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웅박 / 윤 미 애
풍경 밖으로 새들이 날아간다. 감빛 노을이 발묵처럼 번지고 먼 산은 조금씩 어스름에 잠긴다. 뒤란 대숲에 내려앉은 바람의 옷자락이 차갑다. 아비의 손을 잡은 아이가 구름 위의 새떼를 올려다본다. 이윽고 초가 한 칸이 느티나무 뒤에서 고즈넉해질 때, 닭 울음소리가 길게 낙관을 찍는다. 나는 그제야 붓을 내려놓으며 훅!하고 참았던 숨을 뱉어낸다.
유년의 고향 집 싸리 울타리엔 크고 작은 박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이른 봄, 씨앗을 심기 무섭게 새싹이 나면서 넌출은 가뿐하게 울을 넘었다. 초가지붕 위로 올라간 덩굴은 초여름쯤엔 꽃단장하듯 흰 꽃을 수놓았다. 긴 장마와 따가운 햇살을 이기고 가을이 되면, 박들이 울타리며 처마 끝에 박쥐처럼 올망졸망 매달리곤 했다. 아버지는 서둘러 박을 따 내렸다. 뒤웅박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뒤웅박은 박이 완전히 익기 전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을 툇마루에는 종(鐘) 모양의 박들로 넘쳐났다. 아버지는 속을 파내고 잘 말린 후, 끈을 달아 채소 씨앗이며 꽃씨를 담아 흰 벽에 걸어 두었다. 바람이 불면 박들이 풍경처럼 달그락거리며 저희들끼리 부딪는 소리가 겨울 내내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봄이 오면 뒤웅박 속의 씨앗들이 기지개를 켜며 들로 나갔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상추며 깻잎, 열무가 텃밭에 심어졌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어린 딸을 데리고 당신이 하는 일을 손수 돕게 했다. 호미로 살짝 들어 올린 찰진 흑구덩이에 씨앗 서너 개씩을 묻었다. 봄비를 맞아 부드러워진 흙들은 암탉이 알을 품듯 어린 씨앗을 품에 안았다. 파종이 끝나면 그제야 “옜다 가지고 놀아라.” 하며 어린 우리들에게 빈 뒤웅박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뒤웅박은 장난감으론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해마다 그녀는 애써 가꾼 박을 여남은 개씩 내게 보내준다. 그러면 나는 정성껏 그림을 그려 넣어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어떨 땐 초충도를 흉내 내기도 했고 어떨 땐 문인화를 그리기도 했다. 나이 마흔에 남편을 잃고 자식 둘마저 가슴에 묻은 그녀였다. 어느 날 외로웠던 도회 생활을 접고 홀연히 시골로 내려가 혼자 산 지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났다. 아파트에 이웃해 살았던 그녀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직접 가꾼 채소며 과일들을 철마다 보내주곤 했다.
요즘 호박이 웰빙 바람을 타고 몸값이 치솟고 있다. 울퉁불퉁 못생겨도 어디서든 목 좋은 곳을 차지하고 앉아 거드름을 부리고 있다. 유난스럽다 싶게 건강에 예민해진 현대인들의 인기 있는 영양 간식으로 최고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박은 어떤가? 미모로 보나 피부 결로 보나 저보다 못한 호박에 밀려애써 찾지 않으면 만나 보기가 어렵다. 같은 채소라도 먹을거리로 치면 호박에게 밀리고 덩치로 봐도 한 참 열세다. 덩굴에 열리는 채소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식용으로선 별 가치가 없다. 투박한 호박이 억척스러운 촌부라면 박은 사가(私家)의 깊숙한 곳에 은거하는 별당 아씨 같은 존재다. 달콤한 맛으로 사람들의 혀를 자극하지도 못하고 화려한 꽃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도 유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자태만큼은 호박의 추종을 불허한다, 달빛 환한 밤, 지붕 위에 비스듬히 누운 박의 고혹적인 자세를 보면 누군들 숨 막히는 관능미를 느끼지 않으랴!
그녀는 박을 닮았다. 같이 있으면 존재감을 못 느끼지만 없으면 빈자리가 허전하다. 조용하면서 나긋나긋한 그녀는 시끄러우면서 수다스런 나와는 자못 여려 가지에서 비교가 된다. 내가 다혈질인 반면 그녀는 차분하고, 내가 도회적이라면 그녀는 전원적이다. 다소곳한 그녀는 그림자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그러나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것이 그녀였다.
박은 공예품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다른 용도로도 그 사용이 다양하다. 샘물을 떠먹는 데는 무엇보다 박이 제격이다. 뒤주의 쌀을 퍼낼 때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함 받는 날 바가지를 밟아 으깨어 액땜을 하는 풍습도 있다. 가난했던 흥부에게 큰 선물을 안겨 준 것도 박이다. 그러고 보면 박은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메신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듯 맛으로는 별 쓸모가 없는 박은 무형의 용도로서의 가치는 호박보다 기실 더 많다.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고나 할까. 무용지용의 도(道)를 역설하는 박이 새삼스레 귀해 보인다.
박 공예는 손이 많이 간다. 심고 가꾸는 데 정성은 차치하고라도 박을 켜고 그 속의 것을 긁어내고 건조시키는 과정이 여간 잔손질이 많은 것이 아니다. 우선 잘 익은 박을 반으로 자르고 속을 파낸 다음 소금물에 삶은 뒤, 바람이 잘 드는 그늘에 보름 정도 말려야 한다. 다 마른 박은 사포로 깨끗이 문질러 표면을 매끄럽게 한다. 그런 후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유화처럼 붓끝으로 물감을 찍어 채색을 하면 박 공예는 완성되는 것이다.
박 공예를 할 때마다 그녀를 생각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외롭게 살아내야 했던 그 신산함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재혼을 하지 않았다. 여자 혼자 살아내기엔 여간 힘든 세상이 아닐 텐데도 박처럼 꿋꿋하게 운명을 헤쳐 나갔다. 그런 그녀를 위해 오늘은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허난설헌의 「앙간비금도」를 그려 본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뒤웅박들을 들여다본다. 거기 유년의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아버지는 박 속에 담아 두었던 꽃씨를 허공에 뿌린다. 붓꽃이며 봉숭아, 채송화가 공중의 꽃밭에 다투어 피어난다. 꽃밭 사이 오솔길로 그녀가 그리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그림 속의 새떼가 푸드덕! 상강(霜降)의 하늘 위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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