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배기 / 김용삼
온도계가 또 최고점을 갱신했다. 한풀 꺾일 만도 하건만, 태양의 기세는 세상 전부를 태울 듯 나날이 등등하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혹은 형편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달포 이상 이어지는 열대야는 종내 입맛까지 잃게 했다.
폭서를 핑계 삼아 지인 몇몇을 꼬드겨 보양의 길을 나선다. 태양의 횡포를 피해 찾아든 곳이 근처의 밤나무 숲이다. 그곳에 내 오랜 단골식당인 '밤나무집'이 있다. 추어탕 하나로 근동에서 이름이 자자한 곳이다. 밥때가 지난 탓에 평소보다는 한산하지만, 뜨거운 추어탕에 코를 박고 앉은 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들도 폭염과 맞서기 위해 이열치열의 전법을 동원하나 보다.
"와우! 저기 보소. 묘기다 묘기!"
도우미 아주머니가 4인분 상을 통째 머리에 이고 오는 모습을 보고 일행은 일제히 탄성을 지른다. 기본 찬에 뜨거운 탕까지 갖추갖추 차려낸 커다란 교자상을 위태하게 이고 나르는 모습은 아찔한 줄타기를 보는 듯 오금이 저린다. 주방과 멀찍이 떨어진 숲속 가건물에 손님방이 있어 아예 상을 차려서 내어오는 집이라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이기도 하다.
객客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단숨에 상을 내려놓는다. 일행은 신비한 묘기를 연출한 그녀와, 뚝딱 차려진 상에 번갈아 시선을 꽂느라 여념이 없다. "맛있게 드세요", 극히 건조한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 그녀의 머리에서 동글게 말린 수건 하나가 툭 떨어진다. 따배기다.
뱀이 동심원 그리듯 또아리를 트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 똬리다. 경상도에서는 따배기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원래 똬리는 짚이나 새끼로 틀을 잡고, 왕골껍질로 겉을 감싼 터라 둥글며 납작하다. 하지만 수건을 둘둘 말아 즉석에서 만들어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도구로서의 따배기는 보잘것없지만 삶의 방편으로써의 따배기는 왕골만큼 생명력이 질기다.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나 스며든 곳은 도시의 변방이었다. 구역으로는 분명 도시지만,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이 터를 잡은 후줄근한 갯가였다. 그들은 대개 하루를 쉬면 하루는 굶을 만치 각다분한 삶을 살았다. 아침이면 너나없이 가난의 흔적들이 살비듬처럼 지분거리는 길을 밟고 밥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서곤 했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부터였을 게다. 어머니의 삶에 따배기가 주연으로 등장한 것이, 따배기라야 언제나 나달거리는 수건이었지만 큼지막한 대야와 더불어 생존의 각축장에 임하는 방패요, 창이었다.
어머니의 일터는 붕장어 배들이 몸을 푸는 선창이었다. 선창에는 수많은 따배기들이 입항할 배를 기다리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먼바다에서 조업의 1차전을 치른 어선들이 선창에 닻을 내리면 따배기들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질퍽한 비린내가 등천하는 선창을 뒤져 굵고 싱싱한 붕장어를 선점하면 2차전의 승자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다부지게 감아 만든 따배기 위에 묵직해진 대야를 얹은 채 시내 곳곳에 표시된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본격적인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루치의 성적표는 대야가 어머니의 머리에서 내려온 후에야 매겨졌다. 재수가 좋아 일찌감치 떨이를 한 날은, 따배기를 풀어 온몸에 밴 비린내를 툴툴 털어내는 소리가 삽짝을 울렸다. 내가 잠들 때까지 돌아오지 않거나, 적잖게 재고까지 떠안은 날은 뭉텅뭉텅 내려놓는 한숨 소리가 어머니보다 먼저 집안을 들어서곤 했다. 그런 밤에는 가장 평안해야 할 꿈자리에서마저 따배기를 내려놓지 못했는지, 어머니는 뒤척일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비빌 언덕, 기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삶의 무게가 아무리 버겁더라도 결국은 그 무게를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은 유독 당신에게 야박했다. 비빌 언덕이어야 할 지아비는 병치레로 늘 자리보전을 했고, 고만고만한 자식들은 세근머리를 기대하기에 너무 어렸다. 설상가상 수숫대처럼 커가는 자식들은 갖가지 구실로 어머니에게 무게를 보태기만 했다. 결국 어머니는 가장 아닌 가장의 짐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못하였다. 그런 헌신 덕분에, 우리는 남루한 집이나마 문패를 걸었고, 번듯하게 가방끈도 늘려 잡을 수 있었지만….
