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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칡/박현숙

에세이향기 2021. 9. 2. 12:01

칡/박현숙

 상처 입은 어린 생명들이 녹색피를 흘리며 신음하다 서서히 일어선다. 한낮의 열기가 섞인 쌉싸래한 풀내음은 코띁에 아찔하게 스며든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것들은 쓰러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으깨어지고 다시 일어서보려 애써보지만 내리쬐는 태양이 마지막 남은 수분을 살뜰하게 거두어간다. 성성한 칡넝쿨은 더 성해져서 벚나무를 휘감아 타고 오르는데 애꿎은 어린 새싹들만 떠나갔다.

 무섭도록 성해지는 칡의 뿌리를 찾아 태양을 이고 헤맨다. 몸속의 수분도 다 증발해 버릴 것만 같다. 줄기를 힘차게 뻗치는 칡의 근본은 내 팔뚝보다 굵고 튼실하다. 남편과 함께 톱으로, 낫으로 열심히 잘라내고 제초제를 듬뿍 뿌렸다. 작년 여름에 꽤 실한 벚나무 두 그루가 칡넝쿨에 휘감겨 죽었다. 남은 벚나무와 느티나무, 단풍나무를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칡도 선택받지 못했을 뿐 나무와 같은 생명이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선택받은 것과, 선택받지 못한 것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나도 여자로 태어나는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들과 딸의 다른 삶은 시작됐다. 먹을 것, 입을 것, 배움마저 항상 뒷전으로 밀려 마음이 주렸던 지난날은, 아무리 잘라내도 없어질 것 같지 않은 칡넝쿨처럼 끈질긴 삶의 기억들이다. 벚나무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없애야 하는 칡이, 딸이기에 마음을 접고 살았던 지난시절의 내 모습 같다.

 그땐 어려운 형편에 모든 걸 아들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마음은 항상 잘려진 칡넝쿨처럼 상처받고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위해 쉼 없이 마음의 넝쿨을 키웠다.

 결혼 후 맏며느리인 내가 딸만 둘을 낳았다. 시어머니는 손자가 아니라서 서운함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내 딸들도 시어머니에게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엄마도 시어머니도, 여자로 태어나 희생하며 아프게 살아온 세월의 굴레를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난 인식의 사슬을 칡넝쿨처럼 끊어내야만 했다.

 귀하게 자랄 수 없었던 지난시절이 아직도 기억 속엔 생생한데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간다. 호주제도 없어졌다. 은근히 아들을 원했던 남편도 예쁜 딸들을 더 좋아한다. 딸들만큼은 '제 몫을 다하는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자존감을 심어주려 애쓰며 키웠다. 딸들은 어느새 잘 자란 빛나는 청춘들이다. 머지않아 세상의 한 곳을 빛낼 미래의 주역들이다.

 무성한 넝쿨에 가려 보일 듯 말듯한 여린 자주색 칡꽃은 그윽한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길고 긴 넝쿨은 닿은 자리마다 깊은 애착이 생긴다. 내가 없애버린 칡들도 밭이 아닌 산자락에 뿌리를 내렸다면, 마음껏 넝쿨을 뻗고 튼실한 뿌리를 키웠을 텐데, 소중한 약재가 될 수도 있고 푸른 산야를 더 푸르게 빛낼 수 있었을 것이다.

 쓸모없던 것들도 가치를 찾고 보면 유용한 것이 되고, 같은 상황도 시대에 따라서 달리 여겨진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들풀처럼 미미한 존재였던 나도 칡처럼 힘차게 뿌리내리고 넝쿨을 뻗었기에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행복은 '조건'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하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던 평범한 내 삶은, 소중한 가족들의 주춧돌이고 아늑한 보금자리다. 이젠 나를 옭아맸던 먼 기억의 칡넝쿨을 끊어내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칡넝쿨들은, 삶의 고비를 넘기는 힘이 될 소중한 약재로 쓸 것이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는 내 삶의 넝쿨이니까.

 산들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푸른 산자락에 주저앉아 풀밭위에 멋진 집을 지어본다. 아늑한 이 터에 집이 지어질 때쯤엔 코끝에 스몄던 쌉싸래한 칡 냄새도 더 없이 향기롭게 느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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