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가 그립다 / 김인선
볕 좋은 날 마루를 닦는다. 햇살 한 장이 마당에 선 나무들을 무늬로 그리면, 하릴없이 졸던 강아지가 게으른 눈을 비비는 한낮, 숫제 싱거운 졸음이나 재우려는 듯 처마도 그림자로 내려앉는다. 마루는 완벽하게 그늘 반 햇살 반이다. 느긋한 햇살에 그늘이 포개지니 마루가 꾼 꿈을 나누듯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되살아난다. 황토방에 마루를 놓던 몇 해 전부터 눈시울에 매달려 있었을까. 무시로 고즈넉해지면 옛집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둘러앉는 소리부터 들려온다. 우리는 마루에서 밥을 먹고 숙제를 하였으며, 별을 보다 잠이 들었다. 우리들 발품으로 반질반질 윤이 났던 그 마루에서 우리들은 자라났다. 그런 마루가 좋다. 모서리가 날렵한 세련된 마루가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뭉툭하게 안은 못생긴 마루. 책가방 내던지면 왈가닥 고무신도 함께 뛰어오르고, 가끔은 젓가락도 빠지고 더러는 연필도 집어삼키던 마루, 푸르스름한 달빛 별빛이 정다운 여름밤이면, 다리가 네 개인 금성 텔레비전으로 온 동네 사람들에게 레슬링을 전시하던 마루, 개구쟁이 사촌동생을 냅다 곤두박질치게 해놓고, 날이면 날마다 할머니의 호랑이연고가 끊일 날이 없던 마루. 사람 손때로 길이 난 오래된 마루에서 걸레질 한번 실컷 해보고 싶다. 그 옛날 내가 날마다 닦던 마루, 이제는 사라져 만질 수도 없는, 옛집의 그 마루. 내 기억 속의 마루에는 하얀 파파할머니가 백자 항아리 요강을 곁에 두고 앉아 계신다. 그러면 앞산 대밭바람 소슬히 불어오는 내 기억의 골짜기로 희미하게 닿는 목소리 하나. "인선아, 요강 비워라~." 바지랑대와 닭장 사이에 고무줄을 끼우고 혼자 놀던 나는, 어떨땐 예, 하며 조막만한 손을 움직이다가도, 어떨 땐 제법 앵돌아진 입을 삐죽거리며 노할머니 애간장을 태웠더랬다. 노할머니는 증조할머니를 부르던 우리들의 애칭이었다. 내 기억 속의 노할머니는 언제나 마루에 앉아 계셨다. 사진 속에 박제된 모습처럼 늘 마루에 앉아 나에게 요강 비우라고만 하셨다. 나는 고무줄놀이 하느라 바쁜데 툭하면 나만 시키시니 할머니 부름이 귀찮았던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 미운 네 살이었으니. 엄마로부터 노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건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이 흐른 뒤였다. 가난이 원수이던 시절, 한밤중에 볼일 보러 일어나셨던 노할머니는 방에 가득 찬 식구들 다리를 피하다 발을 접질리는 사고를 당하셨다. 3대가 아니라 4대가 모인 초 대가족이 우리 집이었다. 그날 밤 다친 다리는 가난과 무지로 치료시기를 놓쳤고, 노할머니는 그 길로 앉은뱅이 신세가 되고 마셨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되지 않는 일에 자그마치 10년 세월을 앉아서 지내셨다고 했다. 내 기억에서 단 한 번도 서서 걸은 적 없던 할머니의 상은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나를 갓 낳아놓고 엄마는 그 많은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몸조리는커녕 들로 바다로 하루 종일 일을 다니셨다. 겨우 어스름 저녁에 개펄처럼 헤져 집으로 돌아오면 노할머니는 갓난아기인 내가 보채지도 않아다며 엄마를 안심시켜 주셨단다. 내가 세상에 나고 가장 먼저 맡았던 냄새는 엄마의 걱정으로 불은 젖 냄새와 노할머니의 묵은 햇살 냄새였으니, 하루 종일 앉아서 갓 태어난 증손녀가 배고파 칭얼댈 때마다 노할머니는 얼마나 애처로워하며 나를 얼렀을까. 그래서인지 나에겐 늙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한 쪽에 늘 자리하고 있다. 따스한 아랫목 같기도 하고 햇살 마루 같기도 하던 그 설명할 수 없는 온기. 