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봇대/강여울
조용히 비가 내리는 길, 가로수들 사이에 외롭게 전봇대가 서 있다. 전봇대는 양 팔을 나란히 뻗어 몸에 버거울 것 같은 전선을 받치고 있다.
나무들은 제 선 자리에서 꽃과 잎도 피고 진다. 그러나 전봇대는 푸른 잎 하나 피우지 못하는 콘크리트 나무다. 일생 뿌리 내린 그 자리만을 지키며 그가 거느린 전선들은 사방으로 멀리 뻗어 보낸다. 항시 맨몸으로 지키는 전선들이 그의 꽃이며 잎이고 열매가. 전봇대는 오로지 자신을 의지히 뻗어나간 가지들을 지키는 일에만 전심전력이다. 제 몸을 키우지도 못하고, 꽃 한 송이 피울 수도 없는 슬픈 나무지만, 그에게서 뻗어나가는 전선들은 새들의 쉼터도 되고 어둠을 물리치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내 맘이 새처럼 꿈속을 유영하던 열 살 무렵, 새마을 운동의 물결을 타고 읍내에서 십 리나 떨어진 야산 속, 우리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나는 야산을 넘어 철길을 건너고, 철길과 나란히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 들길과 비포장 신작로를 타박타박 걸어 학교와 집을 오갔다. 점촌읍에서 함창면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사를 했지만 전학을 하지 않아서 학교 다니는 길은 늘 혼자였다. 때맞춰 심심함을 달래주는 친구처럼, 내가 걷는 길을 따라 전봇대가 세워졌다.
전봇대는 전선을 붙들고 마을로 들어가 꽃처럼 등불을 피웠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새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참새, 까치, 제비가 자리를 바꿔가며 모여서 회의를 하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새들이 조용한 날이면 바람이 쌩쌩 기차놀이를 하고 놀았다. 비가 오면 전깃줄이 구슬처럼 꿰는 빗방울과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실뜨기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내게 고마운 전붓대에 더러는 까치가 둥지를 틀기도 했고, 기러기들이 잠시 쉬어 가기도 했다. 그런 전봇대를 보며 나는 전깃줄을 따라 먼 훗날에 대한 오색찬란한 꿈꽃을 키우며 자랐다. 그 때의 꿈을 다 기억하지도 이루지도 못했지만 나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고향에는 전봇대처럼 혼자된 어머니가 사신다. 전화를 하면 "나는 이제 늙었으니 아무래도 괜찮다. 너만 잘 있으면 된다."고 한다. 한껏 젖은 목소리에 외로움과 그리움이 묻어 있지만 나는 늘 마른 목소리로 "밥 잘 챙겨 드시고, 내 걱정 말고, 놀러 많이 다니세요." 하고 전화를 끊는다. 끊어진 전선을 타고 어머니의 못 다한 말들이 밀물처럼 몰려오는 것도 애써 외면한다. 아무리 외면해도 어머니의 마음은 늘 내게 닿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내 마음 한 가닥이 늘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닿아 있듯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망므은 자식들에게 닿아 있다.
나는 초등하교 4학년 때 발목 관절염으로 한 달여 걷지를 못한 적이 있다. 복숭아 크기로 부어올라 휘어진 관절의 피고름을 어머니는 입으로 다 빨아냈다. 이렇게 어머니는 몸이 아플 때뿐만 아니라 마음이 고달프거나 삶이 힘들 때에도 싫은 내색 없이 나에게 힘을 더해 주셨다. 엄마가 되고서야 늘 자식에게 닿아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내가 힘겨워 하는 것 같으면 "자식들 봐라, 얼마나 대견하냐?"하며 용기를 주셨다. 지금은 그런 어머니도 늙고 병들어 외롭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보다는 항상 서울에 있는 아들의 안위安危를 먼저 살피게 된다. 기껏해야 "예", "응" 하는 단음의 대답이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하는 퉁명스런 말을 들으면서도,
비에 젖은 가로수들이 저마다 짜낸 제 색의 잎을 한껏 펼쳐 보이고 있는 길, 그 사이 사이 우뚝한 전봇대에 간이역처럼 전선들이 쉬어 간다. 전봇대가 있어 전선들은 멀리까지 안전하게 뻗어나가 아이의 책상을 밝히고, 마을길을 훤히 열어 보이고, 도시를 별밭으로 수놓는다. 지금 비에 젖어 누추해진 전봇대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제가 피워낸 형형색색의 등불들을 생각하며 흐뭇해할까. 내 목소리에 따라 울고 웃는 어머니의 모습이 전봇대에 겹쳐진다. 꼿꼿이 벌서는 자세로 따가운 땡볕을 견디고, 눈보라의 매서운 겨울도 아랑곳하지 않는, 햇살처럼 퍼지는 어머니의 기도가 전봇대를 타고 내 가슴에 전류처럼 흐른다. 내 한쪽 가슴은 여전히 아들을 향하여 흐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