역도에서 바벨을 단번에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일어서는 방식을 인상引上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무거운 대야를 머리에 올리던 동작이 역도의 인상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역도선수는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바벨을 바닥에 던지면 경기 끝이지만, 어머니에겐 아무도 '이제 그만 내리세요'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따배기가 어머니 머리에서 내려온 것은 큰형님이 취직을 하고부터였다. 비로소 어머니에게도 기댈 누군가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미 등은 활처럼 휘어져 버린 후였지만, 더 이상 당신이 버겁게 감당해야 할 무게는 없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짐이 조금 절어졌을 뿐, 당신의 삶에서 따배기는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무엇이었나 보다.
가정도, 자식도, 내 몸 하나마저 건사하지 못한 채 꽁지 빠진 몰골이 되었을 때 나를 다시 품어준 것은 어머니였다. 주변의 연배들은 남은 세월을 자식과 함께 낙낙한 마무리를 하는데, 나는 떠도는 짐이 되어 당신의 삶에 무게로 얹혀버렸다.
추레한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었다. 도리어, 지난한 시간을 건너온 구순 고개의 어머니를 향해 내 손톱 밑의 가시만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추운지, 더운지, 밥은 먹었는지, 때로는 그저 무탈한지. 늙수그레한 아들의 안위를 챙기느라 동동거리는 모습마저 다 읽은 책장처럼 건성으로 넘겨버렸다. 어느 시구詩句처럼,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존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어머니가 그러했듯, 밤나무집 여인은 잽싸게 따배기를 주워들더니 툴툴 옷자락을 털며 멀어져 간다. 칼칼한 국물 두어 술을 뜨지만 아직도 따배기의 주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가 자꾸만 목에 걸린다. 막 끓여 낸 추어탕보다 더 뜨거운 무엇이 목젖을 타고 오른다.
온도계가 또 최고점을 갱신했다. 한풀 꺾일 만도 하건만, 태양의 기세는 세상 전부를 태울 듯 나날이 등등하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혹은 형편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달포 이상 이어지는 열대야는 종내 입맛까지 잃게 했다.
폭서를 핑계 삼아 지인 몇몇을 꼬드겨 보양의 길을 나선다. 태양의 횡포를 피해 찾아든 곳이 근처의 밤나무 숲이다. 그곳에 내 오랜 단골식당인 '밤나무집'이 있다. 추어탕 하나로 근동에서 이름이 자자한 곳이다. 밥때가 지난 탓에 평소보다는 한산하지만, 뜨거운 추어탕에 코를 박고 앉은 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들도 폭염과 맞서기 위해 이열치열의 전법을 동원하나 보다.
"와우! 저기 보소. 묘기다 묘기!"
도우미 아주머니가 4인분 상을 통째 머리에 이고 오는 모습을 보고 일행은 일제히 탄성을 지른다. 기본 찬에 뜨거운 탕까지 갖추갖추 차려낸 커다란 교자상을 위태하게 이고 나르는 모습은 아찔한 줄타기를 보는 듯 오금이 저린다. 주방과 멀찍이 떨어진 숲속 가건물에 손님방이 있어 아예 상을 차려서 내어오는 집이라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이기도 하다.
객客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단숨에 상을 내려놓는다. 일행은 신비한 묘기를 연출한 그녀와, 뚝딱 차려진 상에 번갈아 시선을 꽂느라 여념이 없다. "맛있게 드세요", 극히 건조한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 그녀의 머리에서 동글게 말린 수건 하나가 툭 떨어진다. 따배기다.
뱀이 동심원 그리듯 또아리를 트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 똬리다. 경상도에서는 따배기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원래 똬리는 짚이나 새끼로 틀을 잡고, 왕골껍질로 겉을 감싼 터라 둥글며 납작하다. 하지만 수건을 둘둘 말아 즉석에서 만들어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도구로서의 따배기는 보잘것없지만 삶의 방편으로써의 따배기는 왕골만큼 생명력이 질기다.
