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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발/류귀숙

에세이향기 2021. 9. 22. 21:10

발/류귀숙

어둠이 산그늘처럼 내려와 앉으면 종종대던 하루가 저물어 간다. 골목길 돌아온 바람결 따라 지친 발을 끌고 하루를 마감한다.


떡시루 같은 지하철을 빠져나오며 헝클어졌던 머리칼을 손으로 빗어 본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한 발이 숨죽이며 간신히 뱉어내는 신음 소리가 들린다.


통통 부은 두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그고 그날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손으로 살살 문지르고, 꾹꾹 누른다. 발가락 하나하나를 펴서 그 속에 묻어있는 시름의 때를 벗겨낸다. 아무리 봐도 예쁜 곳을 찾을 수 없다. 자꾸만 불어나는 나의 체중을 받쳐 들고 얼마나 먼 길을 왔는가! 멋없이 커 버린 발이 항변할 것 같아 타박하는 말을 입속에다 가두고 문을 잠근다. 엄지발가락 아래로 조금 내려오니 낙타 등같이 불룩한 등걸이 혹처럼 붙어 있다. '이런 불청객이 언제 들어와서 내 발모양을 망치고 있나?' 심문하듯 발이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본다.

 

조근 조근 따져 보고 조여 보니 과욕과 교만이라는 것이 범인이란다. 뒤를 이어 거미줄이 풀려나오듯 또 다른 죄과가 줄을 잇는다. 그때 나도 청자 빛 고운 날이 있었지. 그때는 '싸롱 구두'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신을 신으면 어깨가 올라가던 때였다. 나의 촐랑대고픈 마음이 싸롱으로 발을 끌어들였다. 곱절의 대가를 치르고 구두 한 켤레를 내 발에 꼭 맞게 맞췄다. 높은 구두 신은 발은 돋움 발이 됐고, 어깨도 한 치는 올라갔다. 턱을 한껏 올리고 자랑할 곳을 생각했다.

 

그때 기성화를 신고 후줄근한 스타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친구가 생각났다. '맞아! 그 친구의 코를 꺾어보자.' 몸속에 감췄던 자랑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러워하는 친구의 눈빛이 눈앞에 어른댔다. 그 친구 집은 가까운 곳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환승을 해서 10리 길을 더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때는 앞 뒤 가릴 것 없이 자랑할 마음만 가지고 있었기에 무조건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아뿔싸! 환승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전날 내린 폭우 때문에 내를 건너지 못해 버스가 갈 수 없단다. 당시 이 마을에는 튼튼한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얕은 물길을 가르며 버스가 내를 건너지만 비가 와서 물이 불으면 버스 운행이 중단됐다. 기필코 가야 한다면 공중에 가로놓인 출렁 다리를 건너 걸어가는 방법밖에 없단다. 그때는 유턴할 줄을 몰랐다. 앞 뒤 분간도 못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전진 했다. 용감한 장군처럼 객기를 부리며 그 하늘다리를 건널 수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때의 그 구두는 짙은 와인색 쌔무 구두였다. 거기다 번쩍이는 금장식까지 달려 고급스런 티가 줄줄 흘렀다. 물론 한껏 발돋움한 높이의 굽도 달고 있었다. 또 몸에는 구두에 어울리는 미니스커트 정장을 걸쳤고, 멋진 핸드백도 손에 들려져 있었다. 이 멋진 모습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아마 마음속에는 친구의 부러워하는 눈동자를 보며 우쭐거리고 싶은 교만이 자리한 것 같다. 예쁜 구두에 갇힌 발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비포장도로를 타박타박 걸어갈 때만 해도 구두 굽의 경쾌한 소리에 신바람이 났다. 그러나 실개천을 건너면서 잘못된 선택임을 알게 됐다.

 

다리 부근에 와서는 공중다리를 건너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이 뻥뻥 뚫린 긴 철판을 공중에다 이어 놓은 공중다리였다. 오로지 난간 줄에 의지해 조심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수시로 구멍 속으로 빠지려는 하이힐 뒤축을 간신히 붙들며 다리를 통과했다. 이렇게 고생으로 10리 길을 걸어서 친구 집에 도착했다. 새 구두가 여기저기 멍들고 찢겨진 것은 물론이고 발이 고통을 호소했다.


부은 발을 살살 달래며 골골이 잡힌 주름들 사이로 드러나는 나의 패악을 더듬어 본다.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던 지난 일들이 발바닥에 붙은 굳은살이 되어 흔적으로 남아있다. 뒤꿈치엔 상처 난 인생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너덜댄다. 삶을 위해, 가족을 위해 달음질쳤던 힘든 시간들이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에도 굳은살로 알알이 박혀있다. 내 발바닥 군데군데 옹이박인 굳은살을 보면서 아버지의 발바닥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때때로 발바닥에 스펀지 모양으로 눌어붙은 죽은 살을 칼로 도려냈다. 어느 날은 물에 팅팅 불은 발바닥을 칼로 도려내고 계셨다. 그때는 몰랐었다. 아버지의 발바닥에 비계 같은 죽은 살들이 왜 박혀있는지를…. 어린 생각에 '아버지는 이렇게 편하게 지내시는데, 농사일도 하시지 않는데, 비계처럼 허옇게 일어나는 죽은 살이 왜 생겼을까?'라는 생각만 했다.  

지금에야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가족을 등에 업고 비틀댔던 고독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젊은 시절에 남의 땅 일본에서 가장이라는 등짐지고 용을 쓴 흔적이 아닐까? 식구들의 밥을 위해 모진 세상 살아왔던 세월이 그 발바닥에 묻어있다. 본래의 발바닥은 지문조차 닳아 헤어지고 나무껍질 같은 죽은 살을 잔뜩 달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이 오늘따라 처연하게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내 발은 반란을 일으켰다. 예쁜 구두, 하이힐, 부츠, 등의 구두를 거부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신을 학대한 주인에 대한 정당한 권리였음에도 난 그 외침을 듣지 않고 가시적인 치장과 체면만 앞세우고 발의 경고를 무시해 버렸다.


발의 고삐를 틀어쥐고 채찍을 치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 내가 한 발짝 물러서서 병원치료를 받기로 했다.


"젊은 시절에 하이힐을 많이 신었지요? 엄지발가락에 관절염이 왔고, 안쪽으로 많이 굽어 있네요. 편한 신발을 신고 다니세요." 발의 뼈가 환히 드러난 사진을 보면서 정형외과 의사가 한 말이다.
병들어 지친 발을 보며 내 죄과를 들추어 본다. 남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발을 옥죄고 다리를 힘들게 하는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닌 일이 눈앞을 스쳐 간다. 굳은살이 옹이처럼 박이고 휘어져서 못생긴 내 발을 따뜻한 물에 넣고 달래 본다. 참 팍팍하게 살아온 인생이다.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과 세월의 아픔, 고난 등을 묵묵히 지고 인내했던 발을 보면서 나를 돌아본다. 이제는 편한 신발로 갈아 신어야겠다. 과욕과 교만, 시기 등을 아래로 내려놓고 쉬엄쉬엄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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