으로 격상시켜 줄지, 영혼 없는 좀비로 전락시키고 말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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