가끔 옛집이 그리워지면 자그맣게 돌아앉은 내 등 뒤로 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오도 가도 못하는 자신의 몸을 기둥에 매달다시피 해놓고, 실은 내게 요강을 비우라 했던 게 아니라, 행여 넘어지거나 다칠까 봐 애가 타서 불렀던 할머니의 노파심 소리, 붙박이 기둥처럼 애지중지 새끼들을 지켰을 앉은뱅이 울먹인 자리. 마루는 할머니의 걱정을 먹고 메아리로 남았을까. 어지럼 뱅뱅 맴을 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일이 결국 생기고 말았다. 노할머니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붉은 피. 나는 또 요강을 비우지 않았을 것이고, 애가 탄 노할머니는 마루에서 축담으로, 축담에서 다시 마당으로 굴러 떨어지는 큰 사고를 입으셨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을 나이에도 그 장면은 이후 내 기억에서 오래오래 박제되어 있었다. 집엔 의례 나 혼자 있었고, 슬프게도 할머니는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기억은 편집되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죄책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큰 비밀처럼 품고 산 세월동안 기억은 확신이 되어 나를 따라다녔다. 세월이 흘러 엄마와 나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도란도란 앉은 묘지들 사이에서 마치 오래전부터 풀리지 않던 퍼즐을 맞추듯 서로의 기억을 더듬었다. 엄마가 들려준 사건의 전말에 의하면 노할머니의 죽음은 그날의 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였고, 나와 두 살 터울인 남동생에게서 비롯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가족들이 모두 들일 나가고 노할머니는 나와 내 남동생을 지키고 계셨다. 그러던 잠시 남동생이 사라졌다. 동작이 날렵했던 아이를 부르다 지쳐, 뒷간에 빠졌을까, 집 앞 우물에 빠졌을까, 근심이 커졌던 나머지, 자신의 몸을 마루에서 축담으로, 축담에서 마당으로, 그렇게 스스로를 굴리셨단다. 마루와 축담의 높이를 알고 축담과 마당의 높이를 기억하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만다. 감은 눈 사이로 소슬히 대숲 바람이 불어온다. 앉은뱅이 기둥에 기대어 다리를 대롱거리며 앞산 바람이나 종일 맞고프다. 남동생은 그때 이웃집에서 태연히 놀았었지만, 노할머니는 삽짝 밖 우물자리를 뒤지다 돌아와서는 또 다시 뒷간까지 앉은걸음으로 그렇게 찾아 헤매셨다. 내가 요강을 비우지 않아서 그랬던 게 차라리 나았을 기막힌 이야기였다. 그렇게 꼬박 10년을 앉은뱅이로 살다 가셨던 노할머니 자리, 그곳으로 앞산 그림자가 다랑논 너울을 따라 흐르다 살며시 누우면 노할머니 서글픈 목소리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인선아, 요강 비워라." 그러면 나는 요강 버리는 건 일도 아니라며 훠이 버리고 난 후, 내 그리운 노할머니를 등에 업고 동네 한 바퀴를 휘휘 돌아다닐 것이다. 앉은뱅이 설움이란 이 땅엔 없는 것이라며 내친김에 온 산천을 유람시켜 드릴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하얀 파파할머니로 내 가슴에 남은 노할머니. 마루를 떠올리면 백자 항아리 요강이 떠오르고, 그곳에서 항상 나를 부르시던 오래된 할머니의 살가운 목소리가 먼 바람처럼 들려온다. 그리운 것은 목이 아프게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쪽 지구본/안은숙 (0) | 2021.05.04 |
---|---|
7일 동안/최지안 (0) | 2021.05.04 |
연필/김정화 (0) | 2021.05.03 |
연필과 나 / 조이섭 (0) | 2021.05.03 |
모루/정문숙 (0) | 2021.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