우리 가족이 고향을 떠나 스며든 곳은 도시의 변방이었다. 구역으로는 분명 도시지만,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이 터를 잡은 후줄근한 갯가였다. 그들은 대개 하루를 쉬면 하루는 굶을 만치 각다분한 삶을 살았다. 아침이면 너나없이 가난의 흔적들이 살비듬처럼 지분거리는 길을 밟고 밥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서곤 했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부터였을 게다. 어머니의 삶에 따배기가 주연으로 등장한 것이, 따배기라야 언제나 나달거리는 수건이었지만 큼지막한 대야와 더불어 생존의 각축장에 임하는 방패요, 창이었다.
어머니의 일터는 붕장어 배들이 몸을 푸는 선창이었다. 선창에는 수많은 따배기들이 입항할 배를 기다리며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먼바다에서 조업의 1차전을 치른 어선들이 선창에 닻을 내리면 따배기들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질퍽한 비린내가 등천하는 선창을 뒤져 굵고 싱싱한 붕장어를 선점하면 2차전의 승자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다부지게 감아 만든 따배기 위에 묵직해진 대야를 얹은 채 시내 곳곳에 표시된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본격적인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루치의 성적표는 대야가 어머니의 머리에서 내려온 후에야 매겨졌다. 재수가 좋아 일찌감치 떨이를 한 날은, 따배기를 풀어 온몸에 밴 비린내를 툴툴 털어내는 소리가 삽짝을 울렸다. 내가 잠들 때까지 돌아오지 않거나, 적잖게 재고까지 떠안은 날은 뭉텅뭉텅 내려놓는 한숨 소리가 어머니보다 먼저 집안을 들어서곤 했다. 그런 밤에는 가장 평안해야 할 꿈자리에서마저 따배기를 내려놓지 못했는지, 어머니는 뒤척일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비빌 언덕, 기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삶의 무게가 아무리 버겁더라도 결국은 그 무게를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은 유독 당신에게 야박했다. 비빌 언덕이어야 할 지아비는 병치레로 늘 자리보전을 했고, 고만고만한 자식들은 세근머리를 기대하기에 너무 어렸다. 설상가상 수숫대처럼 커가는 자식들은 갖가지 구실로 어머니에게 무게를 보태기만 했다. 결국 어머니는 가장 아닌 가장의 짐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못하였다. 그런 헌신 덕분에, 우리는 남루한 집이나마 문패를 걸었고, 번듯하게 가방끈도 늘려 잡을 수 있었지만….
역도에서 바벨을 단번에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일어서는 방식을 인상引上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무거운 대야를 머리에 올리던 동작이 역도의 인상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역도선수는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바벨을 바닥에 던지면 경기 끝이지만, 어머니에겐 아무도 '이제 그만 내리세요'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따배기가 어머니 머리에서 내려온 것은 큰형님이 취직을 하고부터였다. 비로소 어머니에게도 기댈 누군가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미 등은 활처럼 휘어져 버린 후였지만, 더 이상 당신이 버겁게 감당해야 할 무게는 없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짐이 조금 절어졌을 뿐, 당신의 삶에서 따배기는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무엇이었나 보다.
가정도, 자식도, 내 몸 하나마저 건사하지 못한 채 꽁지 빠진 몰골이 되었을 때 나를 다시 품어준 것은 어머니였다. 주변의 연배들은 남은 세월을 자식과 함께 낙낙한 마무리를 하는데, 나는 떠도는 짐이 되어 당신의 삶에 무게로 얹혀버렸다.
추레한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었다. 도리어, 지난한 시간을 건너온 구순 고개의 어머니를 향해 내 손톱 밑의 가시만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추운지, 더운지, 밥은 먹었는지, 때로는 그저 무탈한지. 늙수그레한 아들의 안위를 챙기느라 동동거리는 모습마저 다 읽은 책장처럼 건성으로 넘겨버렸다. 어느 시구詩句처럼,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존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오래전 어머니가 그러했듯, 밤나무집 여인은 잽싸게 따배기를 주워들더니 툴툴 옷자락을 털며 멀어져 간다. 칼칼한 국물 두어 술을 뜨지만 아직도 따배기의 주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가 자꾸만 목에 걸린다. 막 끓여 낸 추어탕보다 더 뜨거운 무엇이 목젖을 타고 오른다.